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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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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혐오는 전혀 사소하지 않다

데이트 폭력 기사에 달린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미러링’ 댓글 “언니들과 화력을 연대해 얻은 승리의 경험… 일상의 차별에 ‘설치면서’ 문제제기할 자신감이 생겼다”
등록 2015-07-15 14:54 수정 2020-05-03 04:28

고백의 시간이 왔다. 6월 말, 나는 처음으로 기사 댓글을 읽고 고양되는 경험을 했다. 그건 ‘기사가 나간 뒤 ○○○ 조치가 취해졌다’ 같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직업인으로서의 보람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여성이라는 젠더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데이트 폭력에 대한 연이은 폭로를 다룬 기사 ‘왜 그들은 말할 수밖에 없었나’(제1068호)에 달린 댓글들을 읽은 뒤였다.
한 포털 사이트 메인 페이지에 걸린 기사 댓글 가운데 상당수는 ‘미러링’이었다. ‘좌겨레’ ‘사상 뒤틀린 좌녀’ ‘노답꼴페미’ ‘김치녀’ 같은, 맥락도 근거도 알 수 없는 전형적이고 일상적이었던 여성 비하 댓글에서 조롱당하는 사람은 그 기사를 쓴 나 자신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여성들은 그 반대 지점에서 똑같은 말들을 되돌려줬다.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대신 그동안의 혐오 발화에서 조롱의 대상이었던 ‘여성’의 자리에 ‘남성’을 놓는 거울반사 방식이다. 내가 당한 폭력을 돌려주는 부메랑 혹은 ‘역지사지’의 방식에 쾌감을 느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7월25일 여는 ‘먼지차별 킥 페스티벌’ 포스터.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한국여성의전화가 7월25일 여는 ‘먼지차별 킥 페스티벌’ 포스터. 한국여성의전화 제공

여성 혐오 댓글에서 조롱당한 ‘나 자신’

심리학에서 남을 똑같이 복제하는 행위 등을 부르는 별칭 같은 말로 사용돼온 ‘미러링’은 최근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여성 혐오 글에서 조롱의 대상만 남성으로 바꿔 말하는 행위,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발화’를 뜻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런 미러링은 한 달 전부터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분출하듯 일어났다. 여성 이용자들은 그동안 자신이 들었던 모든 종류의 여성 혐오 발언을 하나하나 꺼내들어 남성에게 반사했다. 여성들은 메르스 갤러리에서 “남성들에게 성적 순결성을 요구했다. 스타벅스보다 성 구매 비용이 더 비싸다며 낭비의 프레임을 덧씌웠다. 또 남성들을 성기에 빗댔다. ‘가슴 작은 여자들을 한탄하는 남성들’의 반대 지점에서 ‘성기가 작은 남성들을 한탄하는 여성들’로 돌변했다. …그들은 노골적으로 남성의 ‘품평회’를 일삼았고 남성 강력범죄 수치와 콘돔을 착용하지 않으려는 남자들의 행태, 그리고 처녀를 밝히는 모습 등을 들이대며 ‘남성의 열등함’을 이야기했다.”(백승호 퀴들사운드 대표가 블로그에 쓴 ‘메르스 갤러리에서 남성 혐오가 쏟아져나온 까닭’ 발췌)

힘든 고백을 하자면, 메르스 갤러리에서 여성 이용자들이 보여준, ‘혐오’에 대응하는 ‘혐오’의 방식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못했다. 통쾌한데 뒷맛이 씁쓸했다. 이것은 또 다른 폭력이라는 자기검열이 있었다. 남성들이 미러링을 향해 쏟아내는 비난의 언어는 흔히 이런 것들이다. “김치녀란 단어엔 여성 차별 단어라며 ××××거리면서(화내면서) 김치남이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사용하는 이중인격자들.” 나의 자기검열도 이 비난과 다르지 않았다. 그동안 숱하게 있어왔던 여성 혐오는 지나치고 그 혐오에 대한 ‘혐오’에 더 예민하게 반응한 것이다. 결국 ‘비판의 합리적 기준’을 이성애자 남성의 규준에 맞추고 있었다.

“혐오에서 유익한 정치성을 찾을 수 없는가”

‘여성 혐오’에 대한 ‘혐오’는 나쁜 폭력인가? 임옥희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객원교수는 책 에서 “여성 혐오에 (대응해) 희생양 코스프레가 아니라 혐오로 맞대응하는 것은 하나의 전략일 수 있는가? 혐오에서 유익한 정치성을 찾을 수 없는가?” 질문한다. 그리고 혐오에서 유익한 정치성을 찾을 수 있다는 답을 내놓는다. 애초 페미니즘은 ‘혐오’에서 출발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 가부장적인 국가와 ‘아버지의 법’에 분노를 드러내는 것에서 출발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에 가해진 다양한 폭력과 인격 모독에 대해서는 깊이 ‘혐오’했다. 그 결과 페미니즘은 가정폭력, 성폭력, 성희롱, 강간 등 여성에게 행해지는 모든 폭력을 혐오하면서 예방하고자 했다.”

