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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미루지 말아달라”

서울중앙지법 민사 41·42부의 현대차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선고 연기 뒤

벼랑 끝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간 사내하청 노동자들
등록 2014-09-20 14:43 수정 2020-05-03 04:27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3명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9월11일부터 시작했다. 김명진 기자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 3명이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의 조속한 판결”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9월11일부터 시작했다. 김명진 기자

9월1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에 조촐한 단식농성장이 차려졌다. 천막 하나 없이, 바닥에 깔고 앉은 골판지가 전부다. 덩치 큰 사내 셋이 겨우 엉덩이를 비집고서 나란히 앉았다. 이진환, 박현제, 김응효. 셋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다. ‘현대차 근로자지위 확인소송 즉각 판결하라!’ 뒤에 걸어놓은 플래카드에 적힌 건, 참담한 절규다. “제발 선고를 미루지 말아달라.” 정작 속내는 재판부에 보내는 간곡한 호소에 가깝다.

선고 연기 뒤 빠르게 움직이는 현대차

서울중앙지법 민사 41·42부는 9월18~19일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 1569명이 “불법파견된 사실상의 직원”이라며 현대차를 상대로 낸 집단소송의 1심 판결을 선고할 예정이다. 소송을 낸 지 이미 햇수로 5년이나 ‘묵은’ 사건이다. 판결도 올해 들어서만 2차례 연기됐다. 지난 8월18일 현대차 노사가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를 정규직으로 ‘특별고용’하고 ‘소송 취하서 제출’을 정규직 채용의 전제 조건으로 삼기로 합의하자, 법원은 8월21~22일 예정된 판결 선고일을 미룬 바 있다(제1026호 표지이야기 참조).

그 뒤 3주가 흘렀다. 세 사람이 속한 울산비정규직지회는 아산·전주공장 비정규직지회와 달리 합의안에 동의하지 않았다. “현대차의 불법파견이라는 범죄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합의”라고 판단해서다. 하지만 정규직 400명을 ‘특별고용’하는 채용공고가 붙자, 울산도 들썩였다. 조합원 900여 명 가운데 50여 명이 채용원서를 냈고, 해고자의 절반가량인 21명이 사내하청업체에 원직 복직하겠다는 합의안을 따르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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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쪽은 노사 합의 뒤 ‘날개’를 단 듯 움직였다. 합의 직후인 지난 8월25일부터 현대차는 최병승씨의 울산공장 출입을 막고 있다. 최씨는 2010년 대법원에서 현대차 정규직임을 처음 인정받은 사내하청 노동자다. 복직 절차 등을 둘러싼 회사 쪽과의 마찰로 인해 아직 일터로 돌아가진 못했지만, 정규직 노조 조합원 자격으로 그동안 공장을 출입해왔다. 출입 금지는 새삼스럽다. 최씨는 매일 아침 공장 정문 앞에서 연좌농성을 벌이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다른 계열사도 나섰다. 기아자동차는 9월4일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와의 특별교섭에서 △2016년 말까지 사내하청 노동자 중 150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 △소송 취하 등 현대차와 거의 똑같은 합의안을 제시했다.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500여 명도 근로자지위소송을 내어 9월25일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울산비정규직지회를 비롯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판결을 기다린다. 최소한 자동차 조립공정에서 일했던 700여 명의 ‘불법파견’ 사실은 인정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원이 원고인 사내하청 노동자 일부가 계속 ‘소 취하서’를 제출한다는 이유로 또다시 선고를 연기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사소송법상 원고 개인이 소 취하서를 내더라도 피고인 현대차의 동의가 표시돼 있거나, 현대차가 동의한다는 뜻을 확인하는 2주간의 절차를 거치도록 돼 있는 탓이다.

이에 원고 쪽 변호인은 “피고가 소 취하에 동의하였음을 이미 명백히 밝혔기 때문에 소 취하서를 내는 순간 바로 효력이 발생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소 취하로 인해 피고(현대차)의 이익이 침해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이번에는 반드시 선고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민사 41부와 42부 재판장은 선고 여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확답을 피하며 “(선고 연기시) 공보판사를 통해 알리겠다”고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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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 없는 이들의 절규

“뭐라도 해보겠다는 절박한 마음”(김응효)으로 단식농성을 선택한 세 사람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더 이상 (벼랑 끝으로) 몰리지 않도록 하루빨리 판결이 선고되길”(박현제) 바란다. 예정대로 판결이 선고된다면 일주일 동안, 다시 선고가 연기된다면 아마도 무기한, 이들은 곡기를 끊어야 한다. 가진 것 없는 이들에게 단식은 최후의 언어이자 최후의 절규다. 광화문에서도, 서초동에서도.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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