끊어진 꿈 땜질하는 불꽃따다닥 타다닥. 불꽃이 튄다. 흰 연기가 뭉실 솟아오른다. 타다다다다다닥. 눈부신 화염이 피어오르고, 거친 불똥이 나뒹군다. 불덩이가 철판 사이를 지난다. 쇳덩이가 붉게 물들었다가 검게 식는다. 불꽃이 철판에 붙은 불순물을 녹인다. 쇳조각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용접봉...2016-08-30 20:11
목소리를 억압당한 사람들의 나팔국가인권위원회 14층 회의실. 방청석 맨 앞줄에서 노트북을 켠다. 상임위원들을 바라보며 발언 한마디 한마디를 놓치지 않는다. 첫 번째 안건은 ‘기업과 인권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의 건’이다. 2011년 유엔이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을 발표한 이후 9개국에서 이행지침...2016-07-26 20:57
물 속에서 건네는 응원“다리를 쭉 뻗어주시고 힘을 빼고 발목을 펴세요. 무릎 굽히지 마시고. 하나 둘 하나 둘.” 철썩철썩. 물이 튀어오른다. 그녀가 회원들의 발목을 하나씩 잡고 발차기를 돕는다. “제일 중요한 건 허벅지예요. 발목에는 힘을 빼야 돼요.” 이번에는 엎드려 연습이다. 철퍼덕철...2016-07-13 15:47
근심을 자르는 칼날분무기로 물을 뿌리고 정성스레 빗질을 한다. 머리 모양을 유심히 살핀다. 삭 삭 삭~. 엄지와 약지로 움켜쥔 미용가위가 머리카락을 자른다. 왼손 검지와 중지 사이, 빗이 모아온 모발을 단가위(짧은 가위)가 쳐낸다. 빗질과 가위질이 되풀이된다. 한쪽 날이 지그재그로 된 ...2016-06-24 15:36
말없이 진술하는 목격자누군가를 응시한다. 오른쪽 어깨에 멘 가방에서 화각이 넓은 렌즈를 꺼내 카메라에 끼운다. 현장사진가 정택용(40)의 눈동자가 백발의 노인을 향한다. 때 이른 폭염, 백기완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찰칵, 셔터를 누른다. 시선을 돌려 상복...2016-06-09 16:25
‘갑질’도 설움도 쓸고 닦는다여자화장실. 고무장갑이 칸마다 수북이 쌓인 휴지를 들어 파란 비닐에 담는다. 물을 내리고 변기와 바닥 물청소를 한다. 손걸레가 벽, 문, 거울, 선반, 에어컨을 차례로 닦으며 ‘휘리릭’ 지나간다. 화장실 입구 분리수거함. 쓰레기가 뒤섞여 있다. 먹다 버린 일회용 커피용...2016-05-20 15:41
반창고 두른 손이 마음을 토닥이다짝꿍의 손을 잡은 꼬마들이 줄지어 걷는다. 숲 속 나들이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합창 인사에 폐지 싣고 가던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 계곡물 앞에서 멈춘다. “여기부터는 손 놓고 갈게.” 한 녀석씩...2016-05-04 20:02
봇짐 싣고 지구 일곱 바퀴를 돌다웅장한 풍채의 트럭이 거만한 자태를 뽐내며 서 있다. 트랙터(트럭의 앞부분, 견인차)에 가슴 높이의 대형 타이어 10개가 달려 있다. 트랙터에 연결된 길이 20미터 트레일러를 6개의 광폭타이어가 떠받친다. 마찰력이 커 제동 거리가 짧아지는 타이어다. 폭 3.7미터, 길...2016-04-21 18:26
사라진 가족사진은 얼마인가요?서류 뭉치를 꺼낸다. 교통사고 사실확인원. 3월1일 새벽 6시15분 55살 노동자가 충남 예산의 한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다 버스에 치어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했다. 약도를 본다. 편도 2차선 간선도로에서 자전거를 타고 역주행했다.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일출 시간...2016-04-07 18:46
보통 그 이상적막한 사무실, 휑뎅그렁한 책상에 홀로 앉아 노트북컴퓨터를 켠다. 독자들이 보낸 고민이 쌓여 있다.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느라 보지 못했던 사연을 하나씩 살핀다. ‘죽고 싶다’거나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하소연이 많다. 웹툰(인터넷 만화)을 서비스하는 ‘레진코믹스’에 ...2016-03-24 16:45
흥을 깨우고 꿈을 흔드는 노동부우우우우~ 부르르르르르르~ 입술이 사르르 떨린다. 하헤히호후흐허~ 목청을 가다듬는다. 숨을 깊이 마셨다 내쉬며 발성 연습을 이어간다. 따뜻한 물로 목을 적시고, 영어 문장을 큰 소리로 읽는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2009년 내한해 불렀던 을 들은 이후...2016-03-10 17:51
사라져버릴지 모를 성수동의 장인들서울 성수동 제화의 거리 뒷골목, 낡은 작업대에 네 명의 구두장이가 앉아 있다. 제화공 앞에 하나씩 놓인 칼판, 고무보다는 강하고 아크릴보다는 연한 구두 제작 판이다. 망치, 가위, 칼이 칼판에서 순서를 기다린다. 강력 접착제를 바른 쇠 지퍼와 구두 겉감으로 쓰일 소가...2016-02-16 19:49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지팡이를 든 어느 노부부가 경기도 과천시 서울대공원 등산로를 향해 걷는다. 그 뒤를 따라 일군의 노인들이 산을 오른다. 방학을 맞은 학생들은 떼 지어 서울랜드로 달려간다. 놀이기구를 타는 아이들의 비명을 들으며 문쌍용(57) 조경사가 톱과 전지가위를 꺼낸다. 서울대공원...2016-01-27 21:54
뚝딱뚝딱 쿵쾅쿵쾅 한겨울의 ‘건축 교향곡’새해 둘쨋날 해가 고개를 내민다. 드럼통 화로에 언 손을 녹이던 목수들이 연장을 챙겨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고원길(54) 목수가 ‘못주머니’를 어깨에 두른다. 허리춤 왼쪽엔 망치와 시노가 꽂혀 있다. 시노(shino)는 끝이 가늘고 굽어져 있는 쇠막대다. 오른쪽엔 낡...2016-01-14 17:30
정(情) 싣고 달리는 산골 전령사의 고달픈 질주빨간 오토바이가 산골마을 샛길을 오른다.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핸들을 틀어 시골집 대문에 비스듬히 선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 팔을 뻗어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다. 편지함이 없는 맞은편 기와집엔 대문 사이에 우편물을 꽂는다. 다음 골목, 오토바이에서 내려 등기우편물을...2015-12-31 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