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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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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평범성

등록 2012-09-13 17:19 수정 2020-05-03 04:26

#감옥에서 보낸 편지-⑥

공현씨가 옥중에서 보낸 원고.

공현씨가 옥중에서 보낸 원고.

언론에서 연일 강간, 살인, 흉기 난동 등 무시무시한 범죄 소식들을 보도하고 있다. 어느 신문을 보니 표제에 ‘악마’ ‘야수’ 등의 단어를 써가며 범죄의 흉악성과 충격성을 묘사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나와 같이 사는 그 악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같은 방 사람들은 강도·강간치사 등으로 복역 중이고, 일하는 봉투 공장엔 성폭행·방화 등으로 들어온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말이다.

감옥 안의 평범한 사람들

다른 수용자들과 지내는 것은 그리 힘들진 않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또는 당연하게도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러 사람들이 부대끼며 살려면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감옥 말고 다른 데서도 흔히 겪는 수준이다.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 밉상인 사람, 부당하게 군림하려는 사람들도 마주치곤 한다. 그러나 여기가 감옥이고 그들이 범죄자라서 더 그런 것 같진 않고, 그런 사람이 특히 더 많은 것 같지도 않다. 내가 어려움을 느끼는 게 있다면,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나이를 따져서 위계와 호칭을 정하는 문화라거나, 사람들이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는 데 관심이 많다거나, 올림픽에서 한국 국적 선수가 메달을 따면 환호하거나 등등. 그런데 이런 것들은 ‘평균적인 한국 남성들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코드가 안 맞지만. 몇 개월 살아보니,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곤란할 땐 서로 나눠주고 도와주며, 다른 사람과 다투기도 하고, 권력에 굴종하기도 반항하기도 하는 평범한 이들이었다.

‘악의 평범성’은 이런 의문으로 이어진다. ‘평범하고 비슷비슷한 사람들 중 누구는 왜 범죄자가 될까?’ 이 질문은 범죄의 사회적 성격을 부각시킨다. 최근 서울 여의도에서 일어난 흉기 사건이나 재벌 총수들의 범죄처럼 사회의 병폐를 직접 보여주는 사건들만이 아니다. 범죄율이나 범죄 유형의 거시적 경향 역시 사회구조와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범죄자의 법적·윤리적 책임과는 별개로 범죄의 사회성도 봐야 한다.

감옥에서 살다 보니, 사실 장기 징역 등 강한 처벌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도 의심이 든다. 장기 수감은 그 사람의 사회적 관계를 파괴하고 출소 뒤 적응을 어렵게 한다. 나가니 갈 곳이 없어 찜질방을 전전하다가, 또는 차별과 냉대에 부딪쳐 재범을 하고 몇 개월 만에 도로 들어온 사람의 일화는 감옥에선 드물지 않게 듣는다. 출소 뒤 적응을 돕기 위한 제도들은 있지만 부족하고, 그 취지를 살려 수용자를 적극적으로 도우려는 직원이 그리 많지 않아 취지와 안 맞게 운영되기도 한다.

막연하게 처벌 강화를 외치는 것보다, 범죄의 사회성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더 실용적일지 모른다. 예를 들어 사회적 불평등과 여러 사회문제들의 관계를 분석한 책 에 따르면, 불평등한 지역이나 국가일수록 살인·폭력 등의 범죄율이 높은 경향이 뚜렷하다. 다른 분석에서는,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범죄 처벌이 가혹한데 처벌이 가혹할수록 재범률이 더 높은 경우마저 있다. 복지 강화나 더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범죄 예방에 효과적인 대책일 수 있는 것이다.

범죄는 정치의 문제

흔히 범죄는 치안의 문제로 생각되기 쉽고, 감시카메라 설치나 처벌 강화 같은 대책이 주를 이루기 십상이다. 그러나 흉악한 범죄는 어딘가의 ‘악마’들로부터 선량한 사람들을 보호하지 못해서 생기는 게 아니다. 같은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일어나고, 우리 사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범죄는 정치의 문제인 것이다. 민주통합당 하는 꼴이 짜증나서 범죄가 일어났다는 새누리당 정치인의 헛소리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말이다.

공현 청소년인권운동가 *공현씨의 ‘노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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