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둘쨋날 해가 고개를 내민다. 드럼통 화로에 언 손을 녹이던 목수들이 연장을 챙겨 건물 속으로 사라진다. 고원길(54) 목수가 ‘못주머니’를 어깨에 두른다. 허리춤 왼쪽엔 망치와 시노가 꽂혀 있다. 시노(shino)는 끝이 가늘고 굽어져 있는 쇠막대다. 오른쪽엔 낡은 가방이 달렸다. 칸마다 제각각의 못과 줄자, 칼과 펜이 들어 있다.
망치질이 시작됐다. 콘크리트 바닥에 새겨진 선에 맞춰 ‘네모도’라고 부르는 수평조절목을 놓는다. 합판 조각을 덧대 바닥과 각목을 고정한다. 왼손을 들어 내리친다. 탕 탕 탕. 세 번 만에 대못이 박혔다. 네모도 사이에 댈 나무토막을 전기톱으로 자른다. 망치를 꺼내 큰 못을 비스듬히 내리친다. 네모도와 시멘트 바닥과 나무토막이 대못으로 연결됐다. 원길씨가 귀퉁이 철근에 새겨진 흰 금을 유심히 본다. 높낮이가 일정하지 않은 콘크리트 바닥, 기준점에 따라 각목 높이를 맞춘다. 수평을 정확히 맞춰야 건물이 기울지 않기 때문이다. 어느새 건물 4층 바닥에 나무가 쫙 깔렸다.
네모도에 ‘유로폼’이라고 부르는 금속 합판을 올린다.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거푸집을 조립하는 과정이다. 플랫타이로 안쪽 폼과 바깥쪽 폼을 잡아준다. 콘크리트 무게 때문에 폼이 벌어지는 것을 막아준다. 못주머니에서 웨지핀을 꺼내 플랫타이와 폼을 고정한다. 7명의 목수가 저마다의 망치를 두드린다. 뚝딱뚝딱 쿵쾅쿵쾅. 망치 교향곡이 펼쳐진다. 쇠를 내리치는 소프라노 소리, 나무에서 울리는 저음의 바리톤, 못을 가볍게 어루만지는 속삭임까지 망치의 하모니가 울려퍼진다.
망치는 목수들의 밥숟가락“망치가 우리 손이고, 목수들의 밥숟가락이죠.” 목수 인생 40년 원길씨가 망치를 들어 보인다. 망치 끝이 바둑판처럼 갈라져 있다. 오래 사용하면 맨들맨들해져 망치를 때리면 빗나간다. 목수에 따라 1~3년 정도 사용하면 새 망치로 바꿔야 한다. 망치 머리에는 굵은 홈이 파여 있다. 자석이 내장돼 있다. 못을 홈에 끼우고 키가 닫지 않는 곳에 손을 뻗어 내리치면 그대로 못이 박힌다. 국산은 성능이 떨어져 일제 망치를 쓴다.
원길씨는 자신만의 망치를 사용한다. 다른 사람 연장을 쓰면 손에 맞지 않는 장갑처럼 왠지 모르게 망치질이 불편하다. “콘크리트 강도가 세져서 목수들도 집에서 못 박을 때는 조심해요. 손으로 못을 잡고 박거나 세게 내리치면 손을 다치거나 못이 튀어나와 눈을 다치게 되기 때문이에요.”
원길씨가 맞은편 건물 꼭대기로 올라간다. 5층 바닥에 콘크리트가 깔려 있고, 철근이 박혀 있다. 먹물을 먹통에 붓는다. 건물 모서리에 못을 박고 연두색 실을 묶어 건너편 모서리 못에 연결한다. 줄 끝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니 못으로 바닥에 ‘∧자’ 표시를 한다. 수평을 맞추는 작업이다. 먹통에서 줄을 빼 젊은 현장소장에게 건넨다. 표시해놓은 양쪽에 먹물이 묻은 줄을 대고 줄을 한 번 튕긴다. 콘크리트 위에 검은 선이 새겨진다. ‘먹 메김’ 또는 ‘먹줄 튕기기’라고 부른다. 비나 눈이 와도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먹물을 사용한다. 지금은 먹물을 팔지만, 원길씨가 목수일을 배울 때는 먹을 갈아서 썼다.
