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불황’이다. 보수언론에선 과도한 공포심이 내수경기 부진을 불러온다고 우려하지만, 한국인들이 공포에 특히 영향을 받는 건 아니다. 지난해 600만 명이 들어와 14조원 이상을 소비했다는 ‘유커’(중국인 관광객)들의 한국 기피가 더 큰 문제라니 말이다. 한때 홍콩을 떠나 급속하게 한국으로 쏠렸던 ‘유커’는 일본으로 발걸음을 돌렸고 장밋빛 전망은 ‘한여름밤의 꿈’이 될 태세다.
우울증·공황장애자에게 윽박지를까
내수경기에 대한 이 집착은 어디에서 온 걸까.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유독 내수경기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았다. 시간이 지나자 거리의 상인들은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부탁하는 시민들에게 적대감마저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하여 유가족들을 위로했지만, 교황은 방한 이후 보수언론으로부터 한국의 내수경기를 부흥시켜준 은사로 평가받았다. 세월호 참사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은 의인화하자면 우울증 정도에 해당한다. 그에 비교한다면 ‘메르스 불황’은 공황장애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어떤 이가 우울증이나 공황장애에 시달려서 외출을 자제할 때, 우리는 그에게 빨리 당신이 나가서 돈을 많이 써야 한다고 윽박지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사려 깊지 못할뿐더러 매우 무례한 행위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사회적으로는 바로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
당연히 먹고사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양상이 변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곧 죽어도 수출액 증가만이 경제성장의 증표인 것처럼 굴었다. 그러나 특히 이명박 정부 시절 20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수출 대기업의 실적과 내수경제 사이의 괴리가 커졌고 언젠가부터 내수경제와 소비심리에 관한 강조가 두드러졌다. 유독 높다는 한국 사회의 자영업자 비율도 이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참고로 1997년 외환위기 직후 전체 노동인구의 30%에 육박할 정도로 높아졌던 자영업자 비율은 2009년 금융위기를 거치며 대폭 줄어들어 현재는 20%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 한다.
내수경기에 관심을 가지는 건 한국 사회에서 몇몇 대기업의 영업지표를 드러내는 것과 흡사한 수출 실적에 관심을 가지는 것보단 그나마 나은 일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돈이 돌지 않는다고 난리면서, 왜 돈이 없는 이들에게 더 나눠줄 생각은 하지 않는가. 이를테면 모두들 내수경기를 걱정하면서 어째서 최저임금 인상 논의는 활발하지 않은가. 답은 이미 나와 있다. 사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 3월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언급한 사례는 한국 사회의 보수세력에게도 진정으로 내수경기 진작의 필요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대기업이라기보단 바로 내수경기 부진에 울상짓는 영세자영업자들의 사정 때문에 최저임금은 급격하게 인상되기가 어렵다.
자영업자와 알바의 대립최저임금 문제에 관해 가장 분통을 터트리는 게 영세자영업자들이다. 그들은 야근수당과 주휴수당을 챙겨주라는 노동부의 캠페인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평한다. 걸스데이 혜리의 ‘알바몬’ 광고에 대한 반발 역시 그 일환이었다. 몇몇 편의점주는 법을 지킬 경우 외려 자신들이 최저시급도 못한 벌이를 하게 된다고 반발한다. 아마도 그 말이 맞을 것이다.
그들 중 상당수는 자영업을 할 것이 아니라 노동시장에 나와야 하며, 정부로부터 적절한 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영업을 하더라도 프랜차이즈 본사에 착취당하지 말아야 하며, 영업 시간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그들은 알바생의 최저임금에 대해서만 ‘지킬 수 없는 법’이라 거품을 무는 처지다. 자영업자와 알바의 대립을 이대로 방치하는 한, 내수경기 강조는 ‘백마 탄 유커’가 다시 찾아와야 한다는 꿈결 같은 소리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부터가 이미 알고 있다. 계속 놀러오기엔 드라마만큼 매력적인 나라는 아니란 걸 말이다.
한윤형 칼럼니스트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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