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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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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의 각별한 사랑

등록 2012-12-21 14:18 수정 2020-05-02 19:27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김영환 연구위원에게 큰 상을 줬다. 해마다 세계인권선언 기념일(12월10일)을 맞아 주는 ‘대한민국 인권상’이다. 김씨가 “북한 인권 문제 공론화 및 북한이탈주민의 인권 옹호를 위해 활동했다”는게, 올해 가장 격이 높은 ‘국민훈장’(석류장)을 준 이유다. 2009년 북한민주화네트워크, 2010년 북한인권시민연합, 2011년 열린북한방송에 이어, 현병철씨가 인권위 위원장이 된 2009년 이래 4년 연속 이른바 ‘북한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개인이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은 셈이다. MB 정부 인권위의 ‘북한 인권’ 사랑은 이렇듯 각별하다. 이런 사정 탓에 인권위를 ‘북한 인권위’라 빈정대는 이들도 있지만, 인권위의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인권은 땅 위의 모든 이가 누려야 할 보편적 권리이고, 북한에도 인권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국가기관인 인권위가 김씨에게 훈장까지 준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김씨는 단순한 북한 인권운동가가 아니다. 김씨는 북한을 발전시키는 “현실적인 가장 빠른 길은 체제 붕괴”라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김씨의 이런 주장은,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는 남북기본합의서 및 “남북 공동 번영과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본 원칙’으로 제시한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뿐만 아니라, 인권위가 2006년 12월11일 전원위원회 의결로 확정·발표한 “평화적인 방법을 통해 북한 인권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는 ‘북한 인권 접근 원칙’과 충돌한다. 요컨대 인권위의 이번 결정은, 남북 당국의 합의 및 국내법, 인권위의 공식 방침을 두루 거스른 자기부정 행위와 다름없다.
인권위가 ‘북한 인권’을 편애하는 사이, 한국의 인권 상황은 끝없이 추락했다. 용산 남일당, 대한문 옆 농성촌, 평택 쌍용차와 울산 현대차 노동자 철탑 농성장…, 인권침해가 있는 현장 그 어디에서도 인권위를 찾기 어렵다. 자랑스런 인권지킴이였던 인권위는 나라 안팎에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사법 정의도 지리멸렬이다. 각자가 독립적 헌법기관인 일선 판사들의 재판에 간섭한 자가 여전히 대법관이다. 이 올해에도 한 해를 마무리하며 5회째 ‘올해의 판결’ 특집 기획을 마련했는데, 한 심사위원은 “나쁜 판결이 너무 많다”고 한탄했다. 검찰은 자폭 중이다. 10억원대 뇌물 부장검사, 피의자와 조사실에서 성관계한 막내검사, 개혁을 외치며 뒤로는 조직에 아부한 평검사, 중수부장과 ‘개싸움’을 벌인 검찰총장…. 인권과 사법 정의의 최후 보루여야 할 국가기관들이 이렇게 딴짓을 하는 사이, ‘법치’는 약육강식의 정글에 내던져진 시민의 숨통을 겨눈 흉기로 변해갔다.
그래도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국가의 빈자리를, 시민들이 힘겹게 메운다. 사법부와 인권위가 나 몰라라 하는 철탑 농성장엔 시인·소설가·시민들이 사람의 온기를 담은 ‘소리연대’로 칼바람과 고립의 외로움을 눅인다. 12월14일엔 자유·연대·평등을 모토로 내건 ‘국내 최초의 민간인권센터’의 터다지기 행사가 치러졌다. 센터 건립에 들어갈 십수억원의 돈은, 2010년 10월 모금 시작 이래 주춧돌을 자임한 시민 수천 명의 십시일반으로 마련했다. 2013년 3월이면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인권감수성의 인큐베이터’이자 든든한 인권지킴이가 될 민간인권센터가 문을 연다. 이렇게 연대의 힘으로 삶은 계속된다. 그러니 세상이 아무리 어둡더라도 절망은 우리의 몫이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꼭 물어야 한다. 그렇다면, 국가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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