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사건 구속자의 부인 박혜진(39·가명)씨를 1월과 3월, 두 차례 만났다. 1월 만남에서 불안했던 모습과 달리 3월에 다시 만났을 때는 앞으로 2심까지 힘을 내야 살 수 있을 것이라 마음을 다잡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혜진씨는 중간중간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이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유를 아직도 이해할 수 없고, 1심에서 당연히 무죄판결을 받을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평범했던 일상이 권력에 의해 깨지고, 내란음모라는 죄명이 무겁게 이 가족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용기를 내어 말한다는 혜진씨의 이야기를 직접 듣고, 그의 목소리로 인터뷰를 재구성했다.
박혜진(가명)씨는 압수수색 그날 이후, 아이의 트라우마가 가장 걱정된다. 그러나 거대한 감옥처럼 느껴지는 세상에서 상처를 치유할 가능성은 보이지 않는다. 다산인권센터 제공
처음에는 마음이 정말 아팠어요. 숨도 쉬어지지 않더라고요. 이런 일이 나에게 생길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고 평범하게 살았기 때문에 견딜 수 없이 힘들었어요. 저뿐 아니라 아이도 상처를 많이 받았나봐요. 지난해 8월28일, 그날 새벽부터 여러 명이 들이닥쳤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아이의 장난감이 망가지기도 했어요. 저녁때 아빠가 수갑을 차고 나갔는데, 아이는 온종일 그 과정을 보고 있었던 거예요. 얼마 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의 행동이 산만하고 집중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는 건물에 있는 정신과 병원에 상담 문의를 했어요. 그날 점심때 병원 직원에게 상담받을 수 있는지 물어봤는데, 조금 있다가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그냥 참으면 안 되겠느냐고 하더라고요. 혹시 나 때문에 병원에 피해가 갈 것 같은지 물으니, 그런 이유도 있고 본인 생각에 치료를 받지 않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대답했어요. 아이만이라도 치료해주면 안 되겠는지 물어봐도 선뜻 대답을 못하고 다른 병원을 찾아보면 안 되겠느냐고 했어요.
그날 이후 사람들이 어떤 선입견을 가지고 볼지 모른다는 게 겁나고 무서워서 결국 치료를 받지 못했어요. 아이의 불안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어요. 아이는 보이는 공간에 제가 있지 않으면 굉장히 위급하고 다급하게 저를 찾아요. 그래서 웬만한 곳은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아이와 같이 갈 수 없는 장소는 되도록 안 가려 해요. 얼마 전 하늘나라에 가신 아빠를 그리워하는 이야기 동화를 선물로 받았거든요. 동화 속에서 가족들이 오열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아이가 “왜 다들 우는 거예요? 하늘나라로 돌아가시는 게 뭐예요?”라고 묻는 거예요. 다시는 그 사람을 볼 수 없는 거라고 대답해줬더니 그 뒤 아이가 아침에 눈뜨면 “엄마, 하늘나라로 돌아가시면 안 돼요”라고 해요. 트라우마가 남은 거예요. 다행히 이번 인권보고회에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해서 4월부터 참여하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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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수수색 당시 국가정보원 직원들은 집 안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가져갔어요. 아이의 성장 과정을 모아놓은 비디오테이프까지 증거로 가져가려고 해서 한참을 싸웠어요. 압수수색영장이 왜 나왔는지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고요. 교통범칙금을 물릴 때는 적어도 사진이라도 같이 오는데, 어떻게 압수수색은 설명조차 없을까요. 저는 남편이 내일이면 “그거 잘못된 거래”라고 말하며 다시 돌아올 줄 알았지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어요.
쇼핑하러 명동 간 게 증거지난해 6월 가족이 주말을 맞아 서울 명동에 나들이를 갔어요. 아이에게 뮤지컬도 보여주고 명동 구경을 시켜준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그게 나중에 내란음모의 증거로 나왔더라고요. 국정원은 명동 근처의 정보시설에 내란음모를 위해 방문했다고 주장했다는데 저희 같은 일반인은 그런 시설이 있는지 알 수도 없잖아요. 당연히 아니니까 저희는 그날 쇼핑한 영수증을 증거 자료로 제출했어요. 재판 과정에서 이런 진실이 하나하나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남편과 이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법의 양심이나 정의가 정치를 넘어설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희망을 많이 가졌어요. 그래서 1심 선고 이후 더 공포스러워졌어요. 상식이 없는 상황에서 사는 것이 숨 막히게 두려웠고요. 판사에게 묻고 싶었어요. 진짜 내 남편이 내란범이라고 생각하느냐고. 진짜 그렇게 믿는 거냐고. 사람들이 진짜 그렇게 믿는 것 같아 힘들었어요. 도대체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암담했어요.
혜진씨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을 흘려 한동안 인터뷰를 중지해야 했다. 그러다가 자신이 무너지면 아이 아빠도 무너진다고 말하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날 새벽 6시40분쯤 국정원이 들이닥쳤을 때 카메라 장비랑 SBS 기자들도 왔어요. 집 안을 찍으려고 해서 지인이 기자들을 밖으로 내보냈어요. 제가 사는 지역 신문에 저희 동네 이름이 나와서 빼달라고 요청한 적도 있어요. 이후 국정원에 면회를 가다가 구속자 가족분의 차가 낙서 테러를 당하는 걸 지켜봤는데, 함께 페인트 자국을 지우면서 굉장히 공포스러웠어요. 요즘엔 마음만 먹으면 금방 신상을 캘 수 있어서, 다음 차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두려움에 한동안은 외부에 산책도 나가지 못했어요. 이후 통합진보당에서 하는 해명 등이 다 왜곡 보도되는 것을 보고 아예 언론이 작정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란음모 압수수색 뒤에는 매일 똑같은 기사가 쏟아져나왔지만 녹취록이 왜곡된 것에 대해서는 100분의 1도 안 나왔거든요. 그래도 는 이제 진실의 편에 서려는 모습이 보여 다행이에요. 하지만 아직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멀쩡한 사람을 괴물로 만들어버리고는 반성조차 하지 않아요. 다음은 누가 될까요. 저는 언론이 펜을 무기처럼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제발 무기를 내려놓고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해요. 역사적 책임은 언론에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가장 큰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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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뭘 가지고 종북이라고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08년 1월에 시어머니를 모시고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어요. 그때 먹은 육회도 맛있었고, 금강산도 다시 보고 싶어요.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종북이 될 수 있어서, 북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종북이 될까봐 두려워요. 며칠 전에 아이가 “북한은 어디야? 유럽이야?”라고 물었어요. 제가 우리나라 북쪽에 있는 나라라고 했더니 아이가 “그럼 우린 남칸이야? 북칸·남칸”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하면 웃던데 저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혹시 어딘가에 도청장치가 있어서 다 조작하고 증거로 들이대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한마디 한마디가 조심스럽고, 무엇을 생각하고 말해야 할지도 모르겠더라고요. 어디까지가 종북인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상식적인 기준 자체가 무너진 것 같고, 종북이 아니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이런 상태에서 저희 남편을 포함한 구속자 7명에게 덧씌워진 오명이 벗겨지지 않으면 감옥에서 나온다고 해도 또다시 커다란 감옥에서 사는 것이 아닐까요. 머릿속까지 검열하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감옥이오. 그 감옥에서 나오는 것은 저희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이상 종북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혜진씨는 잘못된 언론의 말만 믿고 아무렇지 않게 돌을 던지지 말아달라고도 했다. 이 비상식을 상식으로 돌려놓는 데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무섭다고 피하지 말고, 모른 척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윤지현 인권활동가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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