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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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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창고 두른 손이 마음을 토닥이다

⑱ 어린이집 교사의 손: 천마디 단어와 백마디 손길… 공동육아 어린이집 교사 천순영·김정씨
등록 2016-05-04 20:02 수정 2020-05-03 07:17

짝꿍의 손을 잡은 꼬마들이 줄지어 걷는다. 숲 속 나들이 시간이다. “안녕하세요?” 아이들의 합창 인사에 폐지 싣고 가던 할머니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든다. 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등산로 입구, 계곡물 앞에서 멈춘다. “여기부터는 손 놓고 갈게.” 한 녀석씩 돌다리를 폴짝폴짝 뛰어 건넌다. 낙엽이 쌓인 비탈길을 기어오르자 눈앞에 느티나무 숲이 펼쳐진다. ‘통통 어린이집’ 6살반 보육교사 김정(31)씨도 아이들과 함께 숲 속을 달린다. 6~7살 열다섯 명이 떼지어 숲 속 여기저기로 흩어졌다.

“여기 애벌레 있어.” 뛰어놀던 아이들이 모여든다. 선생님의 손에 놓인 자벌레 새끼. 서로 애벌레를 손에 올려놓겠다며 다섯 녀석이 동시에 재잘거린다. 그녀가 벌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아이들 순서를 정하고, 불만을 달래고, 떼쓰는 녀석을 어르고, 항변을 받아주느라 쉼없이 떠든다. “애벌레는 사람 손보다 나무와 나뭇잎을 더 좋아하잖아.” 두 친구가 애벌레를 나무로 돌려보낸다. 한 녀석이 긴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나무를 세워 만든 나무집 두 동을 연결해 올려놓는다. 빨래를 널듯 겉옷을 건다. 빨래놀이다. “나 림보하고 싶어.” 한 아이가 몸을 뉘어 나뭇가지 아래로 빠져나간다. 다른 아이들도 따라한다. 이번엔 낚시놀이. 뾰족한 나뭇가지로 나뭇잎을 꿰어 나무집에 모은다. 나뭇가지 빼앗기 놀이를 하던 한 남자아이가 얼굴을 긁혔다. 두 녀석이 동시에 울음을 터뜨린다. 김정씨가 달려간다. 아파서 우는 아이와 미안하다고 했는데 화를 많이 내서 속상한 아이. 상처에 약을 바르고 두 아이의 앙증맞은 손을 살며시 잡는다.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준 후 슬쩍 자리를 뜬다. 어느새 화해를 했는지 두 녀석이 환하게 웃는다. 김정씨가 혼자 노는 아이들과 나뭇잎 낚시놀이를 한다. 아이들의 작은 손, 흙, 나뭇가지, 애벌레, 다시 꼬마들의 손으로 그녀의 두 손이 종횡무진 활보한다. 아이들 얼굴이 해맑다.

6명이 동시에 참새처럼 지저귀는 소리

비스듬히 누워 자란 나무에 한 무리의 친구들이 올라앉았다. 자벌레처럼 엉덩이를 당겨 나무에 오른다. 천연 놀이기구다. “발에 힘을 줘서 당겨.” 천순영(32) 교사가 어른 키 높이까지 오른 아이 곁에 선다. 안전과 모험의 경계, 아이가 스스로 한 걸음 나아가도록 기다린다. 용기를 얻은 친구는 가로막힌 나무를 넘어 한 발짝 더 내딛는다. 뒤따르는 친구들도 높은 곳까지 오른다. 두 시간이 훌쩍 흘렀다. “애들아, 우리 5분 뒤에 가자.” 아쉬운 듯, 한 아이가 칭얼거린다. “모닥불 피워서 고기 먹을 사람?” 낚시로 잡아온 나뭇잎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점심시간. 아이들이 각자 가방에서 식판을 꺼낸다. 밥과 반찬, 국을 떠준다. 아이들이 밥을 싹싹 긁어 먹는다. 한 아이는 시금치가 모자랐는지 반찬통을 가져다 덜어 먹는다. 순영씨가 늦게 먹는 친구 옆에서 밥을 떠준다. 주걱에 붙은 밥풀을 먹겠다는 녀석에게 밥알을 주걱에 잔뜩 붙여준다. 옆 친구도 먹고 싶단다. 주걱이 하나니까 내일 먹게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밥을 다 먹은 아이들이 화장실에서 ‘치카’를 한다. 순영씨가 이를 살펴보고 양치를 돕는다. 양치를 끝낸 아이들은 방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거나 카드놀이, 종이접기, 블록놀이를 한다.

