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응시한다. 오른쪽 어깨에 멘 가방에서 화각이 넓은 렌즈를 꺼내 카메라에 끼운다. 현장사진가 정택용(40)의 눈동자가 백발의 노인을 향한다. 때 이른 폭염, 백기완 선생이 지팡이를 짚고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겨 있다. 찰칵, 셔터를 누른다. 시선을 돌려 상복 입은 한 노동자를 바라본다. 망원렌즈를 꺼낸다. 만장 사이로 무대에 오른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카메라를 들고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는다. 주먹을 불끈 쥔 노동자의 표정을 잡는다.
사진기자들이 사라지면 벌어지는 일행진 대열 앞뒤를 오가던 택용씨가 빠른 걸음으로 행사장에 도착해 사람들을 기다린다.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상징석 앞을 무장병력이 둘러싸고 있다. 현대차 부품사인 유성기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동자를 추모하는 작은 분향소가 경찰들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두 팔을 뻗어 카메라를 머리 위로 쳐든다. 액정에 상복을 입은 노동자들과 영정사진이 잡힌다.
몇 컷을 찍고 경찰 폴리스라인 안으로 들어간다. 행진을 마친 노동자들이 분향을 시도하고, 경찰은 막고 있다. 분향소 앞으로 가겠다는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일촉즉발의 상황. 플래시와 렌즈를 갈아 끼우고 분향소와 가장 가까운 곳까지 밀고 들어가 카메라를 든다. 사진기자들이 모여든다. 노동자들이 폴리스라인을 치운다. 분향소 가까운 곳에서 몸싸움이 시작됐다. 쉴 새 없이 셔터가 작동한다. 곳곳에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진다. 경찰이 캡사이신을 발사한다. 현대차 본사 안에 있던 경찰이 우르르 쏟아져나와 노동자들을 연행한다. 최루액을 뿌리는 경찰, 끌려가는 노동자의 얼굴을 담는다. 경찰과 시위대 사이. 순간을 포착하는 눈빛과 카메라를 불끈 쥔 손이 만난다. 소용돌이에서 한 장의 사진을 건져내기 위한 혈투, 카메라는 말없이 현장을 목격한다.
집회가 끝나고 사람들이 떠난다. 사진기자들도 하나둘 사라진다. 차마 발걸음을 떼지 못한 이들이 경찰이 점령한 분향소 주변으로 모여든다. 경찰 무전기 소리에 귀 기울이던 택용씨가 카메라를 움켜쥔다. 경찰들이 달려나와 사람들을 인도로 밀어올린다. 사지를 들어 내던진다.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섞인 현장, 그가 빠르게 셔터를 누른다. 끌려가는 모습을 묵묵히 카메라에 담는다. 여경들이 상주를 지키는 여성노동자들을 끌어낸다. 상복을 입은 노동자가 경찰버스로 끌려나간다.
경찰 방패 뒤에서 20여 개의 채증카메라가 동시에 고개를 쳐든다. 시위대의 일거수일투족을 남김없이 채증한다. 사진기자들이 떠난 현장. 노동자들을 법정에 세울 증거를 수집하는 고성능 카메라들만이 활개 친다. 무력감이 엄습한다. 사회자가 옥외집회신고 접수증을 경찰에 보여주며 불법을 중단하라고 외친다. 그의 카메라가 접수증과 항의하는 장면을 담는다. 어두워진 거리, 덩치 큰 현대차 직원들이 나와 ‘노사관계 선진화로 기업경쟁력’이라는 띠를 두르고 선다. 택용씨가 카메라를 향하자 고개를 숙인다. 현대차 상징석을 지켜주는 경찰을 카메라에 담아둔다.
새벽 4시 집을 떠나 도착한 농성장의 풍경은 아렸다. 종이상자 위 침낭에 번데기처럼 몸을 말고 잠든 노동자들. ‘밤에는 잠 좀 자자’며 시작한 싸움. 길바닥에서 자는 사람들. 검게 그을린 얼굴과 고단한 표정들. 대기업 본사를 지켜주는 경찰…. 그가 셔터를 눌렀다. 어슴푸레 밝아오는 여명의 시간, 길거리, 한뎃잠. 그의 카메라에 가장 많이 담긴 풍광이지만 매번 불편하고 아픈 작업이다.
