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4">이마트 이럴 줄 알았지</font>
<font color="#877015">사람의 ‘노동력’보다 ‘구매력’을 먼저 보는 사회의 귀결, 선거에서도 ‘민생’이란 이름으로 소비자 능력 되찾기 강조</font>
이마트가 ‘노조설립 와해’와 ‘노동자 사찰’ 로 논란을 빚고 있다. 경북 구미점에서 민주 노총 수첩이 발견됐다는 이유로 대책회의를 한 것이 바깥으로 흘러나오면서 이마트의 ‘무 노조 경영’ 원칙이 새삼 도마 위에 오른 것이 다. 물론 지금까지 노조 활동에 대해 이마트 를 비롯한 유통 관련 기업들이 보여온 적대 적 반응을 감안하면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고 하겠다. 오히려 ‘이마트가 이런 줄 몰랐다’ 는 반응이 더 흥미를 끄는 상황이다.
이마트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노동이 어 떻게 배제되고 있는지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 례다. 자본과 노동의 대결에서 일방적으로 후자에게 불리한 조건이 강제됐던 한국 사 회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그렇게 놀라운 결 과도 아닐 것이다. 게다가 소비주의의 확산 으로 소비자 의식은 강화됐지만, 그것을 뒷 받침하는 노동자의 정체성이 희미해지는 것 도 이런 현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하겠 다. 모든 소비자는 노동자이기도 하다는 사 실이 망각되는 것이다.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 경제의 축이 이동하면서 한국에서 노동문제는 완전고용 의제를 논의조차 하지 못한 채 ‘부자 되세요’ 라는 구호에 압도당해버렸다. 상황을 이렇 게 만든 주역들이 ‘민주화 세력’으로 불린 정 치인들이었으니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노동력’보다 ‘구매력’을 중심으로 개인을 평가한다. 어떤 상품을 구 매하는가에 따라 배제의 대상이 되거나, 아 니면 존경의 대상이 된다.
신자유주의라는 새로운 이념은 금융상품 의 구매자로 대중을 호출하는 것이기도 했 다. ‘하우스푸어’라는 용어로 지칭되는 이들 은 쇼핑몰에서 장을 보듯이 금융상품을 샀 다가 낭패를 본 경우다. 겉으로는 이들이 아 파트를 구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이 들이 구매한 것은 금융상품이었다. 그러므 로 노동 현장보다 상품시장이 주체성을 결정 하는 중요한 공간으로 표상되기 시작한 것은 단순한 우연의 산물이 아닌 셈이다.
노동조합을 경계하기 위한 현장 감시와 통 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선거 국면에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 했다는 것이다. 민생이라는 모호한 용어법에 서 잘 드러나듯이, 중요한 의제는 상품을 구 매할 수 있는 ‘소비자의 능력’을 되찾아오겠다 는 쪽에 더 가까웠지 노동에 대한 관심을 촉 발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의미에서 이마트 문제를 ‘악덕 기업주’로 환원시켜 비난하는 것은 근본적 해결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한 국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켜야 할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이 사건을 통해 처음부 터 다시 이뤄져야 한다.
이택광 문화평론가·경희대 교수<font size="4">이마트 없는 삶</font>
<font color="#017918">진보는 불매운동 폄하하지만 다른 현실적 대안 없어, ‘대형마트 없는 삶’ 어려워도 다양한 불매 매뉴얼 제시해야</font>
민주통합당 장하나·노웅래 의원과 이마 트 전수찬 노조위원장의 기자회견 이후 신 세계 이마트의 노동 탄압과 노동자 사찰의 실상이 드러났다. 앞으로 더 밝혀지겠지만 이미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경악스러 웠다. 이마트는 ‘범삼성 계열’에 속한다. 삼성 의 위헌적인 ‘무노조 경영 철학’은 거대한 사 회의 종양으로 자라나 공동체의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 법 위에 군림하는 무소불위 의 경제권력인 재벌의 전횡은 이미 공동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다. 이마트 노 동 탄압이 널리 알려지자 여기저기서 이마트 불매운동 제안이 터져나왔다. 아직까지 본 격적으로 불이 붙진 않았다. 어떻게 될지 예 측하기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마 트 사태가 한국 사회가 처한 모순의 최전선 이라는 점이다.
진보 좌파는 ‘생산 주체로서의 노동자’ ‘변 혁 주체로서의 노동자’라는 주체화 양식에 몰두한 나머지 소비 주체로서의 노동자라 는 측면을 종종 부차적인 지점으로 여기거 나 심지어 소비 행위를 죄악시하기도 한다. 그래서 “불매운동은 기본적으로 시민운동 의 영역”이라 치부해버리곤 했다. 과연 그럴 까. 총파업은커녕 단위사업장에서의 부분 파업조차 불가능한 대다수 노동자가 생산 을 멈춰 재벌 지배구조를 바꿀 수 있을 리 없 다. 그나마 움켜쥔 정규직이란 지위를 행여 놓칠세라 전전긍긍하며 자신과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은 외면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오늘날 ‘생산 주체로서 의 노동자’들의 적나라한 얼굴이다. 솔직하 게 인정해야 한다. 생산을 장악해 체제를 변 화시키거나 전복시킨다는 식의 모델은 적어 도 현 단계의 한국 사회에서는 철저한 기만 에 불과하다. 오히려 시민·소비자일 때 그들 은 더 진보적이고 자유롭다.
불매운동은 결코 쉬운 투쟁 방식이 아니 다.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연대해 진행해 야 하는 만큼 조직노동자의 파업보다 훨씬 더 정교한 논리와 전술이 필요하다. 대도시 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대형마트에서 소 비하는 행위는 마치 세수하고 이를 닦는 것 처럼 자연스런 일상이 됐다. 가족이 모두 모 여 그나마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마트에 가 는 시간뿐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이들 은 마트를 놀이터 삼아 자라나고 있다. 이마 트 불매를 계기로 ‘대형마트 없는 삶’을 지속 적으로 실천하게 될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아마 그런 이는 극소수일 것이다. 불매운동 의 진입장벽과 난이도를 낮추는 게 최우선 이다. 운동의 단계를 세분화해서 참여자들 에게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 일 것이다.
우리가 한 사람의 소비자로서 상품이 어 떻게 만들어졌는지 고민하고 선택하는 일은 ‘좋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보다 수 만 배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불매운동 은 지금 우리가 가진 가장 강력한, 그리고 유 일한 무기다.
박권일 계간 <r> 편집위원</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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