순영씨가 아이들 얼굴을 살핀다. 입술에 치약이 묻어 있는 녀석이 보인다. 다시 입을 닦게 한다. 숟가락, 식판, 주걱, 칫솔, 아이 얼굴, 로션… 그녀의 손이 쉼없이 움직인다. “내 로션 다 썼는데, 네 거 빌려주면 안 될까?” “그래, 빌려줄게. 엄마한테 바꿔달라고 말해.” “고마워.” 아이들 대화를 들으며 순영씨가 웃음을 짓는다. 잘 자란 아이들을 볼 때면 행복감이 밀려든다.

김정씨가 아이들과 강아지놀이를 한다. 엄마, 아빠, 형, 강아지를 정한다. 알록달록 실로 짠 줄을 팔에 묶고 방을 돌아다닌다. 오후 1시30분, 취침시간이다. “자, 이제 놀던 거 정리하자.” 긴 줄을 동그랗게 말아 사물함에 넣는다. 선생님이 두 명의 아이들과 이불을 펴는 사이, 여섯 명은 방 입구에 앉아 기다린다.

낮잠시간, 김정씨가 동화책을 읽는다. 한 권을 다 읽었는데, 더 읽어달란다. 포근한 옛이야기에 빠져든 아이들이 어느새 새근거린다. 그녀가 조용히 방을 나온다. 다섯 시간 만에 찾아온 고요의 시간. 오늘 그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는 몇 개였을까? 바싹 마른 목, 물을 한 모금 삼킨다. 수천의 언어가 아이들의 마음을 토닥이고, 수백의 손길이 아이들의 상처를 보듬었는지 생각해본다.

수천의 언어와 수백의 손길

순영씨가 교사실로 들어온다. 책꽂이에 와 같은 어린이 교육서 200여 권이 꽂혀 있다. 어릴 때부터 아이들이 좋았던 순영씨는 주저 없이 유아교육과를 선택해 2006년부터 경기도 의정부의 한 유치원에서 교사로 일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 조기교육 열풍으로 영어, 발레, 체육과 같은 특별활동이 유치원을 점령했다.

어느 날, 자신이 돌보는 아이가 무슨 옷을 입고 왔는지, 무엇을 힘들어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고 느꼈다. 대학 동기들을 만나 고민을 토로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 얘기를 전해듣고 가슴이 뛰었다. 1997년 부모들이 모여 만든 ‘통통 어린이집’, 그곳에서 순영씨는 새로운 희망을 발견했다. 아이들이 자연에서 마음껏 뛰어놀고, 부모와 아이와 교사가 함께 배우는 교육을 찾아가고 있었다.

공동육아 20년의 실험은 일반 어린이집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산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 와요. 일반 어린이집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부모님들은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고 해요. 우리 아이들만 아니라 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이 같이 누려야 하는데 안타깝죠.”

순영씨의 학창 시절 친구들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일한다. 부모들은 집 앞에서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 보내고, 하루가 끝나면 버스가 아이를 데려다준다. 부모가 어린이집을 방문하는 일은 드물고, 부모의 방문을 달가워하지 않는 어린이집이 많다. 원장과 교사, 교사와 아이는 지시와 통제의 관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순영씨가 일하는 곳은 부모들이 어린이집 운영에 참여해 회의와 토론이 수시로 벌어진다. 원장은 2년 임기의 대표교사제도로 운영된다. “친구들은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무척 부러워하면서도 아이들이 교사와 부모의 별명을 부르며 반말하는 문화나 부모님들이 자기 집 드나들듯 어린이집을 왕래하는 걸 부담스러워하기도 해요. 철학과 가치관의 차이가 아닐까 싶어요.”

지난 2년간 어린이집 교사의 아동학대 사건이 방송을 도배했다. 언론은 어린이집 교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몰았다. 많은 어린이집에 폐회로텔레비전(CCTV)이 설치됐다. 교사들이 반대해도 원장이나 부모가 원하면 의무적으로 설치해야 한다. ‘통통 어린이집’ 부모들은 토론을 통해 CCTV를 설치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전체 부모가 서명을 했다. 열린 공간, 부모와 교사와 아이 사이에 믿음이 있어 가능한 일이다.

