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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조심스러웠다. 내란음모라는 무거운 혐의가 세상에 등장한 순간부터. 내란을 계획하고 폭력행위를 선동했다는 회합의 녹취록이 공개됐다. 녹취록은 국가정보원의 수사 결과에 반하는 모든 이견을 잠재웠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거론하는 목소리도 있었으나, 내란음모가 기정사실이며 피의자들이 위험한 집단이라는 전제하에 관용적으로 베풀어지는 수사적 표현에 가까웠다. 무죄 추정의 원칙 같은 원론적인 이야기조차 ‘저들에게 동의하지 않지만’이라는 선을 그은 채 입 밖에 낼 수 있었다.
혐의가 유죄로 판결된 지금, 당시 그들에게 쏟아지던 관심과 비난은 죄의 무게에 값하는 것이었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이 떠들썩한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사건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가 잃어버린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다.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형성된 저 위압적인 분위기는 과연 무엇이었나? 역사적으로 내란음모가 등장한 배경을 아는 우리에게 양심의 자유나 무죄 추정을 받을 권리가 그토록 초라한 것이었나? 무엇보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까지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도는 있었는가?
“내란음모? 검색을 해봤어요”그 질문에 답하려면 국가정보원이 이른바 ‘내란음모’ 피의자들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작한 지난해 8월로 돌아가야 한다. 진보당 경기도당 홍순석 부위원장은 1차 압수수색 대상자였다. 그의 부인 박사옥씨와의 인터뷰는 1심 재판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월 이뤄졌다. 국정원은 가족 모두가 자고 있던 새벽에 느닷없이 들어와 집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좁은 집에 장정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잠옷을 갈아입을 기회도 주지 않았다.
“국정원 여직원하고 방에 같이 들어가서 갈아입으라는 거예요. 항의를 했더니 절대 안 된대요. 그래서 혼자 옷을 갈아입으러 방에 들어갔는데 여직원이 따라 들어왔어요. 그 상태에서 옷을 갈아입었어요. 안방에 와서 제 가방을 보려고 하기에 내 소지품에 대한 영장은 없으니까 보지 말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누구 것인지는 확인해야 하니까 보겠다고 우기는 거예요. 그때 현장에 와 있던 변호사가 그건 어렵겠다고 한마디 하니까 그제야 안 보는 대신 신분을 확인해야겠다고 했죠. 노트북도 가져가려는 걸 항의했더니 하드를 통째로 가져가버렸어요. 아직까지 돌려주지 않았죠.”
압수수색 12시간 동안 진이 다 빠졌다. 국정원 사람들은 찾는 물건이 있는 듯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물건이 나오지 않자 아주 사소한 것까지 샅샅이 뒤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란음모를 증명하기 위한 무기 같은 걸 찾은 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 국정원은 많은 압수수색 대상자들의 집에서 내란음모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가보안법과 연관될 만한 책과 영상 자료, 심지어 노래 악보집까지 수거해갔다.
“그날 저녁 언론에서는 이미 이들이 내란음모를 했다는 내용이 보도되고 있었어요. 첫날은요, 압수수색 영장에도 내란음모라는 죄목이 있었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죄인지 감이 안 왔어요. 내란음모? 이게 뭐지? 하다못해 검색을 해봤어요. 옛날 김대중 대통령에게 씌웠던 혐의더라고요. 뉴스를 보면서도 우리랑 상관없는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느낌이었죠.”
국정원은 압수수색 당시 대규모 경찰 병력을 동원했다. 언론은 국정원과 거의 동시에 출동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흡사 살인이라도 벌어진 현장 같았다. 마녀사냥은 의도된 것이었고 국정원의 의도대로 여론재판 분위기가 형성됐다.
박사옥씨는 국정원의 압수수색 이후 생활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현실의 무게가 더 무거웠다고 말한다. 과잉 수사로 생긴 심리적 강박증은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고통이었다. 국정원은 1년 넘게 집 전화를 도청하고 가족을 미행했다. 그 뒤 집 전화로는 통화를 길게 못하고 한여름에도 커튼을 치고 산다.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는 누군가 따라오지 않는지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본래 아침잠이 많은데 새벽 6시면 눈이 떠진다. 국정원이 “이사차가 들어오니 차를 빼달라”며 거짓말을 하고 집 안에 들어온 시각이 새벽 6시30분이었다. 트라우마다.
“이게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위축시키는구나, 공포감을 주는구나 느끼고 있어요.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왜 이런 불안에 떨면서 사는 거지? 이런 강박증이 사람을 압박하고 조이는 거예요. 일상에 편안함이 없어요.”
“제보자와 잘 아는 사이예요”안전하고 친숙했던 것들이 압수수색 이후 변질되었다. 아빠를 빼앗긴 가정, 집, 그가 오랫동안 헌신해온 지역사회. 그는 경찰 수십 명이 와서 난리를 치고 간 뒤에도 사건에 대해 모른 척해준 이웃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남편이 나오면 반드시 이사를 가야지 생각한다. 국정원이 훼손하고 간 공간을 떠나고 싶은 것이다.
“검찰에서 운동권 용어도 RO(지하혁명조직)의 증거로 삼고 있죠. 그럼 이제 내가 습관적으로 쓰던 용어들도 쓰지 말아야 하나 검열하게 되는 거예요. 제가 시민단체에서 일하는데 어디 제출하는 계획서를 쓰더라도 신경이 쓰여요.”
