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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을 상대하는 데 이지스함이 필요해?

농투성이로 살아온 강정 주민들이 왜 5년8개월 넘게 반대하는가, 찬성하는 사람도 진지하게 생각해보라
등록 2013-01-11 05:54 수정 2020-05-02 19:27

2012년의 마지막 날, 국회 앞에서는 제주도 강정마을에 추진 중인 해군기지에 반대하는 ‘생명평화 백배’가 진행됐다. 강정마을 주민들, 제주 지역 평화운동가의 모습이 보였다. 에서 ‘단골 시위꾼’으로 부르는 문정현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12월26일 제주 강정마을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주 해군기지 예산삭감 호소 강정주민 상경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사 중단 기원 백배를 올리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해 12월26일 제주 강정마을회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제주 해군기지 예산삭감 호소 강정주민 상경 긴급기자회견’을 마친 뒤 공사 중단 기원 백배를 올리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어처구니없는 시작

눈 쌓인 국회 정문 앞에서 경찰들에 둘러싸여 진행되는 ‘생명평화 백배’를 보며 지난 일들이 생각났다. 무려 5년8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한 마을에서 690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행됐고, 22명이 구속됐으며, 480명이 넘는 사람들에 대한 사법처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신부님들도 구속되었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이런 식으로 신부님을 마구 구속하지는 않았다.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상식과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 번쯤 ‘왜 이렇게 반대할까’라는 의문은 가져봐야 할 것이다. 강정마을 주민들은 직업적인 활동가도 아니고 ‘좌빨’도 아니며, 농사지으며 살아가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설사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분들이 왜 이렇게 반대하는지 한 번쯤은 진지하게 관심을 가져봐야 하지 않을까?

2007년 봄이었다. 나는 당시 제주대 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어느 날 갑자기 강정마을 주민들이 해군기지를 유치하겠다고 나섰다는 뉴스가 떴다. 그 전까지는 제주도 남동쪽의 위미항이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었다. 그래서 갑자기 강정마을이 유치 신청을 했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얼마 뒤 강정마을 주민들이 내 연구실로 찾아왔다. 마을 규약을 들고 와서 억울함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의 대다수가 모르는 상태에서 마을 회장이 은밀하게 마을 총회를 소집해 유치 신청을 했다는 것이다. 그 마을 총회는 마을 주민의 10분의 1도 모이지 않았고, 마을 규약을 위반해 안건 공지도 제대로 하지 않은 총회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을 총회가 끝나자마자 제주도와 해군은 강정마을을 해군기지 후보지로 발표하고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마치 군사작전을 하는 것처럼 전격적인 일이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자체 주민투표를 해볼 것을 권했다. 실제로 마을 주민들은 주민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마을 주민들의 대다수가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마을 회장이 일방적으로 한 유치 신청은 마을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국방부와 해군은 ‘주민 동의’를 전제로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도 해군기지를 강행했다. 마을 주민들의 뜻은 반대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온갖 변칙과 편법이 동원되었다. 엉터리 여론조사가 실시되었다. 해군기지 부지가 절대보전지역으로 묶여 해군기지 공사가 불가능한 지역이라는 것이 문제가 되자,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중심의 도의회에서 날치기 통과가 이루어졌다. 해군기지를 추진하던 도지사를 주민들이 소환하려고 하자, 조직적인 투표 참여 방해 행위가 나타났다.

처음부터 천주교 제주교구는 강정마을 주민들을 도왔다. 해군기지 사업 자체가 비민주적으로 추진된데다, 해군기지의 필요성에도 의문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천주교 제주교구는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다. 나도 위원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해 신부님들과 함께 국내 해군기지를 방문해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2008년 여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남 진해와 부산에 있던 해군기지를 방문했는데, 부산에서 새로운 얘기를 들었다. 당시 부산에 있던 함대사령부가 전남 목포로 이전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명을 하던 장성급 지휘관에게 ‘그러면 제주 해군기지를 짓지 말고 부산의 기지를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질문했다. 지휘관은 머뭇거리며 답변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이 질문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해군기지 다음은 공군기지?

일각에서는 남방 수송로 보호 등을 이유로 제주에 해군기지가 필요하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해적을 상대하는 건 해양경찰이 할 일이고, 해적을 상대하는 데 이지스함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제주에는 이미 해양경찰의 함정이 배치돼 있고, 강정마을 인근 화순항에는 새로운 해경 전용 부두를 짓고 있다.

그렇다면 강정 해군기지는 왜 필요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키워드는 ‘미국’과 ‘중국’뿐이다.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활용할 수 있는 기지로 제주 해군기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지스함이 포함된 전략기동전단을 굳이 제주도 남단에 배치하려 하고, 미국 항공모함의 입·출항이 가능하도록 해군기지가 설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런 얘기를 의혹이라고 하지만, 이 의혹만이 제주 해군기지의 필요성을 설명해주는 유일한 단서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주 해군기지는 우리나라 안보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체의 군사적 긴장을 높일 뿐이다.

게다가 해군기지로 그치지 않는다. 해군기지를 보호하기 위한 공군기지도 필요하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방부도 제주에 공군기지가 들어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런 일이 현실화된다면 제주는 ‘평화의 섬’이 아니라 군사기지의 섬이 되고 말 것이다.

제주도민 중에는 해군기지에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해군기지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강정마을이 부지로 적합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그 이유는 강정마을이 가진 생태·환경적 가치가 워낙 뛰어나기 때문이다.

강정마을에 가본 사람은 안다. 강정마을은 제주도에서 보기 드물게 1년 내내 맑은 물이 풍부하게 흐르는 강정천이 있는 곳이다. 은어가 올라오는 곳이다.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이다. 마을 주민들의 생명의 원천과도 같은 구럼비 바위가 있고, 멸종위기종인 붉은발말똥게와 연산호 군락이 서식하는 지역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런 곳에 해군기지를 설치하려는 것인지 해군기지 찬성론자들도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국회가 단서 붙인 검증 기간에도 공사 강행

지난 1월1일 새벽, 강정마을 주민들의 절박한 호소에도 강정 해군기지 예산 2009억원이 통과됐다. 다만 국회는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 70일간의 검증을 거쳐 국회에 보고부터 하라고 했다. ‘선 검증, 후 예산 집행’의 조건을 붙인 것이다.

그렇다면 70일간 공사를 중단하고 검증을 진행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해군은 일단 공사를 하고 나중에 예산을 집행한다는 ‘선 공사, 후 예산 집행’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 국회도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나는 상식을 가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강정 해군기지는 보수·진보의 문제가 아니다. 안보의 문제도 아니다. 강정 해군기지는 민주주의·생명·평화와 같은 가치뿐만 아니라, 심지어 안보에도 반하는 사업일 뿐이다. 강정 해군기지 공사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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