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 다 가는 소리가 들리는 저녁, 는 출근하는 내일에 대한 근심을 덜어주는 국민 개그 프로다. 내일의 불안은 영희씨가 “앙~ 돼요” 하는 순간에 잠시 잊혀진다. 그로부터 24시간 전, tvN에서 하는 <SNL 코리아>(이하 <SNL>)는 토요일 밤의 열기 속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야릇한 성적 농담이 흐르고, 발음을 교묘하게 바꾼 욕도 나오고, 가끔은 금기에 도전도 하는 <SNL>은 ‘불토’(불타는 토요일)의 클럽 같은 곳이다.
클럽에 오는 오늘의 초대 손님이 누구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불토의 클럽에 언제나 버티고 있는 ‘죽돌이·죽순이’, <SNL> 크루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힘으로 일단 기본은 하고 들어가는 <SNL>은 잠재력 있는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었다. 이제는 크루를 떠난 ‘국민 욕동생’ 김슬기가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패러디로 남자가 별다른 분장 없이 여자를 연기해도 저렇게 설득력 있다니, 놀라게 했던 정성호가 있다. 이렇게 꾸준한 웃음을 주는 크루들이 더 있지만, 요즘 가장 ‘핫한’ 크루를 꼽으라면 김민교를 말할 수밖에 없다.
혼신의 동공 연기, 눈알 파탈“당신의 캐릭터를 선택하십시오.” ‘SNL 게임즈’의 성우가 말한다. 백정, 노비, 망나니. 이런 캐릭터 중에서 하나를 고르면 게임이 시작된다. 때로 고를 수 있는 캐릭터는 장정과 여인네, 성별을 넘나든다. 어떤 캐릭터를 골라도 배우 김민교는 소화한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다. 게임 캐릭터 특유의 어색한 동작을 그는 “마치 실사처럼” 연기한다. 말투와 동작이 과장돼 있지만, 묘하게 재미가 있다. 팬들의 평가대로 “디테일이 쩌는” 연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게임하는 인물이 게임의 캐릭터가 되는 독특한 구성의 ‘SLN 게임즈’는 그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시즌을 이어 인기를 얻고 있다.
문제니, 정으니, 문희준, 남자1호…. 그가 <SNL>에서 연기해온 인물들의 캐릭터다. 안경을 쓰면 ‘여의도 텔레토비’의 문제니가 되고, 인민복을 입으면 ‘글로벌 텔레토비’의 정으니가 되고, 칼머리를 하면 H.O.T 시절의 문희준으로 변한다. 생각보다 그의 연기는 잠잠하다. ‘격하게’ 몸을 굴리지 않고, 심하게 얼굴 근육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잠잠한 연기가 격한 웃음을 부른다. 무언가 지금껏 보았던 개그 스타일과 다른 것 같은데, 그것이 무언지 설명하기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의 연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친한 사람들은 내가 연기한 캐릭터를 보고 ‘이건 너잖아’ 한다. 나는 ‘캐릭터를 만들어야지’ 하고 출발하지 않는다. 나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난데, 조금 더 당당한 척을 하면 정으니 캐릭터가 나온다. 북한의 김정은을 패러디한 정으니는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보이려고 하지만 자신감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렇게 내가 가진 면을 캐릭터와 겹쳐놓고 극대화한다. 그러면 ‘센데 안 세 보이는’ 인물이 나온다. ‘청순 게이’도 그렇다. 상대가 되게 좋지만 상대가 싫어하면 어쩌나 걱정도 되는 캐릭터의 복잡한 감정을 가지려 했다.”
이런 아이러니에 기반하니 그의 인물에는 웃음과 더불어 연민이 있다. 묘한 연민이 있으니 보고 나도 느끼하지 않다. 디테일에 강한 그의 연기는 이렇다. ‘청순 게이’의 별명을 만든 패러디 장면을 보자. 은지원이 여자친구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드라마 을 동성애 버전으로 패러디한 장면에서, 그는 은지원과 키스하기 직전의 떨림을 잠시 내려갔다 올라가는 입꼬리와 순간의 환희가 스치는 눈빛으로 표현한다. 이런 복잡미묘한 표정을 보면서 우리는 웃는다. 새 캐릭터를 연기할 때마다 저 사람이 그 사람이었나 싶게 변신하는데다 알게 모르게 내면 연기까지 더한다. 그래서 그가 하는 캐릭터는 “느끼한데 역겹지 않고 끌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물론 포인트는 있다. 눈과 눈썹이다. 그의 대표 별명인 ‘눈알 파탈’은 그가 해온 팜파탈 캐릭터와 눈알 연기를 더해서 나왔다. 정으니 이후로 그는 동공을 키우고 흰자를 활용해 캐릭터의 성격을 살렸다. 지금 인터넷에는 “혼신의 동공 연기” “이경규 이후 최고”라는 찬사가 넘쳐난다.
