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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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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 싣고 달리는 산골 전령사의 고달픈 질주

⑩ 집배원의 빨간 오토바이: 희로애락을 배달하고 생로병사를 건네는 양평우체국 권삼현씨
등록 2015-12-31 22:01 수정 2020-05-03 07:17

빨간 오토바이가 산골마을 샛길을 오른다. 흙먼지가 피어오른다. 핸들을 틀어 시골집 대문에 비스듬히 선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 팔을 뻗어 우편함에 편지를 넣는다. 편지함이 없는 맞은편 기와집엔 대문 사이에 우편물을 꽂는다. 다음 골목, 오토바이에서 내려 등기우편물을 들고 문을 두드린다. 몇 번 불러보지만 인기척이 없다. ‘우편물 도착 안내서’를 붙이고, PDA(개인용 정보단말기)에 기록한다. 서울에서 온 소포, 부모님께 보낸 선물이 아닐까?

빨간 ‘애마’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경사로를 달린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 산바람이 겹겹이 입은 외투 숨구멍으로 스며들어 온몸을 휘젓지만 산골 전령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경기도 양평우체국 권삼현(49) 집배원의 질주가 시작됐다.

가을걷이가 끝난 밭두렁 사잇길을 건너 산등성이를 넘어간 애마가 산 너머 마을에 내닫는다. 도곡1리 마을회관에 우편물을 넣고, 맞은편 집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 한가운데 천년 고목과 어울리는 오래된 집, 홀로 계신 할머니께 소포를 건넨다. 할머니 얼굴에 웃음꽃이 핀다. 언덕배기를 달린다. 동네 개들 짖는 소리가 요란하다. 봉성2리 마을회관으로 들어선다.

지난 10월이었다.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돌아가셨다며 마을 이장이 삼현씨에게 부고장을 돌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이름만 적힌 종이 한 장 들고, 그는 마을 사람들 100여 명에게 부음 소식을 전했다. 마을을 돌아 나와 작은 시골교회로 향한다. 지난여름 우편함에 손을 넣었다가 벌떼에 온몸을 쏘인 곳이다. 올봄 봉성리 어느 집에선 우편함에 새 알이 들어 있다며, 편지를 다른 곳에 놓아달라고 했다. 생로병사의 소식을 전하는 산골마을 우편함은 때때로 날짐승의 보금자리가 된다.

우편함, 벌과 새들의 안식처

우편물 보관함에서 새 우편물과 소포를 실은 삼현씨가 원덕리로 향한다. 산을 깎아 만든 전원마을 단지, 급경사를 빛의 속도로 등정한다. 산꼭대기 집에 택배를 전달하고, 잠시 숨을 돌린다. 산 아래 풍경을 바라보며 지난 봄날을 떠올린다.

“그동안 뭐 했냐고 묻지 마라/ 우체국으로 걸어간 봄은 온통 꽃 필 생각이다/ 울퉁불퉁 생긴 대로 볼품없는 세월/ 집배실 옆 차르르르 햇살 엎질러진 모과나무는 안다/ 향기란 어쩌면 제 몸을 뚫고 나오는 연둣빛 새순 같은 것/ 오늘도 백오십리길/ 꽃 소식 앞장세우고 배달 나가는 집배원/ 빨간 오토바이 휘청이도록 봄바람 분다”(뒷부분 생략)

지난해 한 일간지 경제신춘문예에서 가작을 받은 시 ‘집배원’을 읊조린다. 달리는 일상의 공간을 멈추고, 시간을 세워 불현듯 떠오르는 시상을 수첩에 끄적인 글들이 어느새 300편이다. 이른 봄 산등성이에 핀 동백을 그리기도 했고, 길모퉁이에서 만난 어느 노파의 사연과 동료 우체부의 애환을 담기도 했다. 회상도 잠시, 오토바이에 올라 가파른 길을 내리꽂는다.

빨간 오토바이는 세 개의 가방을 싣고 달린다. 뒷좌석 붉은 적재함엔 택배와 편지, 등기우편물이 가득하다. 앞바퀴 위에 장착된 바구니엔 곧 배달할 우편물을 놓아둔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 손을 뻗어 우편물을 꺼내기 위해 모종판을 깔아 바닥을 높였다. 집배원을 상징하는 낡은 황토색 가방은 적재함 옆에 묶여 지나간 세월을 말없이 증언한다. 120년 전인 1895년 최초로 등장한 우체부가 건넨 편지엔 무슨 사연이 실렸을까?