순영씨의 책상달력을 본다. ‘숲과 인간의 삶’ 열린 강좌, 생활나눔, 북부지역회의, 교사 자체 교육, 배움 소위, 대표교사 교육, 전체 조합원 교육…. 회의와 교육 일정표로 가득하다.

CCTV를 설치하지 않는 어린이집

이날 아침 느티나무 숲에 일반 어린이집 아이들이 두 팀이나 다녀갔다. 흰옷을 맞춰 입고 줄지어 온 아이들. 선생님은 가로로 누운 나무에 아이들을 하나씩 오르게 하고 사진을 찍는다. 금세 다시 줄지어 간다. 마치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교사가 아이들을 10명 넘게 돌봐야 하는 조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아이들을 통제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이들이 맘껏 뛰노는 것보다 안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정부는 어린이집 반별 정원을 늘리는 ‘2016년 보육사업 안내’ 지침을 시행하기로 했다. 현재 영유아복지법 시행규칙에는 어린이집 교사 1명당 만 0살 3명, 만 1살 5명, 만 2살 7명, 만 3살 15명, 만 4살 이상은 20명 미만으로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다. 보건복지부가 올해 내놓은 지침에 따르면 만 1살 반은 최대 6명, 만 2살 반 9명, 만 3살 반 18명, 만 4살 반 23명을 편성할 수 있다.

한국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은 2014년 기준 5.7%로 일본(49.4%), 프랑스(66%), 스웨덴(80.6%) 등 선진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4월27일부터 5월15일까지 국공립 어린이집 이용 학부모 5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87.2%는 ‘다른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으로 옮길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다. ‘옮길 계획이 있다’고 답한 부모들은 12.8%에 불과했다.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자가 10만 명에 육박하고, 당첨되면 ‘로또’를 맞은 것처럼 기뻐한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국공립어린이집 1천 곳을 더 지어 전체 어린이집 비율의 28%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의 심장부 대구의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이 2.6%로 전국 꼴찌라는 사실을 대구의 ‘어르신’들은 알고 계실까?

보육비가 비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낼 여유와 조건이 되지 않는, 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민간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교사를 의심하며 CCTV를 들여다봐야 하는 나라다.

국공립 어린이집 비율 5%… 만족도는 87%

아이들이 하나둘 잠에서 깬다. 옷을 갈아입고 밥상에 모여 잼 바른 빵을 먹는다. “우리, 학교 운동장 가서 깡통차기 할래?” “나, 갈래.” “난 얼음땡 하러 갈 거야.” “난 엄마가 일찍 온댔어.”

김정씨가 큰 가방에 물과 컵, 비상약을 챙긴다. 어린이집 텃밭, 상추와 쑥갓에 물을 주고 인근 학교로 향한다. “깡통차기 할 사람 여기여기 붙어라.” 그녀가 술래다. 다람쥐처럼 날쌘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숨을 헐떡거린다. “잡았다, 잡았다. 예~.” 이번엔 다른 아이가 술래. 한 아이가 선물한 흰 꽃을 귀에 꽂고 달린다. 잡히고 잡고, 웃고 떠들며, 넘어지고 구르고, 한바탕 놀이가 끝났다. “형아가 발로 찼어.” “미안하다고 했잖아.” “동생이 많이 아팠나봐.” 김정씨의 손은 아이들에게 물을 따르고, 그녀의 입은 두 친구를 위로한다.

한 시간 남짓 오후 나들이가 끝났다. 방에 아이들이 모였다. 쉴 새 없이 조잘대는 아이들, 김정씨의 귀는 8명의 말을 동시에 듣고, 그녀의 입은 아이들과 동시통역한다.

‘하루 닫기’ 시간. “애들아, 내일은 장담그기 할 거야. 항아리 안에 있는 메주랑 소금이랑 주물럭주물럭해서 된장 만들 거야.” 김정씨가 손을 펴 방바닥에 대자, 아이들이 손을 하나씩 얹는다. 오늘 하루도 신나게 보낸 아이들이 파이팅을 외친다. 선생님의 엄지손가락에 반창고가 붙어 있다. 그녀는 다친 손보다 어린이집 교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아프다. 많은 아이들이 따뜻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회가 더 마음 아프다. 그녀의 상처 입은 손과 마음이 덧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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