국정원의 수사로 그의 가족이 빼앗긴 것은 한마디로 ‘자유’다. 이는 그간의 도청과 미행에 대한 트라우마로서만 남은 것이 아니다. 국정원의 수사와 ‘내란음모’ 이름표는 사람에 대한 그의 믿음, 또 그에 대한 사람들의 신뢰 관계를 깨뜨렸다. 이후 그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느꼈다. 이 또한 이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심리적 지옥이다.
“남편이 이 사건의 제보자와 잘 아는 사이예요. 원체 잘 알고 지병도 있고 해서 돌보기도 하고 잘 챙겨줬는데… 뒤늦게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남편이 말을 못 잇는 거죠. 그 심정이 어땠을까 싶어요. 이제 사람도 못 믿는 거야? 누구를 믿고 살아야 하지? 믿는 사람의 등에다 칼 꽂는 상황을 국가가 만들고 있구나….”
외면하는 사람들, 남은 나날들1월, 판결이 나기 전에도 박사옥씨는 직장을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회활동 영역에서도 이번 사건을 빌미로 정치적 공격과 인신공격이 벌써부터 들어오고 있었던 탓이다.
“제가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하는 민관협력기구인 ‘시 의제’의 의원이에요. 남편이 구속된 이후 새누리당에서 성명서를 냈어요. 요지는 시장이 RO 조직원을 의원에 위촉시켰다는 거고, 나를 뽑은 민주당 소속 안양시장도 종북인 거예요. 의제에서도 강력하게 항의 성명서를 내고 합의하지 않으면 고발하겠다고 했어요. 새누리당이 의제에 사과문을 올렸죠. 그러나 저에게는 사과하지 않았어요. 제가 사과하라고 재차 요구했지만 하지 않아서 고발해버렸어요.”
1심 판결 이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직장의 공식적인 자리에서 물러난 상태였다. 그리고 여당은 유죄판결 이후 다시 한번 그를 걸고넘어졌다.
“이번에는 새누리당 시의원들이 성명서를 냈어요. 저희 단체의 프로젝트 사업을 현 시장이 선정해줬는데 막대한 자금을 지원했다는 둥, 시장이 저희 단체 내 시민학교의 후원회장이라는 둥. 시장이 후원회장을 했던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어디서 그런 거짓말을 만들어내는지. 그 전 새누리당 시장 시절에도 저희 단체가 프로젝트 사업을 했거든요. 그 사실은 쏙 빼고 썼더라고요. 제가 단체에서 물러난 상태라 더 이상 빌미를 가지고 공격하면 안 되는데 공격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요.”
그가 겪은 일은 공권력이 시작한 마녀사냥이 개인의 일상으로 침투하는 전형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정치적 공격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타깃으로 하는 개개인과 사회의 끈을 하나둘 끊어버리면서 고립이 심화돼가는 과정이다.
“최근에 저를 공격했던 의제 사람들과 워크숍을 갔어요. 그 전에 마주칠 때마다 이분들이 저에게 ‘너 괜찮니?’라는 질문도 하지 못했었죠. 제가 오면 눈치를 보고 어색해하는 상황이었어요. 차라리 ‘그게 사실이야?’ ‘사건의 자세한 내막이 뭐야?’ 하고 물어봐줬으면 좋겠죠. 어디 가는 것조차, 내가 가면 그 판을 깨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제가 살아가는 방식, 사람을 만나는 방식에서 움츠러들게 되죠.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아요.”
이제 1심이 끝났을 뿐이다. ‘내란음모’라는 중죄가 어디 몇 개월 안에 판결 날 일이었던가. 그보다 지난한 건 앞으로도 이들 가족이 겪게 될 그 죄명의 이름값이다. 대부분의 공안사건이 마무리되는 데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린다. 1월에 만났을 때 박사옥씨는 “제발 우리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죄판결 이후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사람들이 사건의 내막을 들어줄 여유를 갖고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조금은 의외로, 그는 재판 결과가 나기 전보다 심리적으로 안정돼 있었다. 같은 진영 내에서 등을 돌렸던 사람들이 그들의 입장을 비판은 하되, 이야기를 들어주려는 자세를 조금씩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낙인찍고 괴물로 만들기 전에이른바 ‘내란음모’의 광풍 속에서 사회 전체가 잃었던 것도 바로 그것 아니었을까?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낙인찍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한 번은 들어볼 여유, 관용. 내란음모의 유무죄를 따져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재판이 할 일을 하기도 전에 국정원이, 언론이, 혹은 우리가 누군가의 삶 모든 것을 너무도 쉽게 무너뜨리려 하지는 않았나. 그에게 선을 긋고, 사상을 이유로 인격성을 단죄하며, 대화조차 불가능한 괴물로 만들어버린 것. 그것이 이들 가족에겐 가장 큰 상처였다. 이른바 ‘내란음모’ 사건의 직접적 당사자들이 상처를 회복하는 동안 구경꾼이었던 사회 전체가 회복해야 할 가치도 만만치 않다. 이미 종북 프레임에 의한 자기검열은 깊숙이 뿌리내렸다. 다음 마녀사냥의 희생자가 나올 토양이 얼마든지 마련돼 있는 것이다. 이 사건을 겪은 가족들의 이야기를 사회 전체가 들여다봐야 할 또 다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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