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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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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사진이 뭐길래

등록 2014-02-15 13:17 수정 2020-05-03 04:27

이번엔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네? 얼마요? 8만원? 아니, 어디서 그렇게 받지? 내가 너무 싸게 받는 건가? 뭐가 다르죠?” 증명사진 찍으러 가게에 찾아온 손님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다. 장사 하루이틀 하냐고 물으신다면 할 말은 없지만 정말로 몰랐다. 다른 곳에서 그 정도 내고 찍었다고 그는 말했다. 알았다고 말한 뒤 나는 그에게 증명사진 9장을 줬다. 당연히 어딘지 알 수 없는 그 사진관보단 싼 가격을 받았다. 우리 가게는 “증명사진 찍습니다”라고 써붙였지 “취업사진 찍습니다”라고 써붙인 사진관은 아니라, 이력서에 붙이는 사진이나 주민등록증에 붙이는 사진이나 똑같은 가격을 받는다.

뭘 해주길래 수십만원씩이나

오는 손님들이나 친구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우리 가게가 생각보다 싼 가격으로 ‘취업사진’을 찍는다는 걸 알았다. 대체 취업사진이 뭐길래. 내가 남한에서의 취업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장사를 했는 모양이다. 하기야 남들처럼 정장 싹 빼입고 찍은 사진을 이력서에 딱 붙여야만 하는 업종에 종사해본 적도, 아니 지원조차 해본 적도 없으니 내 불찰일 수 있겠다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8만원보다 더 받는 이른바 ‘취업사진 전문 사진관’ 이야기를 듣고 나선 좀더 알아보기로 했다. 대체 뭘 더 해주길래 수십만원을 내고 사진을 찍지? 아니, 나도 납득이 되면 그 정도 가격을 받아서 찍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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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알아보니 머리 해주고 메이크업 해주고 옷 빌려주고 1:1 리터칭이라고 같이 딱 옆에 앉혀서 얼굴 대칭 맞춰주고 배경도 바꿔주고 여기저기 손도 봐주고 원하면 옷도 바꿔주는 정도다. (사실 어느 정도는 우리도 한다!) 그리고 이 정도의 멘트는 당연히 덧붙여줘야겠지. “이렇게 해야 OO회사에 합격합니다. 어쩌고저쩌고.” 옆에 손님 앉혀놓고 안심을 시켜야 이른바 라포(Rapport)도 생기고. 그럼, 얼마 들여서 찍는 사진인데. 저희 스튜디오에서 찍은 분들 취업 성공률이 몇% 이상입니다! 여기서 하라는 대로 하면 어지간히 잘 붙더군요! 물론 우리 가게에서 찍어서 잘된 분들 많다는 말은 나도 하지만 수십만원 받고 찍는 사진관들보다 필사적이지 않긴 하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떼돈을 벌까? 그렇진 않을 것 같은 게, 머리 해주고 메이크업 해주는 사람 월급 줘야지, 취업사진 잘 찍는 곳이라고 간판에 크게 써붙이려면 사람들 많이 다니는 동네에 들어가야지, 보증금이며 월세는 아마도 내가 내는 곳의 몇 배는 되겠지, 기타 등등 다 합쳐서 수지타산을 계산하면 ‘취업사진 전문으로 찍는 곳’ 역시 남는 게 얼마 되지 않으리라. 그런데 그 돈 때려박았는데도 취업이 안 되면? 아니, 그보다 나중에 동네에서 1만~2만원 주고 찍은 사진을 붙인 이력서가 딱 서류전형에 붙어버리면 어떨까?

이렇게 생각해보니 몇십만원씩 받으나 원래대로 받으나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아서 가격을 갑자기 올리려는 생각은 접고, 좀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보기로 한다. 사진관은 ‘인상사진’을 찍는 곳인데 좋은 인상사진이란 대체 뭘까? 어디 회사에 취직 잘된 사진이 좋은 인상사진이라면 일부는 맞는 말일지 몰라도 전부라면 또 아니다. 만일 전부였다면 나도 어디 병원 턱뼈탑처럼 사진탑을 쌓아올려서 인터넷에다 떡하니 인증했을지 모를 일이지. “아무개님 여기서 찍어서 대번에 합격!”

그냥 ‘증명사진’을 찍고 싶다

취업사진이 오히려 사람이 사진에 익숙해지는 데 큰 장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드는 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정도 쓸 돈으로 심지어 가족사진 한 판 찍을 수 있고 찍힐 수 있는 사진이 생각보다 많고, 사진관 입장에서도 이력서 사진보다 다른 사진을 액자로 걸어놓는 게 낫다.

가장 좋은 건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이력서에 사진 붙이는 것을 권장하지 않는 풍토다.

(물론 제가 이렇게 말한다고 증명사진 안 찍겠다는 말은 아닙니다.)

박정근 사진관 사장 겸 국가보안법 피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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