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ㄱ 아저씨가 입원을 했다. ㄱ 아저씨는 한진중공업 해고자로 올 11월 복직을 기다리고 있다. ㄱ 아저씬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지회장이 85호 크레인에 올라갔을 때 129일간 손수 밥을 지어올린 사람이다. 그 지회장이 죽고 나자 아저씨는 우울증이 생겼다.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아졌고, 잠을 자지 않는 날은 태반이었고, 회사도 쉬어야 했다. 조금 나아지는 듯했지만, 지난해 또다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가 발표되자 아저씨의 우울증이 재발했다. 몇 날 며칠이고 집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술만 마시던 아저씨를 동료들이 가서 겨우 설득해 파업 현장으로 다시 나오긴 했지만, 아저씨의 마음은 끝내 방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나 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해를 품었다 달을 품었다 하던 아저씨는 결국 스스로 걸어서 병원에 갔다.
‘누굴 해코지한 적이 있나’ 생각하는 나날
ㄴ 아저씨는 오늘도 집 안에서만 지낸다. 어제도 안 나왔을 것이고, 아마 내일도 외출은 없을 것이다. ㄴ 아저씨는 한진중공업 사원아파트에 살고 있다. 사람들 만나는 게 싫다는 아저씨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외출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밤이 어두워서야 밖으로 나온다. 아저씨는 복수노조로 간 조합원들에 대한 원망과 분노, 상처가 너무 크다. 정작 정리해고로 고통을 주고, 어용 복수노조의 배후에 서서 분열을 조장하는 사 쪽에 대한 분노보다도 십수 년을 동고동락하던 동료들의 배신을 아저씨는 더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미움도 대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애정도 기대도 없었다면 이렇게 아저씨 스스로를 갉아먹을 만큼의 분노도 미움도 없었겠지.
“너 똑바로 살아.”
가슴속 화를 견디지 못하던 어느 날 새벽, 아저씨는 복수노조로 간 옛 동료의 집 담벼락에 매직으로 글을 써놓고 돌아오셨다. 그리고 아저씬 자신의 휴대전화에서 옛 동료들의 전화번호를 모두 지웠다.
지난해 한창 파업 중일 때 용대 아저씨는 술만 마시면 눈물이 그렁그렁해서는 아들 이슬이 얘기를 했다. “아부지 돈 없다꼬 아픈것도 참고, 얼마나 아팠겄노….”
맹장염이 복막염이 되도록 참던 미련스럽고 속 깊은 아들은, 얼마 전 또 수술을 받았다. 복막염 수술을 한 환자들은 장이 유착되는 일이 더러 있다고 한다. 이슬이도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이번엔 수술이 잘못된 것인지, 배 안에 피가 고이고 염증이 생겨 대학병원으로 옮겨 재수술까지 받았단다. 20일 동안 같은 곳에 수술을 두 번씩이나 하고, 물도 마시지 못한 이슬인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그 옆을 지키는 용대 아저씨도 몰라보게 야위고 수척해 보였다.
“이슬아, 뭐 주꼬? 이슬아, 앉혀줄까? 이슬아, 좀 걸을래?”
용대 아저씨는 연신 아들의 기분을 살폈고, 늦은 시간이었지만 저녁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생활비며 병원비는 어떻게 하고 있느냐고 물으니, 아저씨는 아들이 들을세라 목을 내 쪽으로 한 뼘이나 빼서는 모기만 한 목소리로 말한다.
“담보… 이제 그것도 없어~. 보험도 다 해약하고 이제 하나밖에 안 남았는데 뭐, 아들 엄마도 얼마 전에 수술받아가꼬…” 하시고는 겸연쩍게 웃으신다.
“아부지가 돼가지고 자꾸 추주버지는 것 겉애~.”
이들의 삶이 정상인가. 요즘 ‘내가 살면서 누굴 해코지한 적이 있었나’ 하고 자주 생각하게 된다는 이들이다. 그들이 꿈꾸는 삶이 그렇게도 가당찮은 꿈이란 말인가. “저렇게 말도 잘하고 잘 웃는 사람들이 우울증에 걸리려면 얼마나 고민이 많고 가슴에 상처가 많았을꼬.” 조합원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의 혼잣말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가 그렇게 목숨 걸고 지키고자 했던 조합원들. 그들을 지켜보는 김진숙 지도위원의 한숨은 길고도 깊었다.
