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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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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혼은 중대한 헌신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

미국 연방대법원 동성결혼 합헌 판결문(다수의견)의 주요 내용… “헌법이 가치와 법적 질서 사이에서 불일치가 나타날 때 자유권에 중점을 두어야…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어”
등록 2015-07-09 08:01 수정 2020-05-02 19:28

미국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판결문은 모두 103쪽에 이른다. 판결 안내(5쪽), 다수의견(34쪽), 소수의견 4종(64쪽) 순으로 구성돼 있다. 그 가운데 다수의견 주요 내용을 발췌 번역한다. 전문은 미국 연방대법원 누리집 오피니언(Opinions) 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를 번역·감수한 ‘게이법조회’는 우리 사회 속에서도 보수적이라 여겨지는 법조계 및 법학전문대학원 안에 있는 게이들의 모임이다. 서로 의지하고 LGBT 관련 법을 연구하며 척박한 법조 환경 속에서 각자의 게이다움을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한다. _편집자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26일(현지시각) 동성결혼을 헌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날 연방대법원 건물 밖에서 축하 인사를 나누는 동성애자 권리 지지자들. REUTERS

미국 연방대법원은 지난 6월26일(현지시각) 동성결혼을 헌법으로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날 연방대법원 건물 밖에서 축하 인사를 나누는 동성애자 권리 지지자들. REUTERS

케네디 대법관이 법정의견을 작성했다.(p.1)

헌법은 자신의 영역에 속한 모든 사람에게 자유를 약속한다. 이 자유는, 합법의 영역에서라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표현할 수 있는 특정한 자유를 포함한다. 이 사건 상고인들은 동성(同性)과 혼인하고, 법의 영역에서 그 혼인을 이성(異性) 간 혼인과 동등하게 인정받음으로써 이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다.(p.2)

상고인들은 14쌍의 동성 커플 및 동성 반려자와 사별한 두 남성이다. 피상고인들은 심판 대상 법을 집행할 권한이 있는 주 공직자들이다. 상고인들은 자신들의 혼인을 불승인한 피상고인들이 미합중국 연방 수정헌법 제14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한다.(p.2)

혼인의 중요성은 인류 역사의 시원(始原)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항상 강조되어왔다.(p.3) [역사적으로] 혼인은 반대되는 성별의 결합으로 상정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고, 또 그렇게 보아야 한다.(p.4)

상고인들은 혼인 개념이 이성 간으로 한정되었던 역사를 인정하지만, 이 사건이 그 지점에서 종결되어서는 안 된다고 다툰다. 상고인들은 혼인의 존중받는 개념과 현실을 모욕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존중하여 그에 수반된 혜택과 책임을 얻기 위하여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라는] 변할 수 없는 본성으로 인해, 동성혼은 이들이 이 중대한 헌신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p.4)

오하이오주 사건의 상고인 제임스 오버게펠은 20년 전 존 아서를 만났다. 2011년 아서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 진단을 받았다. 2년 전, 오버게펠과 아서는 아서의 사망 전 혼인할 것을 결심하고,(p.4) 메릴랜드주에서 혼인했다. 아서는 3개월 뒤 사망한다. 오하이오 주법에 의하면 오버게펠은 아서의 사망진단서에 배우자로 기재되지 못한 채 남남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오버게펠은 이 사실을 “남은 시간 동안 계속될 고통”으로 여긴다. 오버게펠은 아서의 사망진단서에 생존한 배우자로서 기재되고자 이 사건 소를 제기했다.(p.5)

미시간주 사건의 공동원고는 에이프릴 드보어와 제인 로즈이다. 2009년부터 이들은 한 남자아이와, 24시간 밀착된 보살핌이 필요했던 미숙아 남아, 그리고 장애를 가진 여아를 차례로 입양한다. 그러나 미시간 주법에 의하면 이 아이들은 두 어머니 중 오직 한 명만을 법률상 친권자로 둘 수 있다. 만일 드보어나 로즈 중 한 사람이 갑자기 사망한다면, 남은 한 사람은 자신이 입양하지 못한 아이에 관하여 어떠한 법률상 권한도 가질 수 없다. 이 두 사람은 미혼 상태로 인하여 계속되는 불확실한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p.5)

