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저 큰 배가 가라앉고 있고, 그 안에는 300여 명의 사람들이 아직 타고 있으며, 그리고 그 순간에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것. 더 믿지 못할 일들은 그 뒤에 벌어졌다. 오열하고 분통을 터뜨린 유가족을 비하하거나, 죄스런 마음에 모여든 추모객을 괴뢰 빨갱이라고 비웃는 엄청난 녀석들이 나타난 것이다. 처음엔 정말 이해하기도, 믿기도 힘들었다. 어쩜 나와 저렇게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말할 수 있나,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러나 난 이제 그 이유를 알았다. 그들은 지구인이 아니다. 그들은 외계인이다.
무중력 공간을 배회하는 우주인
외계인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지구의 일에 대해서 그렇게 둔감하거나 무감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이 유가족이나 추모 행렬에게 말했던 “미개하다” “북괴 선동” “유가족이 벼슬이냐” 등등의 말들도 모두 외계어다. 이 외계인들의 모선(母船)이 박근혜 정부라고 추측해볼 수도 있다. 박근혜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도 사실 외계어를 구사하기 위함이니 말이다. 첫 번째 사과에서 책임자를 엄벌하겠다는 둥, 적폐라는 둥 외계어를 대방출하시어 지구인들을 일차 당혹하게 하더니, 번역이 잘 안 되어 혼란이 가중되자, 두 번째 사과에서는 아예 해경 해체라는 인간 지성을 초월하는 최고난도 외계어로 지구인들 아연실색 피니시. 외계어는 다른 것이 아니다. 지구인들의 아우성에 엉뚱하게 딴말하고, 공감하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면, 그게 외계어다.
난 박근혜가 외계인 내지 우주인이라는 증거 화면도 가지고 있다. 박근혜가 분향소를 찾았을 때의 장면이 그것이다. 소리는 모두 지워져, 마치 그녀가 무중력의 우주 공간에 혼자 둥둥 떠 있는 것 같은 바로 그 ‘초현실주의적’ 장면 말이다. 혹자들은 이 초현실주의적 음소거에 대해서, 아우성과 비명이 삭제된 공백이 아니고서는 제왕적 이미지를 유지할 수 없는 공주의 외로움을 표현했다고들 하지만, 그건 틀린 해석이다. 이 음소거는 무중력을 의미한다. 단 질량이란 국민, 중력이란 공감일 뿐이다. 영화 의 우주인이 중력을 잃고서 우주 미아가 되었듯, 박근혜는 공감을 잃고서 국가 미아가 된 것뿐이다.
같은 초현실주의더라도, 이명박과 박근혜의 차이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명박 우주인은 무언가를 쌓고 본다. (근대 한국사에서 가장 초현실주의적 장면으로 꼽힐 만한)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불시착한 UFO 같았던 명박산성이 아주 좋은 예일 것이다. 박근혜 우주인은 반대로 무언가를 없애고 본다. OT에서 일 터지면 OT를 없애고, 수학여행에서 일 터지면 수학여행을 없애고, 아우성이 성가시면 소리를 지우면 되고, 해경이 잘못했으니 해경을 없애면 된다는, 외계적 사고. 근혜산성의 재료는 다름 아닌 공백이다. 거기서 공감은 삭제된다. 명박산성이 건설과 규모의 초현실주의라면, 근혜산성은 삭제와 고독의 초현실주의인 것이다.
가장 큰 질량은 군중박근혜 우주인을 둘러싼 무중력 공간, 소통차단벽, 근혜산성, 무공감 지대는 아마도 박근혜 우주인 자신으로부터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엉뚱한 것들을 삭제해나가는 와중에, 국민과의 교감 또한 삭제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기춘 비서실장 같은 막후 고정점들이 이 무중력 공간의 예외가 될까? 좀더 지켜볼 일이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한다. 그리고 가장 큰 질량(mass·군중)이란 국민이다. 어떤 우주인이라도 이 거대 질량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길은, 자기 자신의 질량을 무한히 줄여나가는 것, 즉 자기 자신을 삭제해버리는 것밖에 없다. 중력을 이기는 길은, 그것이 매우 강할 때는, 중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길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곡 영화감독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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