카메라는 말없이 울었다택용씨가 카메라 렌즈를 닦고 심호흡을 한다. 몸을 삼각대처럼 붙이고 손가락만 살짝 셔터를 눌러 ‘표적’에 초점을 맞춘다. 사격할 때 숨을 들이마셨다가 반쯤 내뱉고 멈춘 상태에서 손가락 끝마디로만 방아쇠를 당겨야 흔들림 없이 명중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총은 사람을 죽이지만, 그는 카메라로 ‘삶’을 이야기하고 싶다. 한때 집안의 귀중품이던 카메라는 어느새 가장 흔한 연장이 됐고, 소중히 간직하던 사진들은 범람하고 하찮은 일회용품이 됐다. 그러나 타인의 고통을 말하고, 그 고통이 어떻게 당신과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할 것을 촉구하는 사진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시절이다.
택용씨의 첫 카메라는 중학생 때 사우디아라비아로 일하러 간 삼촌이 사다 준 빨간색 코니카였다. 그는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으며 셔터를 눌렀다. 대학 농활의 기록도 코니카로 남겼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된 직장생활 틈틈이 카메라를 들고 현장을 찾았다. 니콘 F3H 필름카메라를 빌려 쓰다 돈을 모아 캐논 EOS30을 샀다. 회사를 때려치우고 중앙대 사진학과에 편입했다. 2006년 한 인터넷신문사에 사진기자로 들어가 본격적인 사진 인생을 시작했다.
2005년 가을. 동네 형님들의 소개로 찾아간 노동 현장은 기륭전자였다. 기륭 누님들은 험상궂은 용역경비 앞에선 용맹했고, 택용씨 카메라 앞에선 해사했다. 험악하거나 우울할 것 같던 농성장은 동네 사랑방처럼 생기 넘쳤다. 발걸음이 잦아졌고, 카메라에 사소한 일상이 담겼다. 필름카메라 시절, 낮에는 사진 찍고 밤에는 필름을 현상했다. 사진을 스캔해 기륭전자 인터넷 카페에 올렸다. 경찰이 진압할 때나 용역경비와 싸울 때면 기륭 누님들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카메라가 있을 때와 없을 때, 저들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던 그는 요청을 외면할 수 없었다. 기꺼이 현장의 목격자가 됐다. 2008년 여름, 기륭전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천 일이 되기 전에 해결하라며 집단 단식에 들어갔다. 김소연과 유흥희가 흰 소복을 입고 경비실 옥상에서 60일 넘게 단식하고 있을 때였다. 눈빛마저 흐릿해져가고 있었다. 죽음의 문턱에서도 웃고 있는 그녀들을 마주한 카메라는 오래도록 속울음을 울었다.
“전화받고 힘들어서 안 간 적도 몇 번 있어요. 한번은 송경동 시인이 포클레인 위에서 경찰 진압에 항의하며 전깃줄을 목에 감고 있을 때였어요. 힘든 촬영을 끝내고 막 집에 들어왔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스러웠죠. 그런데 현장에 왔더니, 그 난리가 난 거였어요. 미안했죠.”
2006년 1월 택용씨의 카메라는 55일 공장 점거파업으로 구속됐다가 3개월을 살고 영등포구치소를 걸어나오는 김소연을 담았다. 2016년 5월 택용씨의 사진기는 불의한 벌금을 낼 수 없다며 제 발로 걸어 들어가 14일 노역을 살고 서울구치소를 나오는 유흥희를 찍었다. 지난 10년, 기륭전자 노동자들의 곁을 오롯이 지킨 카메라. 현장의 기록은 2010년 그의 첫 사진집 에 담겼다.
매일매일이 전투 현장2013년 여름, 희망버스가 250일 넘게 송전탑에서 고공농성을 벌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응원하기 위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았다. 현대차 경비들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장을 사이에 놓고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때였다. 소화기 분말가루 때문에 숨 쉬기 힘든 현장의 맨 앞에 있던 택용씨는 현대차 용역경비가 경찰지휘관을 향해 소화기를 던지는 장면을 목격하고 셔터를 눌렀다.
