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만나기까지 가진 정보는 모임의 이름뿐이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 판결 직후 번역·감수가 가능한 전문가들을 찾았다. 한 법조인의 소개로 그들의 존재를 알게 됐다. 작업을 의뢰하고 번역문을 기사로 내기까지 모임과 구성원에 대해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7월20일 저녁 판결문의 번역·감수를 주도한 4명의 남자가 서울 모처에 차례로 도착했다. 게이법조회. 모임의 지향과 성격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작명 전략’이다. 두 가지 정체성이 명징하게 노출된다.
1. 회원들은 모두 게이다.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랜스젠더) 중에서도 게이들만 활동하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4명은 MECO, 정춘, 범생군, JD란 닉네임을 쓴다. MECO와 정춘과 범생군은 ‘서울대성소수자동아리 QIS(Queer In SNU)’의 선후배 사이다. JD도 같은 학교를 졸업했다. 범생군과 JD는 학교 때부터 알고 지냈고, JD와 MECO는 판결문 번역 과정에서 처음 만났다.
2. 회원들은 모두 현직·예비 법조인이다. 정춘과 범생군과 JD는 사법연수원 졸업 뒤 현직에서 일한다. MECO는 법조인을 꿈꾸는 로스쿨 학생이다.
드러내는 한편 숨겨야 하는 ‘한계’
게이법조회엔 드러내려는 운동성과 드러나는 데 따른 우려가 공존한다. 성적·직업적 정체성을 부각하는 ‘의식적 감행’과 신분을 숨겨야 하는 ‘현실적 제약’이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그들의 현재다.
판결문을 번역하게 된 계기는.MECO “내용을 보자마자 번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중요하고 의미 있는 판결이다. 의 의뢰가 작업을 서두르게 했다. 각자 분량을 나눠 번역한 뒤 원고 마감 전날 저녁에 모였다. 새벽까지 각자의 번역을 서로 비교·검토하고 용어를 통일했다. 원고 발송 직전까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의견을 나누며 체크했다. 번역문이 기사화된 걸 보고 의미 있는 일을 한 것 같아 기뻤다.”
법조인이자 동성애자로서 판결문이 각별했을 것 같다.JD “결론 부분이 명문이었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는 문장은 단순한 판결문 이상의 감동을 줬다. 뭉클했다. 성소수자들 사이에 눈물이 났다는 반응이 많았다.”
정춘 “내가 겪어온 힘든 시간이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느낌이 들었다. 2등 시민처럼 취급받았던 우리를 인정해줬다는 자체가 고마웠다.”
결혼할 수 있는 것과 결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당신들은 결혼하고 싶나.
갑자기 왁자지껄해졌다. 각자의 입에서 말들이 쏟아져나왔다. 법과 실제 사이의 괴리를 누구보다 잘 아는 탓인 듯했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문은 결혼을 신성시한다. 보수주의자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이 쓴 판결문은 진보적 선택(동성혼 합헌)을 통해 보수적 가치(가족·결혼)를 강화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한국에서 동성혼이 허용되더라도 동성 부부가 가족제도 속에서 행복해지려면 동성혼 합헌 과정만큼이나 가시밭길이다.
범생군 “동성혼 합헌의 필요성을 역설하느라 동성애자의 사랑과 결혼을 너무 성스럽게 묘사했다. 우리가 번역하면서도 ‘이렇게 거룩한 결혼은 못한다’며 기겁했다.”
정춘 “난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 기질이 있다. 동성결혼이 허용되면 세 번쯤은 결혼했을 것이다. 그래도 연방대법원 판결문은 너무 ‘하이틴 드라마’를 썼다. 결혼은 국가뿐 아니라 가족과 친지로부터도 인정받는 것이다. 사회적 환경이 함께 개선되지 않으면 법적으로 결혼할 수 있다고 해서 실제로도 결혼하는 동성커플이 많을진 알 수 없다.”
MECO “내가 결혼을 할지 안 할지와 무관하게 제도적으로 차단당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다. 성소수자들이라고 결혼에 차별받아선 안 된다. 법적 허용이 우선 중요하다.”
인터뷰에서 확인한 ‘흐뭇한 사실’이 있다. 이 게이법조회의 ‘마중물’이었다. 정춘은 “게이법조회란 이름은 로부터 번역을 의뢰받으면서 만들었다”고 했다. 과의 작업은 그들이 오래 준비해왔던 활동을 공식화하는 단초가 됐다. 그들은 “이번 계기로 법조계 내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드러내고 게이법조회란 이름으로 한국 사회 성소수자들의 현실을 변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했다.
정춘 “현직 법조인들 중에서 존재가 확인된 게이는 30여 명쯤 된다. 그중 우리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15명 정도다. 아직 게이법조회란 이름을 걸고 참여 절차를 밟은 건 아니다. 전부터 동성애자 법조인 모임을 만들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잘 안 됐다. 원치 않게 성정체성이 드러나는 데 따른 공포가 크다. 드러나는 순간 매장당한다는 생각에 데이트할 때 이름과 직업을 안 밝히는 사람도 있다. 공직에 있는 법조인들은 훨씬 조심스럽다. 변호사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것도 꺼린다. 법조인들은 실제 사건과 재판으로 얽혀 있는 사람들이다.”
