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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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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을 깨우고 꿈을 흔드는 노동

⑭ 노래노동자의 기타: 생계와 싸우며, 잃어버린 꿈을 찾게 해주는 노래패 ‘꽃다지’ 정윤경씨
등록 2016-03-10 17:51 수정 2020-05-03 07:17

부우우우우~ 부르르르르르르~ 입술이 사르르 떨린다. 하헤히호후흐허~ 목청을 가다듬는다. 숨을 깊이 마셨다 내쉬며 발성 연습을 이어간다. 따뜻한 물로 목을 적시고, 영어 문장을 큰 소리로 읽는다.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가 2009년 내한해 불렀던 을 들은 이후 공명이 잘되는 영어 발음으로 발성 연습을 바꿨다. 피아노, 클래식 기타, 전자 기타가 놓인 작업방. 책꽂이에는 등 발성에 관한 책이 빼곡하다. 라디오에서는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온다. 노래그룹 ‘꽃다지’의 음악감독이자 작곡가이고, 기타리스트이자 가수인 정윤경(50)씨의 하루가 시작됐다.

구구구구 구구구구구구~. 맘맘맘맘 맘맘맘맘맘맘~ 2단계 발성 연습에 들어갔다. 마이클 잭슨의 스승으로 유명한 보컬 코치 ‘세스 릭스’의 발성법이다. 베이스에서 시작해 테너, 메조소프라노, 알토, 소프라노까지 3옥타브를 오가며 목소리를 다듬는다.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스피커에서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밴드 ‘라디오헤드’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틀에 한 번 이상 듣는 음악이다.

발성 연습으로 하루 문을 열고

윤경씨가 기타 강습을 위해 서울 구로에 있는 ‘꽃다지’ 작업실로 향한다. 첫 강습생은 김광석의 와 의 작곡가다. 강습이 시작됐다. 딩딩딩딩딩딩. “손을 펴지 말고 조금만 오므리시고, 줄을 탁탁 치지 말고 내리세요.” 도도도도 레레레레 미미미미~. “아직은 손 움직임이 크거든요.” 도도도도도 레레레레레~. “이번에는 16분음표를 연달아 쳐볼게요.”

난이도가 조금씩 높아간다. “6개 줄을 한 줄이라고 생각하고 치시면 돼요.” 끊임없이 강습생과는 다른 음과 리듬, 코드를 쳐주며 합주하듯 흥을 돋아준다. 보고 들으면서 잔상이 남아 나중에 혼자 칠 때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다. 손은 기타를 치고 눈은 강습생의 손가락을 응시한다. “취약한 곳보다 잘되는 부분을 먼저 강화하면 좋겠어요. 잘못하면 늪에 빠지게 되니까요.” 한 시간을 훌쩍 넘겨 강습이 끝났다. 윤경씨에게 기타줄을 어느 정도 풀어주느냐고 묻는다. “겨울엔 건조하니까 장력을 완화시키기 위해 줄을 풀지 않거나 한 바퀴만 풀어주는 게 좋아요.”

다음 강습을 기다리는 동안 윤경씨가 연주에 몰입한다. 손가락으로 줄을 끊길 듯 당기다가 어루만지듯 내리친다. 마디마디 맑은 소리가 새어나온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선율의 세계에 빠져든다. 화음, 멜로디, 리듬까지 되는 악기는 기타와 피아노뿐이다. 윤경씨의 보물 1호 통기타는 마틴 제품. 세계 최초로 쇠줄을 사용하도록 설계했고, 우쿨렐레 붐을 일으킨 회사다. 기타 가격은 중고가 300만~350만원. 로고송 작업으로 돈을 벌었을 때 샀다. 좋은 기타는 날씨에 예민하다. 겨울에는 대리석 위에 올려놓고, 가습기를 틀어 습도를 유지해야 한다.

2011년 ‘세시봉’ 열풍, 최근 오디션 프로그램의 인기에 힘입어 악기를 배우는 사람이 늘었다. 한 대학생은 4년째 기타 강습을 받고 있고, 어느 교사도 2년 동안 배우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의 학부모들은 ‘통마’라는 모임을 만들어 집단 강습을 3년째 하고 있다.

윤경씨는 기타를 배우겠다고 찾아오면 먼저 일주일에 두세 번 이상 기타를 꺼낼 시간이 있느냐고 묻는다. “보고 들은 건 많아 눈은 높아졌는데 손가락은 안 따라가고, 술 약속은 많고, 그러다보니 두세 달 만에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초보자에게는 처음부터 비싼 기타 사지 말고, 10만원대 기타나 품에 편하게 안고 칠 수 있는 미니 기타를 추천한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바로 고가의 기타보다는 40만~50만원대의 기타를 사서 보강하고 싶은 부분을 교체해서 써보기를 권한다. 그는 낙원상가나 방배동에서 정기적으로 기타를 점검하고, 필요한 부분은 수리를 받는다. 외국에서 배워온 전문 기술자가 많아져 목이 부러진 기타도 잘 고친다.