집회가 끝나자마자 언론은 ‘쇠파이프 든 2500명, 펜스 뜯고 강제 진입’이라는 기사를 쏟아냈고, 정부는 검경 53명을 동원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려 노동자들을 잡아들이고 있었다. 택용씨의 사진은 고소장과 함께 경찰에 전달됐고, 합동수사본부는 “민주노총이 고소한 내용에 대해서도 사 측의 고소와 형평이 맞도록 엄정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화기를 던져 경찰의 팔을 부러뜨린 용역경비가 처벌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지만, 구속된 노동자는 예상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현장의 목격자, 카메라 덕이었다.
인터넷신문과 주간지 사진기자 7년, 프리랜서 현장사진가로 4년을 보낸 택용씨. 기륭전자와 함께 그가 가장 많이 찾은 현장은 쌍용자동차와, 송전탑에 맞서 싸우는 밀양이다. 2011년 한진중공업 김진숙 위원의 309일 고공농성 이후로는 하늘에 오른 사람들을 빼놓지 않고 카메라에 담으려 했다. 고공농성, 그 밑을 지키는 사람들도 함께 찍었다. 아프지만 따스한 현장이 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된다. 6월21일부터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진위주 류가헌’에서 그의 첫 개인전이 열린다.
현장 다큐멘터리 사진가의 삶은 그의 카메라에 담기는 해고노동자들의 삶보다 나을 게 없다. 경남 밀양, 부산 만덕지구, 제주 강정마을을 다녀올 때면 교통비와 숙박비 때문에 주머니를 탈탈 털어야 한다. 필름카메라는 망가질 때까지 썼는데, 디지털카메라로 바뀐 뒤로는 교체 주기도 3~4년으로 빨라졌다. 카메라와 렌즈 3개, 플래시를 합치면 900만원에 육박한다. 5년 전에 산 노트북은 이제 고해상 사진을 소화하지 못해 새로 사야 한다. 무기가 날아드는 위험천만한 ‘전투’ 현장, 몸을 날려 카메라를 지키지 않으면 ‘폭망’이다.
지난해 5월1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을 막아선 경찰은 버스 위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사진가들을 정면으로 조준해 물대포를 발사했다. 현장에 있던 노순택 사진가는 자칫 떨어져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10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를 들고 뛰어다니는 사진가들은 어깨와 허리 통증을 달고 산다.
남들은 모두 잠든 시간, 그렇게 찍은 사진을 하나씩 넘겨보며, 갯벌에서 진주를 찾아내듯 사진을 골라낸다. 절벽을 오가며 매의 손으로 건져올린 작품. 그러나 사람들은 사진을 공짜로 여긴다. 해고노동자들에게는 사진을 건네지만, 돈이 있는 노동조합도 사진을 그냥 달라고 한다. 출처도 밝히지 않고 신문을 만들어 뿌린다. 사진가의 땀도 허공에 뿌려진다. 사진으로 먹고살기 힘드니까 알바를 전전하다 이 바닥을 떠난다. 현장의 목격자들이 사라진다.
빛 한 줌의 소중함을 아는 사람긴 하루가 저물었다. 끌려간 노동자들은 따뜻한 유치장 천장을 보고 눕고, 잡혀가지 않은 조합원들은 차가운 길바닥 밤하늘을 보고 눕는다. 택용씨가 카메라에 담는다. 이들이 외박을 마치고 귀가하는 날은 언제쯤일까? 카메라를 챙겨 집으로 향한다.
가끔은 선후배 동료들과 사진달력 이야기를 나눈다. ‘최소한의 변화를 위한 사진가모임’을 함께하고 있다. 현장의 사진가들은 2009년 용산 참사를 계기로 매해 ‘빛에 빚지다’라는 이름의 사진달력을 만들어왔다.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선구매를 했고, 그들의 이름을 달력에 새겨넣었다. 그 뜻에 동의한 단체나 모임이 대량주문을 하기도 한다. 판매 수익을 모두 용산, 기륭전자, 쌍용차, 콜트·콜텍, 강정마을 등에 전달했다. 빛 없이 태어날 수 없는 사진, 그래서 빛에 빚지고 있다는 사진가들의 마음이 어두운 세상 작은 ‘빛’이 됐다.
거리에서 떨어본 사람은 안다. 그늘진 곳에 찾아든 햇볕 한 줌이 얼마나 따스한지를. 그 빛을 놓치지 않기 위해 오늘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선 이들. 현장사진가들의 카메라에 진 빚은 어떻게 갚아야 할까?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카카오톡에서 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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