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남성 잡지의 대명사 미국의 가 내년 3월호부터 여성의 올 누드 사진을 싣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핀업걸 없는 라니!
여성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 때문은 아니다. 그랬다면 벌써 를 위협하는 인터넷의 수많은 성인 콘텐츠는 사라졌을 것이다. 상황은 반대다. 너무 많은 성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조차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워졌다. 간단한 검색만으로도 사실상 무료로 성인 콘텐츠를 접할 수 있지 않는가. 물론 는 전 지구적으로 거둬들이고 있는 상표 라이선스 수익과 자체 브랜드 성인용품 판매가 안정적으로 뒷받침되기 때문에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문제는 출판 잡지다. 현대사의 숱한 장면을 목격한 사진잡지 도 사라졌고 저명한 시사잡지 도 폐간됐다가 최근 부활했다. 인터넷 시대에 텍스트와 이미지 중심의 종이 매체는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변화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공포가 출판시장을 배회한다. 잡지 도 예외가 아니었다.
임계점에 달한 미디어 업계의 공포인터넷 시대에 종이 매체의 불황과 몰락은 엄살이 아니다. 출판왕국 일본에서도 뚜렷한 하향세가 감지된 지 오래며 인터넷 강국 한국은 진즉에 직격탄을 맞았다. 기존 사업자들은 앞다투어 온라인 기반으로 변신을 꾀했지만 성공적으로 연착륙하지는 못했다. 쪼그라드는 출판시장의 출혈을 감내하면서도 별 수익이 나지 않는 온라인 서비스를 계속해야 하는 이중고가 되풀이되었다.
정보기술(IT) 거품 붕괴 뒤 온라인을 통해 과거 오프라인처럼 광고를 수주하겠다는 발상은 본말이 전도되어서 광고가 덕지덕지 붙은 인터페이스와 검색어 장사에 기생해야 하는 글과 이미지를 양산할 뿐이었다. 방송 분야는 그나마 상황이 좋았지만 잠깐이었다. 신문과 잡지를 대신해 높은 신뢰도를 몇 년간 유지했으나 호황의 시절은 짧았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 시대에 방송 또한 인터넷으로 시청 가능해지면서 종이 매체와 비슷한 불황과 몰락의 길로 방송산업은 진입했다.
그리해서 미디어산업 종사자의 공포는 임계점을 넘어선 것 같다. 최근 열린 일련의 미디어 콘퍼런스들에는 변화의 시대에 직면해 갈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산업 종사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새로이 뜨는 매체의 경쟁력은 무엇인지 진단하기 바빴고 어떻게 인터넷 시대에 대응할 것인가가 주요한 화두였다. 모두가 패닉에 둘러싸여 과거 경쟁자였던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생존을 모색하는 모습은 진풍경이었다. 그 핵심은 과연 적정한 수익모델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인가로 모아졌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 이용자의 수준에서 살피자면 지금의 디지털 환경은 꽤나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만드는 이들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용하는 이들의 입장에서는 이토록 손쉽게 미디어 콘텐츠를 향유했던 시기는 전무했다. 디지털 시대가 구축한 미디어 컨버전스는 하나의 미디어 장치 속에서 글과 그림, 소리와 동영상을 동시다발적으로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통신 속도 혁명은 책장 넘기듯 동영상과 동영상을 오가도록 만들었고 더 이상 책이냐, 음악이냐, 영상이냐와 같은 매체별 차이는 무의미한 것처럼 보인다. 보고, 지우며, 공유하거나 변형시키는 이용자들의 미디어 소비·생산 문화는 절박한 기존 미디어 생산자의 볼멘 목소리와는 다르게 더욱 휘발적으로 미디어를 소비한다.
이용자 입장에선 매력적 환경저명한 문화연구자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1970년대에 ‘이동적 개인화’(mobile privatization)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당시 뉴미디어였던 텔레비전은 시청자에게 세상의 이슈를 각자의 사적 공간인 가정으로 끌고 와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도록 만드는 주요한 도구였다. 오늘날 이동적 개인화는 가정이 아니라 손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상적 현상이다. 후학(後學)인 린 슈피겔이 윌리엄스의 개념을 도치해 제안한 것처럼 개인화된 이동성(privatized mobility)은 오늘의 디지털 시대에 미디어 소비·생산의 일반적 형태다. 모든 곳에서 미디어 소비와 창작이 가능하다. 어떤 콘텐츠도 개인화가 가능하다. 이동하는 것은 비단 사람들만이 아니다. 콘텐츠 역시 빛의 속도로 움직이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엮는다.
이용자와 생산자의 서로 다른 입장에서 가장 갈등이 되는 지점은 어떻게 돈을 벌고 지불할 것인가의 문제다. 수익모델의 창출은 ‘개인화’(privatization) 개념을 둘러싼 갈등으로 나타난다. 한쪽에게 그것은 자유로운 콘텐츠의 임의적 이용을 뜻하고 다른 한쪽에게 그것은 사유화된 재산을 의미한다.
