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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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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조용한 곳으로 귀농 말라

“그런 곳일수록 댐이 들어오고 원전이 들어온다”… 경북 영양 산속으로 귀농했는데 댐이 들어서면서 수배자가 되어버린 송재웅씨
등록 2013-04-07 10:42 수정 2020-05-02 19:27

요즘 경북 영양이 귀농인들 사이에 관심 의 대상이 되고 있다. 영양군수가 귀농인 비 하 발언을 하는 등 물의를 일으키고 있기 때 문이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최근 어느 간담 회 자리에서 “귀농하는 사람 보면 도회지 경 쟁사회에서 낙오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지 고 들어와 미풍양속을 흐린다”고까지 얘기 했다. 이 간담회는 지역 중·고등학교 동문들 과 국회의원까지 참석했기 때문에 사적인 자 리도 아니었다. 그런 자리에서 귀농인에 대 해 ‘사회 낙오자’라고 발언한 것이다. 권영택 영양군수는 왜 이렇게 귀농인을 싫어할까?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경제부처 장관 등이 지난 3월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과 경제부처 장관 등이 지난 3월28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 김정효 기자

‘일사천리 댐 추진’ 앞에 나타난 장벽

그 이유는 영양댐에 있다. 지역 건설업자 출신인 영양군수는 3139억원짜리 대형 사업 인 영양댐 건설을 추진해왔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 산골짜기를 흐르는 하천인 장파천을 막아 높이 76m, 길이 480m의 댐을 만든다 는 사업이다. 타당성이 없는 전형적인 토건 사업이다. 그러나 재선 군수인데다 지역 건 설업체의 대주주이고 지역 사립학교 재단 이 사장이기도 한 그에게는 거리낄 것이 없었 다. 그는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를 끌어들여 예비 타당성 조사를 했고, 타당성 이 있다는 억지 결론을 이끌어냈다. 이제 영 양댐은 일사천리로 추진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앞에 장벽이 나타났다. 지역 주민 들이 반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수요일 권영택 군수가 그렇게 싫어하 는 영양의 귀농인 한 사람을 만나 얘기를 들 었다. 영양댐 반대운동을 펼치는 주민대책 위원회에서 일하다가 체포영장까지 발부된 송재웅(44)씨였다. 눈빛이 맑은 그를 만난 적은 몇 번 있지만, 개인적인 얘기를 물어볼 기회는 없었다. 그는 왜 영양댐 반대운동을 하고 있을까?

귀농한 지 12년이 됐다는 그는 도시 생활 이 답답해서 30대 초반에 귀농을 결심했다 고 했다. 돈에 얽매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살 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귀농할 곳을 알아보 다가 땅값이 가장 싼 영양으로 오게 됐다고 웃으며 말한다. 오지인데다 산이 많은 게 오 히려 좋았다고 한다.

처음엔 텐트를 치고 살다가 땅을 구한 뒤 집을 짓고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집에는 태 양광발전기를 설치하고 최소한의 전기만 사 용하고 있다. 1200평 정도 되는 밭에 감자· 옥수수·고구마·수수·채소류를 기르며 자 급자족하는 생활을 해왔다. 농작물을 먹으 려는 멧돼지·고라니·노루와 씨름을 하면서 도 공존하는 삶을 살아왔다.

이렇게 살던 그는 2010년 무렵 영양군청 홈페이지에서 댐을 만든다는 얘기를 처음 접하게 된다. 댐이 만들어진다는 곳은 그가 사는 마을의 아랫동네였다. 그가 사는 마을 은 직접 수몰되는 지역은 아니었지만, 그때 부터 댐에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댐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환경단 체에 물어보기도 하고, 정부기관에 정보공 개 청구를 하기도 했다. 그는 영양댐 자체가 어이없는 사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영양 의 산골짜기에 댐을 건설해서 180km나 떨 어진 경북 경산시에 물을 공급한다는 것 자 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였다. 인구가 줄어드 는 영양군에 물이 부족해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는 얘기였다.

군수 일 반대하면 식당도 힘들어

이런 사실을 알리려고 플래카드를 붙였는 데, 누군가가 떼버리는 일도 발생했다. 그러 던 차에 수몰 지역 인근 마을 주민들이 대책 위원회를 꾸리고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그 동안 모은 자료를 넘기고 빠질까 하는 생각 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대책위원회에 일할 사람이 부족한 것 같아서 결국 같이 활동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에게 ‘체포영장이 발부됐는데 누굴 때리기라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웃으며 물리적인 폭력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영양댐 건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냈는데도, 국토해양부와 한국수자원공사가 용역업체를 동원해 측량을 시도하는 바람에 주민들이 그걸 막은 것뿐이라고 했다. 다른 방법이 없어서 중장비 앞에 드러누운 것이 전부라고 했다. 그런데 경찰이 15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주민 2명을 체포해가고 자신에게도 체포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의 상황을 ‘코미디 같다’라고 말했다. 결국 연행된 주민 2명도 풀려났다고 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봤더니, 그는 지금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말한다. 지금 반대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댐이 생기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힘들어도 반대운동을 하는 게 낫다는 얘기다.

그는 농촌이 ‘약육강식’의 사회가 되고 있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군수처럼 권력을 가진 자들이 주민 위에 군림하고 있는 탓이다. 군수가 하는 일에 반대하면 식당이나 가게조차 열기 힘들다는 게 지역 분위기라고 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고통받거나 쫓겨나는데도 눈감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영양댐 문제가 단지 댐 하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말한다. 영양댐은 반생태적 개발, 지역의 비민주적 권력, 부패한 토호세력의 문제가 집약된 문제라는 것이다. 힘이 약한 사람이 희생당하고 쫓겨나고, 이익은 기득권 세력이 가져가는 잘못된 구조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영양댐 건설은 반드시 백지화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의 말을 들으며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투사도 아니고 낙오자도 아니다. 평화롭고 생태적인 삶을 꿈꾸고 실천하는 사람일 뿐이다. 영양댐 반대운동의 현장에서 만난 다른 주민들의 얼굴도 떠올랐다. 평생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아온 할머니들, 귀농해서 영양 땅을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사는 귀농인들. ‘이들과 영양군수 중에 누가 더 영양을 사랑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얼마 전 지리산 자락에서 지리산댐 반대운동을 하는 분을 만났을 때, 그분이 “너무 조용하고 자연이 좋은 곳으로 귀농하지 마라. 그런 곳일수록 댐이 들어오고 원전이 들어온다”고 농담조로 얘기하는 것을 들었다. 실제로 신규 원전이 들어서려는 지역도 인구밀도가 낮은 지역이고, 요즘에는 댐이 추진되는 지역도 산골이다.

깊은 골짜기를 파헤치는 토건의 악순환

참 서글픈 일이다. 언제까지 이런 토건의 악순환이 계속돼야 할까? 이제는 파헤칠 곳이 없어 깊은 산골짜기까지 파헤치는 걸 두고 봐야 할까?

진실은 분명하다. 지역을 팔아먹고 지역 공동체를 깨는 존재는 귀농인도 아니고 주민도 아니고, 영양군수와 같은 토건세력이다. 이들로 인해 세금이 낭비되고, 환경이 파괴되며, 삶터를 잃은 지역 주민들이 쫓겨나고 있다. 지역 공동체가 분열되고 있다. 이제는 이 잘못된 짓을 못하게 해야 한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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