그가 현장소장과 무언가를 골똘히 상의한 후 먹줄을 수정한다. 양쪽 끝 방은 창이 2개여서 가운데 원룸과 실제 면적이 같아도 넓게 보이기 때문에 남는 공간을 중간 방에 배정한다. 5층 바닥에 콘크리트를 타설할 위치가 직각으로 그려진다. 종이 위의 설계도를 콘크리트 위로 옮겨놓는 작업,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원길씨가 그려넣은 먹줄에 따라 목수들이 네모도로 기초 수평잡기 공사를 하고 그 위에 유로폼을 조립해 거푸집을 설치하게 된다. 여기에 콘크리트를 부어 굳히면 건물의 기초공사가 완료되는 것이다. “기초작업이 잘못되면 건물 전체가 틀어지게 돼요. 가장 중요한 작업이죠.” 목수일 4년 이상 해도 잘 가르쳐주지 않아 어깨너머로 배워 몸으로 체득한 기술이다. 현장에서 먹을 놓는 일을 ‘오야먹’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오후 새참 시간, 목수들이 빵과 우유를 먹는다. “기능공과 조공의 차이가 뭔지 아세요? 기발하게 일하면 기공, 조심스럽게 일하면 조공이래요. 농담이고요, 저는 실수를 수정할 수 있는 목수가 기능공이라고 생각해요.” 이근필(51)씨는 5층짜리 원룸 두 동을 함께 짓고 있는 12명의 목수 중 막내다. 그가 손을 내민다. 왼손 검지 손톱에 피멍이 들었다. 6개월 가까이 지났는데 아직 멍이 남았다. 투박하고 거친 손, 기능공의 손끝에서 100년 가는 튼튼한 집이 지어진다.
‘노가다’로 홀대받는 목수들“옛날에 배 목수가 기분 나쁜 상태로 배를 만들면 고기가 안 잡힌다고 했어요. 그래서 배를 짓는 동안 맛난 걸 대접하고, 대우를 잘해줬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집 짓는 일이 목수들의 손끝에서 이루어지는 예술인데, 목수를 노가다라고 함부로 대우하고 있어요.” 50년 가까이 집을 지어온 장영길(63) 목수다. “캐나다·미국·유럽 같은 나라에서는 목수나 페인트공이 교수보다 높게 대접받아요.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이 인정받을 때 나라가 발전하는 거죠.”
장영길씨의 말대로 캐나다에서는 목수(carpenter)가 남부럽지 않은 직업이다. 건물을 짓고 싶으면 노조를 통해 목수를 구하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강력한 목수노조는 노동자들에게 철저한 안전교육과 기술교육을 한다. 최소 4년 동안 매해 시험을 보고, 6천여 시간의 현장 근무 뒤에 시험을 통해 반장(리드핸드 카펜터)이 된다. 목수의 평균 시급은 24캐나다달러로 2만원이 넘고, 숙련된 목수는 연봉이 6천만원 이상이다.
원길씨는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있었다. 열다섯 살 때 목수 밑으로 들어가 3년 동안 돈 한 푼 안 받고 목수일을 배웠다. 중학교 2학년 나이에 수학책 대신 망치를, 영어책 대신 대패를 들었다. 문짝, 의자, 가구 등 나무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들었다. 한때 현대종합목재에서 리바트 가구를 만들기도 했다. 어느 정도 돈을 벌었는데, 주식 투자로 몽땅 날려먹었다. 분당신도시가 지어질 무렵 경기도 성남으로 올라와 아파트를 세웠다. 안산과 시흥 일대에서만 300채 이상 지었다.
5년 전 오이도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일하러 온 목수가 건설노조 안산지회 조합원이었다. 원길씨에게 노조 가입을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가입했다. 대신 이렇게 말했다. “목수들이 기침만 하면 감기에 걸리는 조그마한 건물주 말고 큰 회사를 상대로 싸웁시다.” 그렇게 그는 큰 회사 6곳을 포함해 10개 현장에서 건설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에 관한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혼자 건설현장에 들어가 두 번이나 해고당하면서 24명을 조합원으로 가입시킨 적도 있었다.
원길씨를 비롯해 함께 일하는 12명 모두 건설노조 조합원이다. 이들의 임금은 일당 18만5천원. 노조가 약한 서울에선 같은 형틀목수인데도 15만~17만원을 받는다. “처음에는 두 달 일하는데 한 달을 투쟁으로 보내기도 했어요. 업자들이 노조원한테는 일을 안 주려고 했죠. 지금은 사업주들의 인식이 많이 좋아져서 노조에도 일을 잘 맡깁니다. 인건비 싸게 맡겼다가 건물이 반듯하지 않고 비뚤비뚤 지어지기 때문이죠.”
“큰 회사를 상대로 싸웁시다”건설노조 안산지회는 일감이 있다고 다른 지역으로 우르르 가서 인건비 낮추지 말고 안산을 근거지로 지역주민으로 책임 있게 일을 하자고 제안했다. 노동조합의 힘은 단결이기 때문에 중국동포를 포함해 이주노동자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함께 일하자고 했다. “외국인들이 우리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 때문에 흔쾌히 동의하지는 못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그렇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건설노조가 자랑스러운 원길씨는 늘 노동조합 조끼를 입고 일한다. 파란 건설노조 조끼 등판에는 “건설현장을 바꿔야 노동자 서민이 산다”고 적혀 있다.
