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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외된 MB, ‘여관추’

부글부글
등록 2012-10-23 21:35 수정 2020-05-03 04:27
청와대 사진기자단

청와대 사진기자단

빨간 색연필을 팔에 그은 뒤 손으로 문질러줘요. 그 위에 검정 펜으로 선을 그어요. 그리고 딱풀로 피부가 번들거리도록 덧칠해요. 요즘 10대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가짜 상처 만들기’ 놀이래요. 언뜻 보면 정말 찢어진 상처 같대요. ‘가짜 멍 만들기’도 있어요. 연필을 종이에 문지른 뒤 피부에 비비고, 그 위에 보라색 펜으로 덧칠하면 된대요. 제가 학교 다닐 적만 해도 고작 팔에 전자 손목시계를 그리는 게 전부였는데…. 요즘 청소년들, 디테일이 살아 있어요. 인터넷에는 청소년들이 경쟁적으로 ‘가짜 상처 만들기’ 방법을 자세하게 올린 게시물이 넘쳐나요. 청소년들의 이런 특수효과를 향한 열정이 훗날 같은 영화를 만드는 원동력이 될지 몰라요. 아니면 말고.

그런데 씁쓸한 건, 펜을 들고 팔에 상처를 그리는 청소년 대부분이 관심받고 싶어서 이러는 거래요. 선생님이나 부모님, 친구들에게 상처를 보여주고 그들이 놀라거나 걱정하는 반응을 즐기는 거예요. 평소 소외된 청소년이 많은 탓이에요. 주위를 돌아보며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 건 참 중요해요. 그러고 보니, 요즘 눈에 띄게 사람들의 관심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 보여요. 말 줄이기 좋아하는 10대 용어로 불러봐요. ‘여관추’(여기 관심받고 싶어 하는 사람 하나 추가요)!

세상의 관심을 갈구하는 MB가 10월18일 갑자기 서해 연평도를 찾았어요. 기자들이 귀를 쫑긋할 발언도 쏟아냈어요. “통일이 될 때까지 우리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목숨을 걸고 지켜야 한다!”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고 주장한 정문헌 의원(새누리당)이 길을 잃고 갈팡질팡하는 시점에 나온 말이에요. 어쩌면 그는 NLL 논란에 ‘연관 검색어’로 자신의 이름이 등장하는 걸 노렸는지 몰라요. 내곡동 사저 특검 수사에 쏠리는 관심을 NLL로 돌리려는 세심한 배려도 담겨 있겠죠. 어쨌거나, 요즘 우리가 너무 그를 잊고 살고 있긴 해요. 한때는 내가 더 싫어한다며 목에 핏대를 세우며 술안주로 씹어대던 그를 향한 관심이 이렇게 식어버릴 줄은 몰랐어요. 관심도 움직이는 거예요. 그래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치른 선진국답게 우리는 소외된 대통령도 보듬기로 해요. 우선, 청와대 대통령 책상에 빨간 색연필과 딱풀부터 치우도록 해요.

MB가 북한군에게 뚫린 동부전선 대신 연평도를 찾은 이유는 사실 따로 있었어요. 동부전선이 24시간 귀순자 응대가 가능한 전화 서비스를 강화하기로 했기 때문이에요. 역시 국가 안보도 디테일이 중요해요. 군사분계선을 넘어 귀순하는 북한군과 북한 주민을 안전하게 유도하려고 전방 철책 지역에 전화기와 인터폰을 추가 설치하기로 했어요. 이제는 부담 없이 벨을 누르거나 수화기를 들고 휴전선을 건너면 돼요. 서로 부담 없고 어색하지 않아 더 좋아요. 그런데 군기 바짝 든 우리 군인들이 수화기 너머 귀순자에게 “통신 보안!”이라고 우렁차게 외치면, 놀랄지도 모르니 아예 ARS(자동응답시스템)도 갖추도록 해요. “북한군은 1번, 북한 주민은 2번, 상담원 연결은 0번을 눌러주세요. 다시 들으시려면 별표 또는 우물 정….”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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