이번엔 가수 후배 강습이다. 땃땃 땃땃 땃땃땃 셋잇단음표가 어렵다. 비슷하긴 한데 뭔가 애매하다. 셋잇단음표 연습을 10분 넘게 집중한다. 다음은 16분음표 연습. 속삭이듯 시작해 점점 커진 화음이 포효하듯 마무리되는 기법이다. 반대로, 터지듯 시작해 지저귀듯 잦아든다. 핑거링(피크 대신 손으로 치는 기법)으로 넘어간다. 8분음표에서 시작해 16분음표를 연습한다. 윤경씨가 시범을 보여준다. 숨이 멎은 듯한 잔잔한 선율과 단아한 가락이 울려퍼진다.

잔잔한 선율과 단아한 가락

윤경씨와 기타의 운명적 만남은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함께 살던 대학생 사촌누나가 윤경씨 형제에게 기타를 가르쳐줬다. ‘형보다 잘하는 것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오기로 기타에 매달렸다. 온종일 기타 치고 노래를 불렀다.

대학에 진학해 선배의 권유로 노래패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전투경찰이 대학에 상주하던 시절, 노래는 민주화투쟁의 무기였다. 노래패는 최고의 인기 동아리였다. 대학 2학년 때는 영등포 산업선교회에서 노동현장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에게 기타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명동성당 청년연합회 활동을 하면서 고 김수환 추기경의 기타 반주를 하기도 했다. 1989년부터 노동자문화예술운동연합(노문연) 음악분과 ‘새벽’에서 활동하다 1999년 첫 솔로 음반을 냈다. 2003년까지 ‘유정고밴드’에서 활동하다 2004년 꽃다지의 요청으로 음악감독이 됐다.

지난 연말 방송사 음악 프로그램 에서 가수 알리가 불러 우승을 차지한 는 1997년 발표한 꽃다지 2집 음반의 타이틀곡이다. 등도 꽃다지의 인기곡이다. 2000년 발매한 노동가요 명곡선 는 방송 드라마 에 나온 를 비롯해 노동현장에서 10년 넘게 불러온 노동가요를 담았다. 위로하고 쓰다듬어주는 노래도 있었지만, 꽃다지는 ‘투쟁의 노래’를 불러왔다.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시리고
도와주는 사람 함께하는 사람은 있지만 정말 추운 건 어쩔 수 없더라
내가 왜 세상에 농락당한 채 쌩쌩 달리는 차 소릴 들으며 잠을 자는지
내가 왜 세상에 내버려진 채 영문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귀찮은 존재가 됐는지
찬바람 부는 날 거리에서 잠들 땐 너무 춥더라 인생도 춥더라”

2011년 발표한 꽃다지 4집 에 실린 라는 곡이다. 윤경씨는 음반에 실린 13곡 중 7곡을 작곡했다. “거리로 쫓겨난 사람들이 노동자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옳다고만 얘기하고, 자기 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연대의 고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미안하지 않게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만든 노래예요. 옳고 그름으로 딱 잘라 구분하는 게 아니라 흩어져 있는 섬과 섬을 잇는 것이라고 할까요?”

민중가요, 현실에 안주한 건 아닌지

꽃다지가 지난 5년간 가장 많이 부른 노래인데 대중적으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지난가을 ‘실력 있는 뮤지션의 숨은 음악’을 찾아주는 네이버의 ‘온스테이지’에 초대된 꽃다지는 이 노래와 함께 와 를 재편곡한 을 불렀다. 꽃다지는 “투쟁의 언어와 행진곡풍의 곡이 아니라 일상의 언어를 가지고 ‘모던함’까지 갖춘 음반으로 세상에서 좀더 의미 있고 유용한 노래를 하고 싶다는 바람의 표현이었다”고 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보세요. 다들 노래를 너무 잘하잖아요. 이제 김광석이나 김현식을 만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수준 높은 교육을 시켜서 가수를 상품처럼 만들어내고 있어요.” 홍대 인디밴드들의 노래 실력도 뛰어나다. 그런데 우리는 현실에 안주해 똑같은 투쟁가만 해온 건 아닌지, 악기나 발성도 연습하지 않고 늘 불렀던 노래만 부르는 건 아닌지, 저항과 건설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다양성도 상실해버린 건 아닌지, 윤경씨는 되돌아본다.