테네시주 사건의 공동원고인 예비역 중사 이페 데코는 2011년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된다. 임관하기 전 그는 토머스 코스투라와 뉴욕주에서 혼인했다.(p.5) 데코의 귀국 뒤 두 사람은 데코가 예비역으로 취업한 테네시주에 정착했다. 이들의 적법한 혼인 상태는 테네시주에서 소멸하며, 이들이 주 경계를 넘어 이동할 때마다 다시 생기거나 소멸하기를 반복한다. 연방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에 복무한 데코는 상당한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p.6)

혼인의 유구한 역사는 그 중요성을 방증한다. 그러나 혼인이 법과 사회의 발전과 무관하게 독자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혼인제도는, 비록 이성 간 결합에 한정되었을지언정, 시간에 따라 변천해왔다.(p.6)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권리에 관한 미합중국의 태도 또한 변화해왔다. [과거] 게이와 레즈비언들도 존엄을 영위한다는 주장은 법률 및 사회적 관습과 충돌했다. 동성 간 성관계는 많은 주에서 범죄를 구성했다. 게이와 레즈비언들의 공무담임이, 군 복무가 금지되었으며, 이민이 제한된데다, 이들은 경찰 단속의 표적이 되었고, 결사의 자유조차 보장받지 못했다.(p.7)

20세기의 문화적·정치적 발전과 함께, 개방적이고 공개적으로 삶과 가정을 꾸린 동성 커플들이 생겨났다. 공적·사적 영역에서 이 주제에 대한 논의가 증가했고, 대중적 태도도 관용적으로 변했다. 그 결과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 문제가 공식적인 법의 영역에서 논의되기 시작했다.(p.8)

처음으로 동성애자의 법적 지위를 구체적으로 판시한 보어스 대 하드윅(Bowers v. Hardwick·1986) 사건에서, 이 법원은 동성 간의 특수한 성행위를 범죄로 보는 조지아주법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확인했다. 그러나 로런스 대 텍사스(Lawrence v. Texas·2003) 사건에서 이 법원은 동성 간 성관계를 처벌하는 법이 동성애자들의 삶을 모독한다고 보아 위 사건을 무효화했다.(p.8)

이를 배경으로 동성혼 문제 또한 법률적 쟁점이 되었다. 1993년, 하와이주 대법원은 이성 커플만이 결혼할 수 있도록 제한한 하와이의 법은 성별에 기초한 차별에 해당하므로, 하와이주 헌법에 따라 엄격한 심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판시(Baehr v. Lewin)했다.(p.8)

1996년, 미합중국 연방의회는 연방법상 모든 혼인은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의 남편과 아내로서의 법적 결합에 한한다”라고 정의한 혼인보호법(Defense of Marriage Act)을 입법했다.(p.9)

2년 전, 이 법원은 미연방 대 윈저(United States v. Windsor) 사건에서 위 법이 연방정부로 하여금 각 주가 합법적으로 승인한 동성혼을 유효하게 취급하는 것까지 막는다는 이유로 무효라고 판시한 바 있다.(p.9)

기본권을 확인하고 보호하는 것은 사법권이 헌법을 해석함에 있어 부담하는 책임이다. 오히려 이러한 책임에 따라 법원은 국가가 지켜주어야 하는 개인의 이익을 정의할 때 합리적인 판단을 하여야 한다.(p.10)

불의의 본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 그것이 우리의 눈에 바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에 있다. 새로운 통찰로 인해 헌법이 중점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가치와 기존 법적 질서 사이에서 불일치가 나타날 때, 우리는 자유권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p.11)

아래의 네 가지 원칙에 의해, 혼인할 권리는 동성 커플에게도 동등한 효력을 갖고 적용되어야 한다. 첫째, 혼인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개인의 자율에 있어 고유한 권리이다.(p.12) 둘째, 혼인할 권리는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둘의 결합을 지지한다는 측면에서 기본권에 해당한다.(p.13) 셋째, 혼인할 권리는 어린이와 가족을 보호하고 자녀 양육, 재생산, 교육에 연관된 권리의 의미를 끌어낸다.(p.14) 마지막으로 넷째, 이 법원의 판례와 미합중국의 전통은 혼인이 사회질서의 근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p.16)