오래 쌓은 공력의 희극 연기이렇게 그는 지금 성인 희극배우다. 그는 “개그가 싫어서가 아니고, 개그맨 비하는 더더욱 아니지만, 사람들이 ‘개그맨이시죠?’ 하면 섭섭하고 서운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극과 영화를 하면서 보낸 나의 시간이 있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올해로 마흔 줄에 접어든 그는 연기 경력 17~18년차의 배우다. 연극으로 시작한 그의 이력은 만만찮은 필모그래피로 채워져 있다. 여기에 더해 그는 극작을 하고 연출도 한다. 이렇게 오래 쌓은 공력이 지금 그의 조금 다른 희극 연기의 바탕이 되었다. 개그맨이 아니라 배우인 김민교는 그러나 서두르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 때문에 웃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 시간은 길고 나는 지치지 않을 테니까, 다른 모습을 보여줄 기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토요일의 남자는 오늘도 웃으며 기다린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대한민국에서 가장 보통의 이름을 가진 김영희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이다. (KBS) ‘끝사랑’에서 엘사에 버금가는 눈화장을 하고 “앙~돼요”를 외치는가 하면, 리얼리티 프로그램 , 최근 종영한 가족 토크 프로그램 에서는 평범한 생활인으로서, 딸로서 자신의 일상을 풀어냈다. 라디오 게스트로도 자주 출연한다. 작은 부스 안에서 헤드폰을 끼고 언니로, 누나로, 친구로 누군가의 사연에 귀기울인다. 그렇게 세상의 ‘영희들’을 대변하는 그가 역시 반짝일 때는 무대에 설 때다.
옴마~ 어디서 만난 듯한 익숙함?올해 5년차 개그우먼이 된 그는 세상 평범한 아줌마만 연기한다. ‘끝사랑’에서 김영희는 혼자가 돼 새로운 로맨스를 시작하는 중년 여성으로 능청스레 변신한다. 상대역 정태호에게 특유의 몸짓을 하며 앙탈스레 “옴마~”를 연발하는 그의 연기는 다소 과장돼 있지만 우리는 ‘끝사랑’의 김 여사를 보며 우리 곁의 평범한 아줌마들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TV를 보며 쿡쿡하고 웃음을 터트리는 엄마, 오늘 아침 풀메이크업에 등산복을 갖춰 입고 외출에 나서던 앞집 아줌마 같은. 개그우먼 5년차, 아줌마 전문 희극인이 된 김영희는 우리 주변의 가장 친숙한 존재를 면밀하게 관찰해 극적으로 표현한다.
2009년 KBS 개그맨 공채시험을 통과하기 전부터 김영희는 아줌마 외길 인생을 걸었다. 2007년 대학로의 한 극단에 입단하기 위해 치른 오디션에서 야쿠르트 판매 아줌마를 연기했다. 만으로 24살이었다. 선배 배우들이 입을 모아 탄복했다. 그래서 김영희의 말을 빌리면 “그때부터 아줌마가 되었다”.
아줌마 디테일은 해를 거듭할수록 더해졌다. ‘봉숭아학당’에서 외로운 중년 여성들의 모임을 이끄는 비너스회장 역을 맡은 김영희는 그 나이대 여성들이 으레 그러듯 자신의 나이를 4학년5반(45살)이라고 소개했다. “~하는 순간, 제명이 됐어요”라는 유행어 또한 한국 중년 여성의 세계를 세심하게 관찰한 결과다. 가족을 위해 오랫동안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버려온 아줌마들이 모임을 만들며 일종의 사회생활을 다시 시작하는데, 동네 혹은 학부모 모임 등 워낙 작은 집단이다. 그러다보니 때때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문제들이 그 안에서 압축적으로 표출되곤 한다. 집단이기주의, 계파싸움 등 갈등이 미묘하게 돌출하는데 “제명이 됐어요”는 그 모든 상황을 요약하는 말이다. ‘두분토론’에서는 “남자가 하늘이다”라고 외치는 남하당 대표 박영진에게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라며 맞서는 토론 주자로 나섰다.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봉건 윤리를 들이대는 박영진과 대거리를 하는 모습은, 합리적이라기보다는 억지에 가까웠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늘 호응을 얻었다.
외형적으로도 이 시대 한국 아줌마를 꼼꼼하게 관찰해 표현했다. 여당당 대표로 나섰을 때는 진한 보라색의, 다소 보수적인 정장을 입고 무대에 섰다. 끝까지 여민 블라우스는 합리적 주장보다 억지를 부리는 캐릭터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끝사랑’에서도 평범한 중년 여성들의 패션 경향을 보여준다. 고고하고 보수적인 캐릭터로 등장하는 박소라에 비해 적극적인 성격의 여성으로 등장하는 김영희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머리에는 화려한 컬을 넣었다. 등산복이나 블라우스 위에 늘 걸쳐 입는 모피 조끼, 출렁대는 귀걸이와 현란한 무늬의 스타킹은 그가 대사를 하기 전부터 인물의 성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코미디는 평범한 시민들의 오늘을 가장 위트 있게 비틀어 보이는 장르다. 김영희는 3월28일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요즘 시청자가 좋아하는 개그 코드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걸 알면, 저희가…” 하고 웃는다. 지난 5년간 일련의 변화를 돌이켜보자면 요즘 유독 시청자의 주된 관심사가 연애로 옮아간 것 같긴 하다. “‘썸’이라고 하는 것 있잖아요. 에서도 연인 코너가 사랑을 많이 받고, tvN 에서도 눈에 띄고…. 요즘은 시청자의 반응도, 관심도 너무 빨라서 지금 연인 코너가 인기 있는 것조차 얼떨떨하고 신기해요.”
“나를 내려놓고 웃음을 만든다”20대 때부터 해온 아줌마 역할로 인해 이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줌마를 버릴 생각이 없다. “이게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더 할 수 있는 아줌마 캐릭터도 무궁무진해요. 하나를 파서 디테일하게. 다이어트에 번번이 실패하면서 얻은 군살까지, 이제 체형조차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극”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시민의 애잔한 현실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그는 어쩌면 가장 교과서적인 희극배우일지 모른다. 김영희는 대한민국에서 개그우먼으로 산다는 것은 “때때로 자기를 굉장히 많이 내려놓아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애달픔 가운데 그는, 지금 한국 코미디 무대에서 가장 돋보이는 ‘아줌마 프로페셔널’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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