낭만적이지 않지만 따뜻하다

삼현씨는 우체부의 삶이 낭만적이지는 않지만 따뜻하다고 느낀다. 어느 집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하면 보건소에 연락해 약을 갖다주고, 전기장판을 전해주거나 벽지를 발라주기도 한다. 마을회관에 모인 할머니들은 밥때가 됐는데 우편물 들고 나타나면 여지없이 숟가락을 건넨다. 쓰러진 노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집배원 이야기가 없는 마을이 없다. 희로애락을 전하는 빨간 오토바이는 정(情)을 싣고 달린다. “누구 집 딸이 결혼했고, 어느 집 할머니가 많이 편찮으신지 누구보다 잘 알아요. 집배원들이 작은 도움이라도 드릴 수 있어서 힘들지만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 생긴 전원주택단지를 오른다. 눈이 얼어 겨우내 오토바이를 세워두고 10분 넘게 걸어서 배달했던 동네다. 삼현씨가 오토바이 속도를 높인다. ‘날아다닌다’고 표현한다. 배달해야 할 우편물이 아직도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특별소통기간’으로 불리는 명절이나 선거철은 아니지만 연말연시에도 우편물이 폭주한다. 해가 일찍 떨어지는 겨울, 위험천만한 야간 배달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날아다닐 수밖에 없다.

2014년 가을이었다. 자동차세 우편물이 다량으로 나왔다. 한 달에 열흘, 고지서나 우편 물량이 몰리는 ‘폭주기’였다. 아침 일찍부터 산길을 돌아도 우편물이 좀체 줄어들지 않았다. 속도를 높였다. 바퀴가 모래에 미끄러졌다. 오토바이에 깔려 빗장뼈가 부러졌다. 전치 12주, 아직도 그의 늑골은 온전히 붙지 않았다. 2013년 겨울 노동자운동연구소가 발표한 ‘집배원노동자의 노동재해·직업병 실태 및 건강권 확보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집배원의 74.6%가 근골격계 증상이 있었고 43.3%는 당장 의학적 치료가 필요했다. 지난 3년간 목숨을 잃은 집배원이 26명에 달했고, 재해율이 2.54%로 전체 노동자 평균(0.59%)보다 네 배 이상 높았다.

삼현씨의 적재함 가방에 쇠파이프가 매달려 있다. 달려드는 개 퇴치용이다. 그의 전임자는 골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개에게 허벅지를 물렸다. 어느 집배원은 귀를 물어 뜯겼는데 쇠파이프를 휘둘러 귀를 찾아와 접합 수술을 했단다. 2007년 미국 플로리다주 윈디힐 지역에서는 “개 주인들의 무책임한 태도로 집배원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며 우정 당국이 600여 가구의 우편 배달을 중단했다(이종탁, ). 1년에 몇 명의 집배원이 개에게 물렸는지 통계조차 없는 한국에선 언감생심이다.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2015년 10월 기준 집배원이 1만6211명이다. 이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64.6시간으로 노동자 평균 42.7시간보다 20시간 많다. 1인당 하루 배달량은 2천여 통, 시골 집배원은 150km, 서울에서 군산을 매일 달린다. 우체부 1인당 담당 인구는 2800명으로 일본(660명)의 네 배가 넘는다. ‘빨리빨리’의 나라 한국 집배원들은 일본보다 네 배나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일까? 새벽 6시 출근해 밤 9시 퇴근하는 세계 최장시간 노동이 계속되는 이유다.

2014년 7월12일 우체국 노동자들의 토요 근무가 없어졌다. 주5일근무제가 도입된 지 10년 만이었다. 그런데 1년 만인 9월1일 우정사업본부와 한국노총 전국우정노동조합은 “국민 불편을 해소하고, 우정사업의 위기 극복 및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5년 9월12일부터 토요일 택배배달 업무를 실시한다”고 합의했다. 우체국 지부장 80%와 조합원 70%가 반대해도 소용없었다.

‘집배원 장시간 중노동 없애기 운동본부’는 12월6일 전국 집배원 투쟁본부로 전환하고, 토요일 근무 폐지를 요구하며 세 차례에 걸쳐 결의대회를 열었다. 10월3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에는 갖은 협박에도 불구하고 600명의 집배원들이 모였다.

“우정본부가 적자라며 하위직을 1천 명 넘게 감축했는데, 5급 이상 관리직은 100명 이상 늘렸어요. 적자가 났다는 4년 동안 6천억원 넘게 정부에 갖다 바쳤고요. 정말 너무합니다.” 권삼현 집배원이 투쟁본부의 공동대표를 맡으며 열성적으로 싸우고 있는 이유다.