지난 성탄 전야에 광주의 건설노동자들이 아파트 건설현장 체불임금 1억6천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하며 건설사 점거농성을 벌였다. 건설사는 발주처로부터 공사비를 제대로 받지 못해 자금이 없다며 임금 지급을 거부하다 고용노동청의 중재로 체불임금을 지급했다. 건설노동자들이 밀린 임금을 받지 못해 고공농성을 벌이는 일은 시도 때도 없이 벌어진다. 형틀목수의 일당은 15만원, 인력소개업체 수수료를 떼면 13만5천원이다.
2013년 전체 건설업 면허 업체는 6만 개로, 2000년 3만5천여 개에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공사를 수주했지만 직접 공사를 하지 않고 도급을 주는 ‘브로커’가 급증했기 때문이다. 발주처→원청→하청→건설노동자 사이에 브로커가 끼어들어 임금만 떼먹는 것이다.
2014년 기준 모든 산업에서 1조3천억원의 임금 체불이 발생했는데 그중 건설업이 3천억원이었다. 2010년(1463억원)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11월까지 발생한 체불임금 총액이 1조1884억원으로 1인당 체불액은 441만원이라고 밝혔다. 제조업과 건설업이 60%에 달한다. 그런데 악덕 체불 5만342건 중에서 구속된 사업주는 22명뿐이었다. 상습적으로 돈을 떼먹어도 구속되는 비율이 0.04%다.
임금 상습 떼먹어도 구속률 0.04%사장님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정부가 건설노동자들에게는 유난히 가혹하다. 검찰은 지난해 11월26일 건설노조 타워크레인분과 노조 간부 5명을 구속하고 10명을 기소했다. 건설사를 상대로 민주노총 소속 크레인 기사 채용을 강요해 업무를 방해했다는 것이다. 건설노조는 건설회사들과 지난 15년 동안 단체협약을 통해 ‘회사는 현장 발생시 조합원 채용에 최대한 노력한다’는 조항을 만들었다. 단체협약을 지키라고 요구한 것을 공갈협박으로 몰아 구속시킨 것이다.
전국건설노동조합은 지난해 9월 국회에 적정임금과 직접시공을 골자로 하는 2개의 건설법안을 제출했다. 건설노동자에게 적정임금 이하로 임금이 지급되면 발주처를 처벌하는 미국의 적정임금제(Prevailing Wage)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고용노동부 장관이 건설노동자의 직종·기능별 적정임금을 고시하도록 해 적정임금이 뿌리내리도록 하고 있다. 또 모든 공사를 건설사가 직접시공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최소한 20%는 직접시공하고, 공사비용 중 30%를 노무비로 책정하는 걸 의무화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건설사들이 임금 경쟁이 아니라 품질 경쟁을 하게 되고, 고숙련 기능인들을 양성하게 된다”며 “결과적으로 자연스럽게 부실 시공과 부정 비리를 방지하는 효과가 생기게 되며, 고품질의 건축물이 들어서게 된다”고 밝혔다.
겨울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간다. 원길씨가 다음날 작업을 준비한다. 3층으로 내려가 유로폼 100여 개를 4층으로 올린다. 새해 연휴, 밥벌이를 위해 온종일 망치를 두드렸던 목수들이 하루 일을 정리한다. 고된 노동이 끝났다. 못주머니를 풀어 가방에 넣고 집으로 향한다. 다음달이면 5층짜리 원룸 두 채가 완공돼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마련된다. 그의 노련한 망치질이 건물을 반듯하게 세우고 그의 섬세한 손길이 빌딩 구석구석을 매만진다. 목수의 망치는 나무와 철근과 콘크리트를 엮어 집을 짓는다.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이어 세상을 짓는다.
아들과 망치 들고 집 짓는 날 꿈꿔원길씨가 40년 동안 밥숟가락이 되어준 망치를 챙긴다. 하루 노동으로 배불리 밥 먹고 동료들과 돼지고기에 술도 한잔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망치 덕분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서 40년 경력 목수의 망치는 ‘흙수저’ 신세다. 집을 짓는 숙련된 노동이 ‘노가다’로 천대받는다. 그는 두 아들이 목수의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보금자리를 만드는 행복한 노동을 천시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바뀌어 선진국처럼 목수를 제대로 대접하는 사회가 된다면, 그는 아들들과 함께 망치를 들고 멋진 집짓기를 하고 싶다.
글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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