에 번역 원고를 보낼 때 게이법조회는 스스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서로 의지하고 LGBT 관련 법을 연구하며 척박한 법조 환경 속에서 각자의 게이다움을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척박한 법조 환경 속에서 각자의 게이다움을 잃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정춘 “원고 마감하는 날 새벽에 머리 싸매고 쓴 문장이다. 법조인들은 결혼에 대한 유혹을 심하게 받는다. 선도 많이 들어온다. 과거엔 평생 게이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야 한다는 정서가 강했다. ‘차라리 결혼한 뒤 이혼하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절망스러웠다. 나는 여자와 결혼해서 산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직에서 일해보니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결혼이 주는 당근이 있다. 게이들이 같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다면 게이로서의 삶을 포기하기보다 위로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청소년기에 그토록 스스로를 부정했는데 더 이상 나의 존엄을 부정하며 살고 싶지 않다.”
당근이란 뭔가.범생군 “이런 거다. ‘혼테크’를 잘해야 단단한 기반을 닦을 수 있다, 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 아니란 인상도 확고히 할 수 있다, 가정을 잘 꾸리는 걸 보여줘야 조직 내에서도 좋은 관리자가 될 수 있다, 같은 생각과 문화가 있다. 우리에겐 딱히 롤모델이 없었다. 법조인으로서 평생 게이로서 살겠다고 결심한 선배들이 안 보였다. 여성과의 결혼을 성공의 필수 조건으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많았다.”
범생군 “게이 법조인 중 1990년대 초반 이전 학번은 거의 다 결혼했다고 보면 된다. 90년대 중반 학번부터 게이로서 평생 살겠다는 사람들이 출현했지만 게이 정체성은 숨겼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학번부턴 대학교에서도 커밍아웃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서울대에선 1995년 성소수자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우리가 그 흐름 속에서 법조계에 들어온 거의 첫 세대인 것 같다.”
JD “90년대까지는 학생운동도 남성적 분위기가 강했다. 우리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 동화되기 힘들었다. 이후 개인적 가치가 중시되면서 나의 삶부터 가치 있어져야 하고, 나부터 행복해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왜 법조인만의 모임이어야 하나.MECO “세계의 성소수자 인권운동을 봐도 직업 내에서의 세력화가 중요하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혼 합헌에 이르기까지는 법조계의 성소수자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 목소리들이 쌓여온 과정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우리가 당장 큰일을 할 순 없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의미 있는 씨앗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법조인은 특권층이다. 법조인이 되는 길도 특권의 대물림인 경우가 많아졌다. 직업인으로서는 특권을 누리지만 개별자로선 차별 대상으로 살아야 하는 긴장이 게이 법조인들에게 있다. 그 엇갈리는 정체성이 그들을 특권의식에만 가두지 않는 반사경이 되고 있다.
JD “나는 줄곧 ‘메이저’의 삶을 살아왔다. 부인할 수 없다. 남자이고, 경상도 출신이며, 공부도 잘했다. 유일하게 소수자의 위치에 있는 게 성정체성이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직업인이라 해도 차별받는 게이로서의 정체성과 어긋나면 행복해질 수 없다. 물론 성소수자이면서도 다른 소수자에게 배타적인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이 나를 게이로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사회의 모든 소수자와 공감하고 그들과 함께할 책임이 내게 부여된 것 아닐까 하는 망상을 해본다.”
범생군 “법조인인 내가 게이여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때가 있다. 법조인은 주류의 삶을 살기 때문에 소수자 감성을 갖기 어렵다. 차별받고 힘들었던 경험이 많지 않다. 내가 차별받는 게이이기 때문에 법을 다룰 때 차별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한 번 더 고민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정춘 “지금은 게이들 중심으로 시작하지만 다른 성소수자들과 힘을 합쳐 ‘LGBT 법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다. 수십 년 뒤에라도 한국 사회에서 가시화된 성소수자 법률가 단체가 됐으면 한다. 청소년, 대학, 군대를 거치면서 내가 게이 정체성을 받아들이기까지 수많은 고비가 있었다. 그 고비를 넘고 법조인이 됐다. 한국 사회에서 성소수자들이 법적 권리와 직업 안정성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행히 관련 직업을 갖고 있으니 필요한 분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범생군 “어릴 때 ‘게이는 변태’란 말을 들으며 좌절했다. 성장하면서는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 또 있겠지’ 하는 희망으로 살았다. 게이법조회를 보면서 성소수자도 법조인이 될 수 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 연방대법원 판결문 번역을 계기로 ‘문패’를 얻은 게이법조회(gay.lawyers.kor@gmail.com)는 이제 활동의 첫걸음을 떼고 있다. 번역문을 김조광수·김승환 부부의 동성결혼 합법화 소송에 참고 자료로 제출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8월15~16일 열리는 ‘제1회 LGBTI 법률가대회’(비공개)엔 공동주최자로 참여한다. 국내 성소수자 법조인들이 공식적으로 한데 모이는 최초의 행사다.
*이 게이법조회의 도움을 받아 제1069호에 실은 미국 연방대법원 합헌 판결문 은 발췌 번역본입니다. 게이법조회는 이번 기사에 맞춰 판결문 다수의견을 전문 번역했습니다. 다음 링크를 통해 전문 파일을 내려받으실 수 있습니다. ▶전문 바로가기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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