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전투, 두 개의 질문
마침내 시작된 보수언론의 저열한 공세, ‘안철수 윤리’로 답해야
검증이란 본래 ‘도덕’에 관한 문제에서 더 풍성할 수밖에 없다. 뭔가 법적 문제가 있을 때 애당초 출마 자체가 어려운 것이 선출직을 둘러싼 최소한의 제약이기 때문이다. 물론 지난 대선처럼 상당한 법적 의혹과 유죄에 관한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거뜬히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건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 그래서 차라리 ‘경제만 살리면 되지, 그깟 검증은 해서 뭐하나’라는 포기의 케이스였다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뜬금없어 뵈는 ‘안철수 룸살롱’ 소동은 바야흐로 본격적인 진영의 대전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서곡 같다. 이 소동의 질문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단란주점의 ‘단란’함을 모른다”고 했던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이 거짓말쟁이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시점에서 이런 논란이 벌어진 것은 수구언론과 네이버가 ‘동맹’을 맺고 검색어 ‘조작’을 벌인 게 아니냐는 것이다. ‘수구언론-포털’ 동맹론의 파생 검색어가 이른바 ‘박근혜 콘돔’이다. 첫 번째 질문은 안철수 개인의 도덕에 관한 것이고 두 번째 질문은 이번 대선을 둘러싼 여론 지형 공정성, 즉 사회적 윤리의 어느 수준에 관한 것이다.
두 개로 나뉜 이 질문들은 양 진영이 바야흐로 일합을 겨루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결국 하나의 회로이기도 하다. 는 안철수를 거짓말쟁이로 몰았고 그의 도덕성에 흠집 내기를 원했다. 소동이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 의도성은 어느 정도 적중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꽤 많은 수의 네티즌들은 ‘안철수 룸살롱’의 공세가 허위이거나 최소한 불순한 의도가 개입된 저열한 기획으로 판단했다. 이들은 안철수가 룸살롱에 갔다는 공세를 그렇다면 이명박은 가지 않았느냐, 정우택은 이미 갔다고 하지 않았느냐로 되받았다. 급기야 박근혜와 콘돔의 관계를 묻는 지경에 이르렀다. 흙탕물에서 뒹굴었다면 그게 어디 안철수뿐이겠느냐는 반발 심리다.
안철수를 향한 보수언론의 도덕 공세는 저열하든 아니든 이제 피할 수 없는 문제다. 성인 남성이 유흥주점에 가서 술을 마시는 행위가 법적 문제는 아니겠지만, 정치적 올바름의 차원에서 개인의 도덕 수위를 점검하기에는 굉장히 유효한 질문일 수 있다. 이 질문을 다른 정치인에겐 전혀 묻지 않다가 왜 안철수에게만 묻느냐는 반론은 그래서 크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뜬 것이니까.
‘단란함을 모른다’던 그의 발언이 그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면, 이를 검증할 권한이 언론에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안 원장 쪽의 대응은 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기사의 기본을 찾고 대꾸할 가치를 찾기보다는 한국 사회 남성들이 누리는 부조리한 단란함과 안 원장이 어떻게 결별할 것인지를 입체적으로 웅변하는 편이 옳고, 훨씬 낫다. 안 원장이 그런 사람이 아니고, 또 아니라면 말이다. 그래야만 진짜 중요한 논란, 수구언론과 포털의 동맹에 관한 의혹을 확장할 수 있다. 네이버 사장은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박근혜 콘돔’ 논란을 해명했다. 하지만 정작 꽤 많은 네티즌들이 듣고 싶은 해명은 따로 있다. ‘네이버는 접수했다’던 이 정권 인사들의 ‘허세’는 아직 유효한 것인가?
김완 기자
룸살롱은 정당하고 콘돔은 부당한가
‘룸살롱’의 정치적 의도 풍자한 ‘콘돔’… 검색어 놀이가 불러내 무의식
‘룸살롱’과 ‘콘돔’. 두 단어는 올해 대한민국의 정치 판도를 바꿀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최근 붙은 수식어다. 안철수에게 룸살롱, 박근혜에게 콘돔은 민망하고 낯 뜨거운 거시기한 단어다. 가톨릭 사제 같은 순수 이미지의 안철수와 철저한 자기관리의 아이콘 독신 박근혜에게 두 단어가 어디 어울릴 법한 것인가? 아마도 둘 다 “어떡하지? 납득이 안 돼요, 납득이”라고 외쳤을 것이다. 그런데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 버젓이 일어났고, 민망한 두 단어는 순식간에 안철수와 박근혜 이름에 달라붙어 대한민국 대형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상위 순위로 올라갔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룸살롱은 유흥가의 언어가 아니라 안철수를 ‘디스’하려는 정치의 언어이고, 콘돔은 성적 언어가 아니라 룸살롱이 정치적 언어로 변하는 순간 그것을 다시 ‘디스’하려는 저속한 풍자의 언어다. 안철수 룸살롱은 아직 사실 여부가 가려지지 않은 논쟁적인 언어고, 박근혜 콘돔은 네티즌들이 만들어낸 실체가 없는 가짜의 언어다. 그렇다면 안철수 룸살롱은 정당하고 박근혜 콘돔은 부당한가?
그렇진 않을 것이다. 사실의 언어와 진실의 언어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안철수가 룸살롱에 출입한 것이 밝혀져 의 최초 보도가 사실로 입증됐다 해도, 안철수가 ‘룸살롱에 갔다’는 사실은 ‘안철수 룸살롱’의 정치적 진실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안철수 룸살롱의 언어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처음부터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배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박근혜 콘돔은 처음부터 명백하게 가짜의 언어였지만, 그렇다고 박근혜 콘돔을 가짜라고 무조건 매도할 수는 없다. 그것은 안철수 룸살롱의 국면에 달라붙는 풍자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콘돔은 안철수 룸살롱이 정치적 언어가 되는 순간 풍자적 언어로 달라붙는다.
한때의 해프닝으로 끝나버린 두 단어는 현재 검색어 순위에서도 사라진 지 오래다. 다만 안철수 룸살롱은 정치적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에 반해 박근혜 콘돔은 앞으로 박근혜 대세론에 흠집 내려는 전형적인 인터넷 포퓰리즘의 언어로 거론될 것이다. 그런데 지금 순수하게 ‘안철수’와 ‘박근혜’라는 이름만을 검색해보면, 박근혜 콘돔은 또 다른 민망한 수식어들로 재생산된다. ‘박근혜 성접대’ ‘박근혜 사생아’ 등등. 이 민망한 거짓의 언어가 계속 출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선 최고 우량주를 흠집 내려는 정치적 음모? 한국 네티즌의 한심하고 저속한 수준의 증거? 아니다. 아마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네티즌들의 검색어 놀이의 무의식 안에 잠재된 어떤 진실의 호명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 사생활의 진실을 알고 싶어 하는 검색어 놀이가 아니라 그것을 정치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을 조롱하는 검색어 놀이 말이다. 진실은 그 수식어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수식어의 정치적 효과에서 나온다. 그런 점에서 정치적 ‘신동아’는 그것이 설령 가짜라 해도, 저속한 풍자의 언어를 이길 수 없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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