응당 사유화된 재산을 이용하는 데 돈을 물리자는 입장이 미디어 산업자의 속내일 터인데, 디지털 시대에 폐쇄적인 가두리 방식의 과금 정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미디어 산업자 또한 이용자들이 직접 제작한 콘텐츠(UCC·User Created Contents)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용자들의 창의성을 제한하고서는 디지털 시대의 사회적 네트워크에 접속하고 활성화하며 이를 토대로 재생산을 계속하기가 쉽지 않다. 고정되고 불변해서 안정적으로 수익을 (재)창출하는 마법의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저서 에서 디지털 시대 경제는 소유 관계의 본질적 개념 변화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전통적인 사유재산에 기초해 성립한 근대 경제는 접속의 시대에는 공유와 참여의 후기 근대의 경제 모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제조업 중심의 산업으로는 한계를 맞은 후기 근대 경제는 서비스와 지식이 중심 되는 새로운 단계에 진입했다는 지적이다.
유형의 제품에서 무형의 문화로 주력 산업 분야가 이동하는 가운데 가치에 대한 개념 또한 달라졌다. 가치는 물건 하나당 얼마가 붙는 고정 가치가 아니라 생산자가 자신의 상품에 부여하고, 이용자가 그에 합의하는 불확정적인 타협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와중에 주목받는 것은 체험의 판매와 소비이다. 여행, 관광, 테마파크, 게임, 엔터테인먼트 등 오늘날 가장 부상하고 있는 상당수의 산업 분야는 전통적 방식의 완제품을 제공하지 않는다. 이용자가 체험을 통해 스스로 개인화한 경험에 대한 값을 지불하며 그 한도는 제한이 없다. 생산자는 더 이상 특정한 미디어 콘텐츠를 만드는 것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중요한 것은 사전 기획과 사후 관리이고, 이용자들과의 소통이며, 그들의 체험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서울대 행정대학원의 박상인 교수는 지난 9월 월간지 에 기고한 글에서 삼성전자의 몰락에 관한 우울한 전망을 내렸다. 삼성의 롤모델이던 노키아가 사라진 과정을 보면 지금의 삼성전자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혁신의 시대에 대기업 노키아는 후발 신생 기업의 역동성을 지니지 못했고 과거의 영광에만 안주하다가 실패했으며 마찬가지로 삼성 또한 거대한 덩치 탓에 새로운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지 못해 실패를 맛볼 수도 있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수익 창출에만 귀 ‘쫑긋’ 미디어 콘퍼런스 풍경관련해서 삼성전자의 행보는 그 경쟁자인 애플의 모습과도 매우 달라 우려가 더 크다. 애플이 지속적으로 이용자들의 체험과 경험을 제공하는 모더레이터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에 반해, 삼성전자는 제품의 기술적 성능을 차별화하는 하드웨어 중심 전략을 취한다. 리프킨과 윌리엄스의 말에 주목해본다면,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 할 수 있는 미디어 콘텐츠로 매개되는 이용자와 생산자의 상호 협의와 소통이 삭제된 것이다.
비슷한 우려를 지금의 다른 미디어 기업들에도 제기해볼 수 있겠다. 미디어 콘퍼런스의 소란스러움에서 이용자들의 체험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자신들의 미디어를 사람들이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귀를 닫은 채, 다른 사업자들이 어떤 방식의 위기 대응을 펼치는가를 엿듣는 것은 사태의 절반만 직시하는 것이다. 오늘의 위기 국면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이용자들의 개인화된 미디어 이용 행태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고, 어떻게 자사의 콘텐츠가 사람들 사이를 이동하는지를 살피는 일이며, 그들과의 소통 창구는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리프킨이 에서 변화하는 후기 근대 경제의 모습으로 지적한 것 중 하나는 마케팅의 급부상과 프랜차이즈의 득세였다. 마케팅은 차별화되지 않는 완제품을 차별화하는 전략으로 상품에 무형의 고부가 문화 가치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새로운 마케팅 시대에는 ‘이미지가 제품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제품이 이미지를 표현’한다.”(254쪽) 프랜차이즈 또한 마찬가지 전략일 것이다. 각각의 프랜차이즈는 특정 제품을 판매하는 대리점의 집합체가 아니라 특정 브랜드의 가치와 정신을 공유하는 네트워크에 해당한다. 잡지 가 과감하게도 자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누드 이미지를 삭제한 것은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이 아닌가?
이용자와 공통의 놀이터 만드는 게 생존전략사실 는 오래전부터 학계·문화계·정치계의 유명 인사와 수준 높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했고, 간간이 소개한 단편 과학소설 또한 그 작품의 완성도가 높았다. 단순히 야한 이미지를 소비하는 남성으로 독자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더군다나 최근의 의 상당 수익이 전 지구적으로 거둬들이는 자사 브랜드의 라이선싱에서 나온다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는 발 빠르게 디지털 시대 후기 근대 경제에 맞춰 자신을 변모시켜왔다.
그렇다면 다른 미디어 기업은 어떤 전략을 내놓아야 하겠는가? 과연 처럼 과감하게 자신의 핵심을 버릴 수 있을까? 물론 의 결정이 성인 산업을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성을 주요한 상품으로 다룰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이다. 강조컨대, 오늘날은 그 어떤 시대보다도 수많은 미디어 콘텐츠가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시기다. 이들을 잘 엮어내 이용자들과 함께하는 공통의 놀이터를 만드는 일에 미디어 생산자들의 고민이 집중되어야 한다.
홍성일 서강대 언론문화연구소 선임연구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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