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여자는 항상 ‘오늘은 무슨 일이 있으려나’ 조마조마하며 살았다. 일을 오래 하지 않은 남자는 뇌병변 장애의 첫째딸 사고 보상금과 아들 장학금까지 경마와 술에 탕진했다. 말이 별로 없던 그의 절망은 술의 힘을 빌려 폭력으로 드러났다. 맞다가 죽을 것 같은 날 112에 신고도 했다. 그러나 돌아온 남자는 더욱 난폭해졌다. 그날도 낮부터 술을 마신 남자의 주정이 문제였다. 칼을 찾던 남자는 가족들에 의해 묶였고, 결국 비구폐색으로 질식사했다. 존속살해 혐의로 재판에 서게 된 딸에게 검사는 추궁했다. “고의로 아빠를 죽인 것 아니냐.” 딸은 대답했다. “그때 우리가 그냥 있어야 했어요. 그날 우리가 그냥 죽어야 했어요.” 죽인 자와 죽은 자 중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일까.
상처 치유할, 개과천선할 대책인가?
“‘몸이 아픈데 장애인 판정을 해주지도 않고 도와주지도 않는다’며 욕설을 하고 행패를 부린 주폭을 검거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주폭 첫 구속자다. 주폭 검거자 100명 중 82명이 무직이다. 범죄율이 감소한다고 으쓱대는 경찰을 보고 있자니 묻고 싶어졌다. ‘공무집행 방해 등 27범의 전과를 가지고 있는 그를 잡아서 좋은가? 주폭 전과는 평균 25.7범, 그중 11명이 50범 이상이고 최고 86범까지 있다. 그래서 이들이 형기를 채우고 나오면, 전과 87범이 되는 것 말고 달라지는 것은 무엇인가?’ 전과가 쌓이는 동안 국가는 무엇을 했나. 국가와 주폭 중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일까.
이웃한테 참혹한 일을 당한 경남 통영과 전남 나주 어린이. 지인에 의해 벌어진 최근 사건 대책으로 전 국민에 대한 불심검문이 실시되었다. 원인과 처방이 다르다. 성범죄자를 잡겠다던 DNA법은 쌍용차·용산 사건 관계자의 유전자를 채취했다. 제3자 신고만 있으면 경찰이 마음대로 위성항법장치(GPS) 추적을 할 수 있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GPS 추적과 무관했던 경기도 성남 살인사건의 대책이었다. 불안한 감정을 이용한 엉뚱한 해결책이 쏟아지고 있다. 저잣거리에서 통용될 만한 ‘잘라버려’라는 거세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다. 국민의 불안과 공포, 분노를 이용해 국가는 원하는 것을 알뜰하게 챙기고 있다. 그런데 핵심적인 질문 하나. 범죄는 줄어들 것인가? 대책은 정말 대책인가 말이다. 이것이 죽은 남자와 살아남은 여자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전과 87범 주폭이 개과천선할 것인가?
거세는 동물의 생식기를 물리적으로 잘라버리는 것이다. 성범죄 해결이 생식기 문제라고 여기는 사고방식도 다분히 남성적이다. 남성적 사고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까. 또한 보복으로 치유되는 상처는 있는가 생각한다. 노르웨이에서 총기 난사로 77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네르스 베링 브레이비크에게 21년형이 선고됐다. 법 체계상 가장 긴 형량이라고 한다. 그러나 죄를 뉘우치지 않는 한 그의 형기는 계속 연장돼, 종신형을 살게 될 것으로 보인다. 참사 1주기 추모식에서 총리는 “폭력에 대한 노르웨이의 대응은 더 많은 민주주의와 개방성, 더 확대된 정치 참여이며 테러 이전에도 이후에도 우리는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국민의 불안을 이용해 딴 주머니 차기에 여념 없는 정부를 둔, 나는 부러울 뿐이다.
정말로 잘라내고 싶은 것
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이 말한 대로 배제되는 삶들이 범죄자가 되고, 솎아지고 버려지는 불량품으로 굴러다닌다. 감옥에 갇힌 범죄는 절망을 학습하고 다시 사회로,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있다. 절망을 잘라낸다고 희망이 자라지 않는다. 절망이 깊어지는 사회에 주목하지 못한다면 다 잘라내고 남는 생살도 같이 썩는다. 최소비용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말 잘 듣고 세금 잘 내는 국민 소수도 불행해진다는 말이다. 그래서 피해자도 가해자도 모두 가난한 이웃의 문제가 돼버린, 치안조차 양극화된 시대의 치유책은 좀더 근본적인 것에서 나와야 한다.
“브레이비크를 교도소에 가둬두는 데 연간 약 24억4천만원이 든다”고 보도하는 의 기사를 읽는다. 속뜻은 ‘쓸데없는데 돈 쓰지 말고 사형시키면 될 텐데’가 아닐까 싶다. 노르웨이 사건에서 겨우 분노를 부채질하는 데이터를 뽑아내는 이들. 가위가 있다면 그들의 경망스러움과 악의를 잘라버리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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