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3 526 5738. 지금 당장 전화해주세요!
이라는 제목의 책과 비디오 영상 두 가지를 합쳐서 150달러에 팔고 있습니다. 마약이 금지된 지 100주년이 되기 하루 전날, 언론인 조핸 해리는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3년 동안 3만 마일을 돌아다니며 마약중독과 관련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건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마약중독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왜 마약과의 전쟁이 끝나야만 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입니다. 가 뽑은 베스트셀러이기도 합니다.
독립언론이 홀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여러분의 후원이 필요합니다. 3분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습니다.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다시 한번 전화번호를 알려드립니다. 713 526 5738.”
홈쇼핑 쇼호스트가 따로 없다. 라디오 방송이 진행되는 1시간 동안 에이미 굿맨(58)은 숫자 하나하나에 꾹꾹 힘을 주어가며 ‘713 526 5738’을 수십 번쯤 읊었다. 빌리 홀리데이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프레디 그레이 사망과 관련한 뉴스를 소개하는 중간중간마다 굿맨은 책을 팔고 유명 저널리스트 나오미 클라인의 강연회 티켓을 팔았다. 그러나 ‘장사’라는 수식어가 어울리진 않는 분위기였다.
희끗희끗해진 금발의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의 굿맨은 꼬장꼬장한 말투로, 단호한 목소리로 ‘도움’을 호소했다. 그건 허리를 한껏 숙인 ‘부탁’이라기보단, 청취자를 향한 당당한 ‘요구’에 가까워 보였다. 기업의 광고와 정부의 재정 지원으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언론’을 지켜달라는.
지난 5월1일 오전 8~10시, 미국 뉴욕에 위치한 방송사 스튜디오. 에이미 굿맨이 TV 생방송 뉴스쇼와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틈틈이 인터뷰를 진행했다.
1985년 라디오 네트워크의 뉴욕 회원방송사인
한국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에이미 굿맨은 미국에서 전설적인 진보 언론인이다. 하버드대학교의 니먼언론재단이 언론 독립에 기여한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I. F. 스톤 상’(미국 독립언론의 선구자로 불리는 탐사보도 언론인 I. F. 스톤을 기리는 상)의 2014년 수상자로 선정된 것을 비롯해 조지 포크 상 등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저널리즘 관련 상을 받았다. 언론인으로서는 드물게, 정의·진실·평화 증진을 위한 활동을 벌인 사람에게 스웨덴 ‘바른생활재단’이 수여하는 상(정치적 요인에 좌우되는 노벨상에 반대한다 해서 ‘대안 노벨상’이라고도 불림)을 받기도 했다. 여러 권의 책도 썼는데, 독립 저널리스트인 동생 데이비드 굿맨과 함께 쓴 (마티)는 2011년 한국에서도 출판됐다.
의 경쟁력은 뭐라고 생각하나.
우리는 1996년 라디오 방송에서 시작했다. 대통령 선거 때만 잠깐 운영되는 뉴스쇼였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 방송에 환호하면서 의 간판 뉴스 프로그램이 됐다. 그 뒤 에서 재정과 조직을 독립했다. 2001년 9·11 때 뉴욕 TV센터에서 매주 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했다. 다른 방송사에서도 방송 요청이 이어졌다. 그때 9개 방송사에서 시작해 현재는 라디오, 케이블과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인터넷 등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 1300개 방송채널에서 우리 뉴스가 방영되고 있다. 우리는 지난 20년 동안 굉장히 많이 성장했고, 신뢰받는 매체가 됐다. 사람들이 그만큼 독립적인 언론의 뉴스 보도에 굶주려 있다고 느낀다.
기업 광고나 정부 지원을 받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재정적 어려움이나 위기 상황은 없었나.
우리는 개인 청취자나 시청자들의 도움과 후원만으로 운영되는 독립언론이다. 그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전쟁과 관련한 뉴스를 다루는 데 무기판매상의 도움(광고나 협찬)을 받거나, 약에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제약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진보언론’ 대신 ‘독립언론’
홈페이지(www.democracynow. org)에 처음 접속하면 독립언론을 위해 기부해달라는 안내문이 팝업창으로 뜬다. 매달 7~200달러까지 후원금액을 정할 수 있고, 많은 금액을 내는 후원자에게는 기념품을 보내준다. 2천달러 이상을 기부하면 에이미 굿맨과 저녁 식사를 한 뒤 스튜디오를 방문하는 특전이 주어진다. 를 연구한 미디어학자(미국 컬럼비아대 박사 과정)인 서수민씨는 “재정의 60%가량은 개인의 후원금, 책과 기념품 등의 판매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40%는 작은 재단에서 나오는 기부금으로 채워지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에이미 굿맨은 침묵하는 다수와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 아니라, 유명인들과도 끈끈한 친분을 맺고 있다. 노엄 촘스키, 슬라보이 지제크, 우고 차베스, 에드워드 사이드, 하워드 진 등이 의 단골 출연자다. 지난 4월에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단독으로 인터뷰하기도 했다. 에서 일하는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진보언론’ 대신 ‘독립언론’으로 일컫는다. 자본으로부터 독립적일 뿐 아니라, 민주당을 향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우는 정치적으로 자유로운 언론이라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에이미 굿맨은 2000년 대통령 선거 때 앨 고어 지지를 부탁하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인터뷰에서 이라크 제재, 인종 프로파일링 등에 대해 예민하고도 전투적인 질문을 던졌다가 백악관 출입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당신이나 는 대안 미디어이긴 하지만, 전통 언론의 문법에 더 익숙해 보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새로운 뉴스 플랫폼의 영향력 확대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언론이라면, 특히 우리처럼 일반적인 게이트키퍼가 없는 매체라면 SNS 등의 모든 플랫폼이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도 TV 방송뿐만 아니라 라디오, 인터넷 방송,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시청자가 있는 곳이라면 모든 방식으로 찾아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여기엔 한 가지 전제가 있다. 기술 발달에 따라 통신회사나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인터넷을 사유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전세계 사람들이 풀뿌리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몇몇이 인터넷 공간을 사유화하는 걸 막아내고, 중립적인 네트워크 공간으로서의 위치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첫 번째 방법
에서 에이미 굿맨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7가지 방법’ 가운데 첫 번째로 언론운동을 꼽았다. △대기업의 재정 지원을 받는 언론매체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관점과 인물을 다루고, 전세계의 보통 사람들과 풀뿌리 활동가에게 발언할 통로를 제공하는 ‘독립언론’을 지원하자 △스스로 언론매체를 만들자 △거대 언론을 견제하자. 2015년 한국 언론들에 반성을 촉구하며 띄운 ‘팝업창’처럼 읽힌다. 특히 마지막 한 문장. “권력 앞에서 진실을 말하자.”
뉴욕(미국)=글·사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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