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씨가 유엔 사무총장이 될 때는 ‘왜 저러나’ 싶을 정도로 떠들썩하더니, 정작 반 사무총장이 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요즘에는 반 사무총장이 어떤 얘기를 하고 있을까? 반 사무총장은 지난 1월22일 <ap>과 한 인터뷰에서 본인이 가진 두 가지 올해 소망을 얘기했다. 그중 하나는 6만 명 이상이 사망한 시리아 내전이 끝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이 체결되는 것이라고 했다.
새로운 기후변화협약? 이미 기후변화협약은 있지 않나? 이렇게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 사무총장은 왜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할까?
이 기세대로라면 4℃ 이상 상승 불가피
기후변화가 심각한 문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게다가 생각보다 진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 반 사무총장은 인터뷰에서 “기후변화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만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 속도는 무척 빠르다. 전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12년에도 약 2.6% 늘어났다. 1990년 배출량에 비하면 50%나 증가한 상태다.
그 결과는 지구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0.8℃가 올랐는데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추세대로 가면 4℃ 이상 상승이 불가피하다. 산업혁명 이전에 비해 2℃만 올라도 파국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는 과학자가 많은데, 4℃ 이상 오를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인 것이다.
기후변화는 이미 해수면 상승, 가뭄과 홍수를 초래하고 있다. 그 영향으로 식량 생산이 타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여름 미국 중서부 곡창지대를 덮친 가뭄은 미국의 옥수수 생산을 13%나 감소시켰다. 이 사태는 세계적인 곡물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얼마 전 국내의 밀가루 가격도 8% 이상 올랐다. 당연히 밀가루를 사용하는 식료품 가격도 오를 것이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세계의 식량 사정은 더 악화될 것이다. 그럴 경우 곡물의 7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과학자들은 지금이라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최대 450ppm에서 제한할 수 있는 대책이 시급하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빙하가 녹는 속도는 빠른데,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는 너무 느리다.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무슨 대책이 있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물론 유엔 기후변화협약이라는 게 있다.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체결돼 1994년부터 발효된 협약이다. 이 협약에 따라 1년에 한 번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라는 회의가 열린다. 그리고 1997년 3차 당사국 총회가 열린 일본 교토에서 교토의정서가 채택됐다. 교토의정서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5년 동안(1차 공약기간) 선진국들이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5.2% 줄이도록 돼 있었다. 그래서 기후변화 얘기가 나오면 ‘교토의정서’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교토의정서는 매우 불충분한 것이었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중국(2009년 기준 24%)·인도(2009년 기준 5%) 같은 신흥국가가 빠졌을 뿐 아니라, 온실가스 배출 2위 국가인 미국(2009년 기준 18%)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버린 것이다. 그러니 교토의정서대로 감축된다고 한들 그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력한 합의가 필요했다. 2009년부터 2012년까지 당사국 총회에서 치열한 논의가 벌어졌다. 그러나 2012년 12월에 끝난 카타르 도하에서의 당사국 총회에서 합의된 결과는 초라했다. 교토의정서를 2020년까지 연장한다는 것에만 합의가 되었다. 이 회의 내내 미국 등 선진국과 중국 등 신흥국가가 극심하게 대립해 제대로 된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연장된 교토의정서에는 일본·러시아·캐나다·뉴질랜드조차 참여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결국 유럽연합(EU)과 오스트레일리아·스위스·우크라이나 정도가 감축 의무를 지는 협약으로 전락했다. 이들이 배출하는 온실가스 양을 합쳐봐야 전세계 배출량의 15%에 불과하다. 이제 교토의정서는 유명무실해졌다.
‘의무감축국’에서 빠져 좋다?
그래서 반기문 사무총장이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현재까지 논의된 일정은 2015년까지 협상해서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후변화협약을 타결하고, 2020년부터 협약을 발효시킨다는 것이다.
이런 일정은 ‘모든 것을 2020년 이후로 미룬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이 불성실하게 협상을 한다면, 새로운 기후변화협약이 언제쯤 타결될지도 불투명하다.
최근 몇 년은 기후변화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멘붕’의 과정이었다. 물론 우리가 남 탓을 할 처지도 아니다.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은 온실가스 배출 7위국이다. 경제 규모에 비해 배출량이 많다. 1990년 이후 온실가스 배출량이 가장 빨리 증가한 국가다. 비록 교토의정서에서는 개발도상국으로 인정받아 의무감축국에서 빠졌지만 좋아할 일도 아니었다. 대한민국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을 국가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해수면 상승의 피해를 비켜갈 수 없는 국가. 곡물자급률이 22.6%(2011년 기준)여서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위기에 취약한 국가가 대한민국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것과 반대되는 역주행을 계속하고 있다. 정부는 온실가스를 다량으로 배출하는 석탄화력발전소를 12개나 더 지으려 한다. 이런 내용이 곧 발표될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포함될 예정이다.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18%를 차지하는 것이 축산업인데, 정부는 여전히 대규모 공장식 축산업을 육성하려 한다. 한 해 5조원 이상의 돈을 들여 고속도로·국도를 건설하는 등 자동차 위주의 교통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다른 나라 탓을 할 수도 없다.
어릴 때 인기 있던 TV 만화 프로그램 중에 가 있었다. ‘독수리 5형제’가 지구를 위협하는 악당을 물리친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기후변화를 초래한 악당은 다름 아닌 탐욕과 이윤만 추구하는 사회·경제 시스템이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다.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지구를 구할 방법은 무엇일까?
지구를 구하려면 우리 자신이 독수리 5형제가 되는 수밖에 없다. 내 생활부터 소박하게 바꾸는 것은 기본이다. 자동차 이용을 줄이고 고기를 덜 먹는 것은 누구든 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리고 지역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 전기 소비를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것은 유럽의 건강한 시민들이 지역에서 꾸준히 해온 일이다. 기후변화의 진실을 알리고 교육하는 것도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일들을 이웃과 함께 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정책으로도 요구해야 한다. 그렇게 힘이 모아져야 국가 정책도 바꿀 수 있다.
인간의 탐욕에서 구할 독수리 5형제는 어디에
결국 정치가 중요하다.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정치가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직접 받을 청소년·청년들이 정치의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자식이 살아갈 미래를 걱정하는 건강한 부모들의 목소리도 필요하다. EU 국가들이 그나마 온실가스 감축에 비교적 적극적인 이유는 기후변화가 정치의 중요한 의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도 기후변화를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 시간은 우리를 마냥 기다려주지 않는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