이때의 ‘혐오’가 ‘여성 혐오’에서의 ‘혐오’와 다름은 중요하다. 기울어진 권력관계에서 강자의 분노와 약자의 분노가 ‘분노’라는 이유만으로 같을 수는 없다. 백승호 대표의 말대로 “차별받아온 사람들이 차별 발언의 주체를 ‘놀려댄다’고 해서 이걸 곧바로 혐오라고 할 수 없다. 이건 희화이며 풍자에 가깝다. 에서 여성이나 장애인을 놀리면 문제가 돼야 하지만 정치인을 놀리면 풍자로서 이해돼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실제 ‘미러링’은 여성들에게 승리의 경험을 안겨줬다. 대학생 한은형(23·가명)씨는 고등학교 때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아이돌 그룹을 비하하는 사진에 문제제기를 했다가 블로그를 털렸다. 커뮤니티 남성 이용자들이 한씨의 블로그 좌표를 찍고 달려들었다. 이런 ‘폭력’을 경험한 뒤 그는 “여성을 ‘구멍’쯤으로만 취급하는 여러 온라인 사이트들의 글을 못 본 척하고 지나치는 나를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런 그에게 메르스 갤러리의 경험은 “언니들과 ‘화력’을 연대해 얻은 승리의 경험”이었다. “이제 일상의 사소하지만 중대한 차별과 혐오를 지나치지 않고 ‘설치면서’ 문제제기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오프라인상의 행동으로도 이어졌다. 메르스 갤러리에서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활동’으로 연대한 이들은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 이름 붙였다. 실제 행동을 위해 네이버 기부 시스템인 해피빈을 통해 6월13일부터 7월5일까지 모금한 1800만원을 성범죄 피해 아동을 위해 기부하기로 했다.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에서 ‘미러링’이 힘을 얻은 사례가 있다. 에 여성학을 공부하는 정지영씨가 쓴 글에 따르면, 올해 3월 한 대안학교 남학생들 사이에 드라마 에서 부하 여직원에 대한 막말, 폭언을 일삼는 ‘마 부장’ 따라하기가 유행했다. ‘마 부장 따라하기 발언’의 수신처가 된 여학생들은 자신이 들었던 폭력적 발언을 남학생에게 똑같이 들려주는 ‘미러링 스피치’를 했다.

‘여자는 3일에 한 번은 패야 돼’ ‘너 김치녀지?’ ‘가슴도 없는데 브라 왜 차?’ ‘계집년이 어디’ ‘생결(생리결석)도 있는데 몽결은 없어?’ 같은 말을 들어온 여학생 33명이 함께 손잡고 점심시간에 그 말들을 남학생들에게 되돌려줬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슬펐는지도 함께 말했다. 이후 연 토론 시간에 남학생들은 ‘일부가 한 말인데 전체를 가해자 취급한다. 왜 밥 먹는 시간에 하냐. 공격적 퍼포먼스라 받아들이기 힘들다’ 등의 주장을 했다. 여학생들은 미리 준비한 호소문을 읽었다. “들어보니 어떻던가요? 가볍던가요? 쉬워 보이던가요? 친하니까, 장난이니까라는 말로 넘어갈 수 있는 말들이 아닙니다. …무심코 내뱉은 말에, 장난스레 웃는 표정 뒤에 했던 그 말들이 우리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다는 걸 알기는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습니다. 더 이상 익숙해지고 싶지 않습니다. 너희도 익숙해지면 안 된다는 걸 지금이라도 제발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메르스 갤러리’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미러링 활동 등을 해온 이들은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 이름 붙였다. ·페이스북 메갈리안 페이지 화면 갈무리

‘메르스 갤러리’ 등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를 혐오하는’ 미러링 활동 등을 해온 이들은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 이름 붙였다. ·페이스북 메갈리안 페이지 화면 갈무리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고

한국여성의전화가 2012년부터 해온 연중 캠페인 이름은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다. “당신이 겪은 그 일은 전혀 사소하지 않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껴진다면 의심하지 말고 당신의 생각을 믿으세요. 사소하지 않았던 폭력과 차별의 순간을 바로 지금 말하세요.” 이제 여성들이 도처에서 말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분위기를 이어 7월25일 마치 먼지처럼 일상에 도저한 차별을 날려버리는 ‘먼지차별 킥 페스티벌’을 연다. 여성학자 정희진, 권김현영 등이 함께하는 ‘집단지성 토크쇼’, 가수 시와·오지은이 공연하는 ‘옥상콘서트’ 등이 열린다.

개그맨 장동민의 여성 혐오 발언은 이제 ‘페미니스트들의 구호’가 됐다. 이제 여성들은 더 많이 설치고, 더 많이 말하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모일 것이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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