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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겡키데스카

등록 2014-08-02 14:39 수정 2020-05-03 04:27

난 지금 일본인 친구 2명과 우정과 동지애를 쌓아가고 있다. 그중 한 명은 수십 차례, 다른 한 명은 몇 차례 한국에서 같이 데모했다. 그들 모두 자국 문제는 물론이고 한국의 민주주의, 노동자 투쟁, 역사 문제에 깊은 애정을 갖고 연대하고 있다. 한국인들 앞에서 자신을 소개할 때마다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라고 인사하는 세계인이다.

“이 친구를 아십니까” “접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1년 전 여름이었다. 장기투쟁 사업장에서 데모하고 있는데 일본인 2명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한국인 통역관을 사이에 두고 대화하다 페이스북에 접속해 내 일본인 친구를 보여주며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접니다.” 한 일본인이 환하게 웃으며 답변했다. 나뿐만 아니라 곁에 있던 이들 모두가 기이한 인연이라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일본인 페이스북 친구와 데모 현장에서 처음 대면했다. 그날 동행한 다른 일본인과 그 자리에서 페이스북 친구로 등록해 일본인 친구가 2명 생긴 것이다. 그날 이후 2명 다 데모당(페이스북 그룹)에 입당해 지난해 가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한국과 일본에서 핵발전소 반대 1인시위를 함께 진행했다.

얼마 전 일본 정부가 각의(국무회의)를 열어 ‘집단자위권을 행사하는 것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방침을 결정했다. 주변국과 자국 민중의 반대에도 기어이 ‘전쟁 가능’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만 것이다. 아베 신조 정부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회를 틈타 ‘평화헌법 제9조’마저 개정하려 하고 있다. 이를 저지하기 위해 지금 수많은 일본인들이 총리 관저와 거리에서 아베 정부를 규탄하며 저항하고 있다. 당연히 내 일본인 친구들도 그곳에 함께한다. 그 친구들의 연대 요청으로 난 지난 7월 일본대사관 앞에서 아베 정부를 규탄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우린 민족과 국경의 경계를 뛰어넘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데모가 희망이다’라는 생각으로 각자 자기 위치에서 싸우고 때론 함께 싸우는 친구요 동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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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민중 모두에게 잔인한 8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일본인을 싸잡아 ‘왜놈’ ‘쪽바리’로 비하하는 글을 자주 접한다. 한-일 외교관계가 악화될수록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그들을 폄훼하고 욕하는 글이 난무한다. 심지어 일부는 저주를 퍼붓거나 적개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계화 시대 일원으로서 여전히 민족주의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외부에 희생양을 만들어 공동체 구성원의 분노를 관리하며 내부를 단결시키는 방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지배권력이 즐기는 통치술이다. 지배권력과 언론에 놀아나는 사람은 어디에든 있기 마련인데도 한-일 문제에서만큼은 진보연하는 이들마저 세계인이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 씁쓸하다. 한-일 민중 모두에게 잔인한 8월이 다가온다. 올해도 예외 없이 내 일본인 친구들은 싸잡아 욕을 먹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난 지금 이 시각에도 일본에서 자국과 국제 평화를 위해 싸우고 있는 친구이자 동지인 그들과 함께 우애와 평화의 목소리를 더 키울 것이다.

데라시타상, 고바야시상,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시나요?)

이은탁 데모당 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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