쇠파이프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

규격봉투에 붙이는 우표 한 장 값은 300원. 원가의 85% 수준이다. 국가가 하는 공공서비스이기 때문에 편지 한 장 들고도 멀리 섬마을과 산마루까지 배달한다. 택배도 마찬가지다. 도서 산간 지역은 택배비 4천원 받으면 손해다. 민간 회사들이 싫어하는 지역의 물량은 우체국으로 넘어온다. 국토교통부가 조사한 ‘2015년도 택배서비스 평가’ 결과 일반 택배에서 우체국이 최고 등급을 받았다. 소방서나 경찰서와 마찬가지로 우체국은 이윤의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 국민을 위한 공익사업이다.

그런데 미래창조과학부 소속 우정사업본부는 4년 연속 적자라며 ‘돈타령’만 한다. 조직 개편을 통해 현장 인력을 1023명이나 줄이더니 주5일근무제마저 폐지한 것이다. 전국 집배원 투쟁본부 김재천 활동가는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 집배원들이 죽으면 무릎부터 썩어 없어질 것이라는 얘기를 할 정도”라고 말한다. 우체국에서 주5일근무제가 정착돼 민간 택배회사로 확산돼야 하는데, 이 정부는 늘 그렇듯 거꾸로 한다.

2013년 4월 독일 도이체포스트 3400명이 임금을 인상하라며 파업을 벌였고, 2000년 12월엔 60만 명이 넘는 인도 집배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크리스마스 우편물 배달을 중단했다. 2007년 10월 영국의 집배원들도 2주간 파업을 벌였다. 미국, 캐나다 등 많은 나라에서 집배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우체국 축소를 막아내기 위해 싸운다. 그러나 1958년 만들어진 우정노조는 1968년 8월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쟁의 이후 50년 동안 조용하다.

배달을 마친 집배원들이 우체국으로 돌아온다. 집배실에 우편물이 가득 쌓여 있다. 빠른 손놀림으로 우편물을 분류해 책장 22개 칸으로 우편물을 넣는다. 낮에 소포를 받지 못한 사람들이 집배실에서 물건을 찾아간다. 현재 경기도 양평군 인구는 11만 명으로 8년 전에 비해 3만 명이 늘었는데 집배원은 관내 통틀어 딱 1명 늘었다. 우체부 10명 중 3명이 비정규직이다.

“이 친구는 올해로 4년차인데 정규직으로 발령을 내지 않고 있어요.” 삼현씨가 젊은 집배원을 가리키며 말한다. 10월 말 기준 전국의 무기계약직 집배원은 2604명, 기간제 계약직을 합하면 훨씬 많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식을 마치고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희망 복주머니’ 행사에 참석해 비정규직 집배원이 보내온 “우체국 비정규직 차별을 해결해달라”는 메시지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임기 내 반드시 비정규직 문제가 해결되도록 최대한 관심을 갖고 힘쓰겠습니다.”

2015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정규직 집배원에게는 정액급식비 13만원을 주는데, 무기계약직 및 기간제 계약직에게는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김기덕 우정사업본부장은 “내년도에는 예산에 비정규직 직원 정액 급식비가 포함될 수 있도록 관계 부처와 논의하겠다”고 답했지만, 지난 12월3일 정부와 국회는 비정규직 집배원 급식비를 삭감한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더욱 심각한 건 위탁택배 기사다. 소포위탁과 재택위탁 배달원은 2202명. 위탁택배 기사들은 건당 1035원을 받는다. 그나마 전국우체국위탁택배조합이 만들어져 싸워서 2014년부터 오른 가격이다. 하지만 기름값, 밥값, 보험료 등을 빼면 건당 700~800원을 번다. 20kg이 넘는 쌀과 김장을 나른 대가로 라면 한 개 값을 받는 것이다. 대통령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차별받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자신의 말의 뜻을 알기나 할까?

1년 만에 사라진 주5일근무제

밤 9시가 넘은 시간, 분류 작업을 마친 삼현씨가 집으로 향한다. 내일도 그의 빨간 오토바이는 사연을 싣고 달린다. 실핏줄처럼 사람과 세상을 촘촘히 연결하는 전령사들이 겨울바람을 가르며 당신을 찾아간다. 삼현씨는 ‘겨울우체국’이라는 시에서 “세금고지서 독촉장 철거통보서 이런 것들은 버리고 와도 좋을 것을”이라고 썼다. 마음 따스한 편지와 가슴 뭉클한 소포들만 전달했으면 좋겠다. 그럴 수는 없더라도 산골마을 홀로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눈빛 마주하며 말 한마디 건넬 작은 여유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박점규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집행위원 @ccomark, ccamcy@gmail.com

사진 노순택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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