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추모 리본을 우익단체가 강제 철거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막기 위해 지난 9월27일 서울광장에 나갔다. 설마 했는데 예고한 단체가 정말 가위와 상자를 들고 광장에 나타났다. 그들의 가슴과 등에 적힌 ‘서북청년단’(서청) 글씨를 보자 ‘학살’이라는 섬뜩한 두 글자가 떠올라 손이 떨리고 심장이 벌렁거렸다. 그들은 광장 모퉁이에서 ‘서북청년단재건준비위원회’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성명을 발표했다.
93살 전범을 법정에 세운 독일
“해방 직후 북한 공산주의의 거짓과 허상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자유를 찾아 월남한 서북지방 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된 서북청년단은 구국의 최전선에서 공산주의에 맞서 자유 대한민국을 지켜낸 구국의 용사들이며, 이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북청년단’ 재건을 준비하고 있다. 이에 뜻을 같이하는 구국청년들의 참여를 기다린다.”(서청 성명서 중에서)
서청이 어떤 만행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는 게 분명함에도 그들은 너무도 당당하게 ‘서청’의 정신을 이어받겠다고 선언했다. 서청은 1945년 해방 이후 북한에서 식민지 시대의 정치적·경제적 기득권을 잃고 남하한 세력이 결성한 극우 테러단체로 4·3항쟁 당시 제주도에서 우익 민병대로 악행을 일삼았다. 제주도민 30만 명 중 2만5천~3만 명이 학살된, 우리 현대사의 큰 비극 중 하나인 제주 4·3항쟁에서 그들은 학살 실행자였다. 그뿐만 아니라 대구 노동자 파업, 보도연맹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에도 개입해 민간인 수십만 명의 학살에 관여했다. 김구 선생을 암살한 안두희도 서청 조직원이었다.
독일 검찰은 지난 3월 나치 친위대(SS) 소속으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의료진으로 일하며 수용자 살상에 가담한 93살 나치 전범 용의자를 체포해 법정에 세웠다.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역사가 평가를 내린 반인륜 범죄에 단호하게 대처하는 독일의 ‘역사 반성’을 우리 사회도 배워야 한다. 정부는 올해 제주 4·3항쟁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해 국가와 서청의 민간인 학살에 대한 잘못을 일부 시인했다. 정부의 이런 노력이 의심받지 않으려면 대명천지에 우익 테러조직인 서청의 정신을 계승하고 이를 재건하겠다는 이들을 방치해선 안 된다.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들에 대한 태도가 현 정권의 역사 인식 척도의 하나가 될 것이다.
비운의 ‘반민특위’여 휘날려라‘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서청의 만행은 일제 식민지의 잔재 세력을 청산하려다 채 1년도 활동하지 못하고 1949년에 해산당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비극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독재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친일세력을 규합하고 그들 손에 ‘반공’의 무기를 쥐어줘 화려하게 부활시킨 이승만 정권은 결국 4·19혁명으로 무너졌다. ‘반공’이라면 그 어떤 야만에도 면죄부를 주는 정권의 운명은 몰락임을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이다. 여전히 광장에 나부껴야 할 깃발은 야만의 서청이 아니라 비운의 반민특위 아닐까? 광장에서 서청을 보게 되는 사회의 이름은 ‘야만공화국’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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