와해 공작에 남은 현장 조합원 10여명
휴직자들은 또 어떤가. 회사로부터 휴업수당을 받긴 하지만, 평소 임금에 비하면 생계를 꾸리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회사가 철저히 이중 취업을 금지하다 보니, 대놓고 다른 곳에 일하러 갈 수도 없다. 생계의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반평생 일만 하던 사람들이 손에서 일을 놓는다는 건 단순히 돈을 벌고 안 벌고의 문제는 아닌 것 같았다. 문득문득 찾아오는 무력감과 불안스레 지켜보는 가족의 눈빛, 무료한 시간을 함께 견뎌야 하는 일이다.
그러다 보니, 휴직자들 가운데는 회사 모르게 일당벌이로 일을 나가는 사람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이것도 순탄치만은 않다. 얼마 전 한 휴업자는 회사 모르게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가 두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지만 산재 신청도 못했다. 산재 신청을 했다가는 이중으로 취업했다는 사실이 회사에 들통이 나고 휴업수당을 물어내야 할 뿐만 아니라 이후 발생할지 모를 인사상 불이익까지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휴업자는 일당제로 부품 생산 공장에서 석 달가량을 일했다. 처음 공장에 들어갈 때부터 한진중공업 휴업자라는 이유로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노동자들보다 임금을 몇십만원이나 적게 받았다. 그런데 그만두고 나오던 날 회사는 당연히 지급해야 할 마지막 달 임금을 주지 않았다. 한진중공업 휴업자라는 걸 안 회사는 임금을 떼먹더라도 신고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휴업자는 어디 하소연할 곳도 없이 벙어리 냉가슴만 앓다가 또 다른 곳으로 일당벌이를 나갔다. 그들의 삶은 이미 무너지고 있다. 한여름날 땡볕에 내놓은 아이스크림처럼.
앞으로 150여 일. 한진중공업이 국회에서 수많은 국민이 보는 앞에서 했던 약속 이행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을 지금 버티게 하는 건 불안스런 약속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켜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6월7일 오늘, 한진중공업 지회는 회사 정문 앞 인도에 천막을 쳤다. 영도조선소 정상화, 민주노조 말살 중단과 158억원 손배소 철회, 단협 해지 철회, 성실 교섭 촉구, 휴업 종료 및 업무 복귀 약속 이행을 주장하며 한진지회는 또다시 거리로 나섰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엔 그들에게 너무나 불안하고 또 절박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지난해 11월10일 어렵게 맺은 노사 합의 이후에도 회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의 손배소와 불성실 교섭으로 끊임없이 노동조합을 압박하고, 휴업의 장기화와 의도적인 수주 해태로 노동자들의 불안감을 조성해왔다. 그런 와중에 어용노조까지 만들어져 대다수 조합원들이 고용 불안을 이유로 이탈해갔다. 그나마 남은 조합원들은 휴업을 나간 상태고 이제 현장에 있는 조합원은 고작해야 10명 남짓인, 그야말로 고립무원의 상태에 한진지회 간부들이 천막을 친 것이다.
제2의 쌍용차 같은 비극 없어야
회사는 두 차례의 공문을 통해 수주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회사 정상화의 길을 가로막는 일이라며 천막을 자진 철거할 것을 통보했다. 회사는 수주를 하지 못하고 회사의 경영상 어려움의 책임을 놓고 언제까지고 노동조합 탓만 할 것인가. 제2의 쌍용자동차와 같은 비극을 또다시 재연할 것인가.
그 알량한 종이 조각 하나로 물러설 것 같은 싸움이었다면 다시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 사람의 목숨과 수많은 눈물로 세우고 지켜온 한진중공업 민주노조다. 노동자들의 투쟁엔 쉼표는 있을지언정, 마침표는 없나 보다. 다시 시작된 그들의 투쟁에, 관심과 연대를 호소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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