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울산에 내린 폭설로 지붕이 무너져 야간작업 중이던 노동자들이 죽거나 다친 참사가 있었다. 사망자 중 한 명은 37살, 다른 한 명은 현대공고 3학년에 재학 중인 현장실습생이었다. 사람들은 유독 졸업을 이틀 앞둔 실습생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여서? 그런데 나이를 기준으로 애도의 무게를 달리해도 괜찮은 걸까. 야간노동을 금지한 현장실습 규정만 지켰어도 죽음을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그럼 37살 노동자의 죽음은 무엇으로 막을 수 있었지? 뭔가 석연찮다. 나이 어린 실습생에게 야간노동을 시켰다는 것이 아니라, 그 누구였든 노동자를 위험노동에 내몬 것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하지 않을까.
한밤 폭설 속에 실습생 내몬 업체그럼에도 현장실습생의 죽음에 대해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남아 있다. 현장실습이라면 교육과정의 일환일 텐데, 업체는 대체 무얼 가르치려고 야간의 폭설 속으로 실습생을 내몰았단 말인가. 실습은 말뿐이고 그저 헐값 노동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그는 최저임금이라도, 야간·연장 노동에 따른 초과수당이라도 받으며 일했을까.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노조에 가입해 성인 노동자들과 함께 위험한 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특성화고 학생들은 노동법상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자가 아닌 실습생이라는 불안한 지위로 산업체에 첫발을 내딛는다. 영화 의 실제 주인공인 고 황유미씨 역시 속초상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3년 10월, ‘죽음의 공장’ 삼성전자 반도체에 입사했다.
여기 또 하나의 죽음이 있다. 지난 1월20일 (주)CJ 충북 진천공장에서 현장실습 중이던 김동준씨가 기숙사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자살하기 며칠 전, 회식 도중에 입사 동기로부터 얼차려에 이어 뺨까지 맞는 수모를 당했다고 한다. 3년차 선배가 신입사원 중 제일 나이 많은 이를 불러내 ‘너희에게 기대하는 게 크니 제대로 하라’며 발길질을 했고, 그 신입사원은 다시 어린 동기들을 불러 분풀이를 가했다. 회식이 있던 날은 설 특수 기간이라 휴일도 없이 하루 12시간씩 이어진 초과노동으로 모두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누적돼 있었던 때다. 동준씨는 강압적 노동환경과 이를 유지하는 얼차려 문화, 그리고 폭행 사실을 신고한 뒤 일어날 후폭풍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모양이다. 그럼에도 회사는 유족에게 위로금 몇 푼 던져주고, 모든 임직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받아챙겼다. 그의 죽음을 사회 초년생의 부적응 문제로 몰고 싶어서일까. 회사는 현장실습생을 위한 사내 심리상담 프로그램 강화를 대책이랍시고 꺼내놨다.
동준씨가 다니던 동아마이스터고는 2012년 교육부의 주도 아래 CJ와 업무협약을 체결한 바 있다. 해당 분야의 기술 명장을 육성하겠다는 업무협약에 따라 CJ로 채용돼 실습을 나갔던 동준씨에게 맡겨진 일은 육가공품 포장이었다. 그의 전공은 전자·기계였다. 다른 학교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취업률 경쟁에 내몰린 특성화고는 학교성과급을 챙기려 학생을 ‘묻지마 실습’에 내몬다. 산업체는 일찌감치 헐값 노동력을 갖다 쓰고, 세액공제나 병역특례사업장 지정 혜택까지 받는다.
이 미친 세상 어디에 있더라도…협약서는 있으나 협약 내용이 지켜지는지 살피는 이도 없다. 그 틈바구니에서 학생들은 실습생이라는 불안한 신분으로 착취적 노동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2011년 말에도 광주 기아자동차에서 강도 높은 초과노동에 시달리던 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바 있다. 실습을 그만두고 싶어도 학교에서 막는 경우도 많다. 정부-산업체-학교가 손잡고 현장실습이 아닌, 학생 장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행복해야 해.” 브로콜리 너마저의 에 담긴 노랫말이 오늘따라 왠지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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