홍대 앞에는 인디음악을 하는 청년들이 500팀이나 된다. 지난해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인디밴드협회 회원 등 852팀(솔로 포함 1953명) 중 120명을 조사해 ‘대중음악 뮤지션 실태조사’를 발표했다. 20대와 30대가 전체의 80%를 차지했고, 65.3%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었다. 뮤지션의 67.3%만이 음악에 의한 수입이 있었고, 71.1%는 월수입이 100만원 미만이었다. 그래서 76.9%는 음악활동 외 강의, 레슨, 부업, 개인사업 등 ‘알바’를 했다.

월 100만원도 못 벌지만 음악을 하려면 돈을 써야 했다. 음악 관련 지출 비용으로 월 10만~50만원이 54.6%, 50만~100만원이 23.9%였고, 100만원 이상도 16%에 달했다. 복수로 응답한 지출 내역은 연습실 대여(61.1%), 악기 구입·수리(52.4%), 음반 제작비(45.4%), 공연장 대여(19.2%), 레슨(8.9%) 등이었다. 이에 앞서 청년유니온이 2012년 발표한 ‘청년 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도 인디음악인의 평균수입은 월 69만원이었다.

민중가수들도 월 100만원을 벌기 힘들다. 가난한 비정규직노조는 열 번을 가도 돈 한 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2년 전 한국노총 소속 한 노조가 많은 돈을 주고 유명 걸그룹 ‘크레용팝’을 불렀어요. 민주노총 소속 어느 노조도 행사에 마야를 부른 적이 있고요. 대기업의 여름휴가 휴양지에 가면 유명한 대중가수들이 와요. 그러면서 투쟁을 할 때는 형편이 어렵다며 적은 예산으로 민중가수를 불러요.” 문화기획자 이사라씨의 얘기다.

민중가수 중에서는 그래도 유명한 꽃다지인데, 윤경씨는 ‘알바’를 벗어난 적이 없다. 녹음, 전화노래방 반주 제작, 운전, 기타 강습…. 전문 노래패 활동만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가 없었다. 민중가수의 꿈을 안고 찾아왔다가 생활고에 시달리다 떠나간 젊은 뮤지션이 한둘이 아니다. 음악성을 인정받는 꽃다지의 음반도 얼마 팔리지 않았다. 음반을 마음대로 가져다 써도 노동가수들이 대체로 관대하기 때문이다. 노조 간부들이 가수들 밥은 사주면서 음반을 사달라고 하면 다운받아 쓴다고 한다.

무엇보다 가수들을 견디기 힘들게 하는 건 공연을 집회의 장식품처럼 취급하는 문화다. 형편없는 음향으로 축 처진 분위기를 살려달라면서, 음향을 다루는 매뉴얼 하나 없어 가수들이 음향을 손봐야 하고, 뒤에서는 뒤돌아서서 술 먹는 집회장. 이런 환경에서 좋은 음악을 들려줄 ‘능력자’는 어디에도 없다. 이사라씨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짝 메들리 사지 말고, 노동가요 음반을 구입해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만 들어달라”며 “노동현장을 지키고 그들의 삶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뮤지션 71% 월수입 100만원 미만

윤경씨가 꽃다지 사무실을 나선다. 녹음실을 빌리면 시간당 돈이다. 연습실에서 가수들이 질릴 때까지 흠뻑 연습할 수 있게 하기 위해 10년 전 어렵사리 마련했다. 이곳에서 꽃다지 4집 음반을 냈다. 올해는 개인 음반을 준비하고 있다. 윤경씨가 기타를 자동차에 싣는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시민 2만 명의 후원을 받아 직접 조립한 코란도. 차가 간절히 필요해 고민 끝에 신청했는데 기증받을 단체로 선정됐다. 꽃다지에겐 최고의 출연료였다. 노동가수 지민주씨도 오는 5월1일 3집 음반 를 내는데, 많은 이들이 사전 후원 제작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씨가 “해고자분들 후원하지 말아주세요. 나중에 이기시면 그때 해주세요”라고 애원할 정도다. 고마운 노동자들이다.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일 하고 살잖아.” 친구들이 윤경씨에게 말한다. ‘딴따라’ 인생, 어쩌면 그는 베짱이다. 사람들은 개미처럼 자본의 시계에 맞춰 부속품처럼 살아간다. 젊은 시절 함께 꿈꾸었던 세상을 잊은 채. 화음처럼 조화롭고 멜로디처럼 따뜻한 사회를 향한 열망을 잃어버린 채.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며 살아가는 사이, 민주주의의 시간은 드라마 ‘응팔’ 시절로 되돌아갔다. 서랍 속 깊이 넣어두었던 투쟁가와 동지가를 꺼내 불러야 하는 시대다. “베짱이처럼 사람들이 잃어버린 것을 찾게 해주는 사람이 문화예술 노동자가 아닐까요?” 잃어버린 흥을 깨우고 잠든 꿈을 흔드는 노동, 그래서 그는 오늘도 노래하는 일이 행복하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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