이성 커플의 혼인만을 승인하는 제한은 당연하고 공정한 것으로 오랫동안 여겨져왔지만, 이것이 혼인을 할 기본권에 저촉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p.17) 동성 커플을 혼인제도로부터 배제하는 법률이 기본적 헌장에 의하여 금지된 낙인과 침해를 가져온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p.18)

혼인할 권리는 역사와 전통의 관점에서 본질적이지만, 권리란 고래(古來)의 원천에서만 도출되는 것이 아니다.(p.18) 권리는 지금 시대에 시급한 상태로 방치된 자유를 헌법적 명령이 어떻게 규정하는지에 대한 더 나은 정보와 이해로부터도 도출된다. 동성혼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고결한 종교 또는 철학적 전제에 근거하여 그런 결론에 도달한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 반대가 법률과 공공정책에 반영된다면, 결국 멸시나 낙인 등의 차별을 주 자신이 승인하는 결과를 불러온다.(p.19)

동성 커플의 혼인할 권리는 연방 수정헌법상 평등보호조항에서도 도출될 수 있다. 혼인할 자유가 도출되는 연방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과 평등보호조항은 비록 별개의 원칙이지만, 근본적 측면에서 연관되어 있다.(p.19) 어떠한 경우에든, 두 조항이 권리의 확인과 정의에 수렴하는 바로 그때, 한 조항이 더 정확하고 포괄적인 방법으로 권리의 본질을 포착할 수 있는 것이다.(p.19)

혼인할 권리를 다루는 이 법원의 앞선 판례도 이러한 두 조항의 상호작용을 반영한다.(p.19) 이러한 판결은 헌법상의 자유와 평등 원칙의 정당성을 입증하며, 평등보호조항이 혼인제도의 불평등을 인지하고 수정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p.20)

심판 대상이 된 법은 동성 커플의 자유를 명백히 제한하는 것에 더해 평등의 핵심 원칙을 축소한다. 역사적으로 그들의 관계에 대해 오랜 반감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동성 커플들로부터 혼인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그들에게 심각하고 계속적인 피해를 가하는 결과를 낳는다. 혼인할 기본권에 대한 이와 같은 부당한 침해는 적법절차조항은 물론 평등보장조항에 의해서도 금지된다. 혼인할 권리는 개인의 자유에 내재된 기본권으로서 수정헌법 제14조의 적법절차조항과 평등보호조항에 의해 보장되고 동성 커플들로부터 그와 같은 권리와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p.22)

물론, 헌법은, 그 절차가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변화의 적절한 절차로 민주주의를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었을 때에는,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의 일반적 가치에도 불구하고 법원에 의한 구제를 요구한다. 헌법의 정신은 특정 주제를 정치적 논쟁의 곡경으로부터 분리하고 이를 다수결의 영역 밖으로 가지고 나와 법원이 적용하는 법적 원칙으로 확립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권은 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 어떤 선거 결과에도 좌우되지 않는다.(p.24)

보어스 사건에서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입장에 따라] 동성 간 성행위를 범죄로 만드는 법률이 합헌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보어스 판결은 결과적으로 게이와 레즈비언들에게 고통과 굴욕을 초래했고, 그 피해의 실질적 효과는 보어스 판결이 변경된 뒤에도 계속 남았다.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판결도 동일한 효과를 낳을 것이다.(p.25)

혼인만큼 뜻깊은 관계는 없다. 혼인은 사랑, 충실, 헌신, 희생과 가족이라는 최고의 이상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혼인을 통해 결합함으로써 두 사람은 이전보다 더 위대한 존재가 된다. 상고인들의 일부가 보여주듯, 결혼은 심지어 죽음을 이겨내는 사랑을 담고 있다. 이들 남성과 여성이 결혼의 이상을 무시한다는 주장은 오해에 불과하다. 상고인들은 자신들이 결혼의 이상을 존중하고, 그토록 결혼의 이상을 깊이 존중하기에 결혼의 이상 속에서 충족을 구하고 싶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바람은 문명의 가장 오래된 제도로부터 배제된 채 외로운 삶으로 추방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이들은 법 앞에 평등한 존엄을 구하고 있다. 헌법은 이들에게 그러한 권리를 부여한다.(p.28)

연방제6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을 파기한다.

이와 같이 판결한다.

번역·감수 게이 법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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