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째 아침 출근 선전전, 19일째 저녁 촛불문화제, 그리고 다시 20일째 아침. 벌써 스무 날이 흘렀다. 빈소 복도에 늘어섰던 근조화환도 이제는 모두 시들었고, 영정 앞에 놓이는 하얀 국화도 눈에 띄게 줄었다. 절망의 공간에서도 눈물과 한숨, 고통의 순간이 모여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헤어나올 수 없을 것만 같던 절망과 참담함 속에서도 결코 놓을 수 없는 생존의 끈은 여전히 서로를 묶어 세우고 있었다. 모이면 눈도 못 맞추던 사람들이 말도 하고, 사죄해야 할 사람들은 따로 있는데 입만 열면 ‘미안하다’는 소리를 달고 살던 사람들이 밥도 먹는다. 가끔은, 그 사람과의 지난 이야기를 하며 웃기도 한다.
“한진 사 측은 글도 읽을 줄 모르나”
“그때 강서가 말이야….” 하지만 그 이야기는 늘 끝을 맺지 못하고, 어색한 침묵을 견디지 못해 누가 먼저랄 것없이 자리를 뜨고 만다. 여전히 그런 순간은 낯설고, 감당하기 힘들다. 살다 보면 그런 순간이 얼마나 많을까. 딱 한 번만 보고 싶고, 딱 한 번만 목소리 듣고 싶은. 그럴 때마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
그러나 20일이 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한진 노동자들에게 그런 추억과 그리움은 아직 때 이른 감상일 뿐이다. 하얀 상복을 입은 채 매일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에 맞춰 선전전을 하고, 낮에는 부산 서면·남포동·부산역 할 것 없이 시내 전역을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나눠주고 방송차를 이용해 최강서 열사의 죽음을 알려내고 있다. 그리고 저녁이면 또다시 영도에 모여 촛불문화제를 진행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잠은 틈틈이 이동 중에 쪽잠을 자고,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은 오히려 사치스럽다.
그런데 회사는 책상 앞에 앉은 채로 각종 언론을 통해 최강서 열사의 죽음을 생활고를 비관한 개인적 자살이라고 매도하고 있다. 돈 많은 회사는 일간지 광고까지 내며 지역 여론 단속에 신경을 바짝 세우고 있다. 그 때마다 유족은 번번이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그리고 “유서에도 분명히 쓰여 있는 내용인데, 회사는 유서를 읽고도 개인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면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 되느냐”고 분노했다. 얼마 전 최강서 열사의 누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한진사 측은 글도 읽을 줄 모르나. 유서에 그리 아끼던 아들들 이름 한번, 부모님·아내·형제들 이름 한번 거론 안 하고 갔다. 첨엔 괘씸했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지극히 개인적인 자살이라 한다”며 설명 좀 해달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생활고, 왜 없었겠는가! 꼬박꼬박 월급 받는 보통의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런데 멀쩡히 잘 돌아가던 공장은 놀리고 해외로 일감은 빼돌리며 회사가 어렵다고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다 하며 제대로 된 월급을 주지 않은 것이 3년이 넘었다. 그리고 1년을 기다려 복직한 날, 4시간이 채 안 돼 무기한 강제 휴업을 당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유급 휴업인데 무슨 문제냐고 이야기한다.
손배·가압류, 노동자 개인 부담 없다?
최강서 열사가 돌아가시기 전 받았던 급여는 기본급 14만4천원에 휴업수당 102만원을 더해 총 120만원 정도였다. 거기서 각종 공제금과 대출금을 빼면 집에 가지고 간 돈은 40만원에 불과했다. 6살·5살 된 두 아들과 부인이 함께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이 또한 4년 동안 수주 한 건 못한 무능력한 경영진의 책임이다. 그러면서 수억원씩들여 용역 깡패를 고용하고, 공장 담벼락을 높이고, 그것도 모자라 공장에 문이라고 달린 곳에는 죄다 철조망을 덧대 마치 요새처럼 만들고 있다. 최근엔 언론 광고비에도 돈을 쏟아붓고 있으니 대체 그런 돈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 돈이면 이 겨울 저 많은 노동자가 객지로 떠돌며 생고생하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다.
회사는 최강서 열사가 유서로 남긴 손배·가압류 문제도 조직에 대한 것이므로 개인적 부담은 전혀 없다고 했다. 하지만 2003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합원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개별 조합원들의 월급이며 집에도 차압 딱지가 들어왔다. 그것도 모자라 회사는 85호 크레인이 잘 보이는 곳에 대형 현수막을 걸어 매일매일 손배 액수를 카운팅했다. 크레인 위에서 그걸 지켜보던 김주익 지회장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잔인함을 가진 한진중공업이다.
물론 회사 말처럼 개인에겐 아직 직접적인 손배나 가압류가 들어오지 않았지만, 한진중공원 조합원들은 언제든 회사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이라며 늘 불안감과 압박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지난해 크레인 투쟁에서부터 복수노조 설립과 무기한 휴업에 이르기까지 힘든 상황에서 노동조합은 그나마 남은 작은 희망이었다. 그것이 썩은 동아줄일지언정, 지회 간부나 남은 조합원들에겐 반드시 지켜야 하는 마지막 보루이면서도 희망 같은 존재였다. 그런 노동조합에 걸린 손배·가압류는 노동조합 활동을 하지 말란 소리일 뿐만 아니라, 그 희망을 부여잡고 있는 조합원들에게 죽으라는 소리와 마찬가지다. 그러니 조직과 개인은 아무 관계 없다는 회사의 얘기는 터무니없는 소리다.
이렇게 회사는 2003년과 똑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모자라 고인을 매도하고 욕보이는 짓을 서슴지 않는다. 2003년에도 그랬듯 회사가 합의 사항만 지켰어도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었다. 최강서 열사도 마찬가지다. 2011년, 회사는 국회와 전 국민 앞에서 약속했다. 이것은 단순한 노사 합의를 떠나 사회적 합의였다. 회사 정상화에 노력하겠다, 복직시키겠다,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도 최소화하겠다. 하지만 어느 하나 지켜진 것이 없다.
회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일감은 해외로 빼돌리고 있고, 복직은 일터에 단 한 발짝도 디뎌보지 못한 채 ‘4시간 복직’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생색내기에 그쳤고, 최소화하겠다는 민사소송은 극대화해 듣도 보도 못한 천문학적 돈을 노동조합에 안겨주었다. 그런데도 회사는 일말의 책임감이나 미안함을 갖기는커녕, 문제를 풀려는 의지도 없다. 노동조합의 대화하자는 요구에 회사는 매일매일 경비를 강화하고 문을 더욱 강하게 봉쇄하는 것으로 화답하고 있다.
열사가 된 형오늘도 영하의 날씨에 하얀 상복을 입은 한진 노동자들은 거리로 나섰다. 새파랗게 젊디젊은 동지를 보내고 머리가 허연 늙은 노동자들이 상주 노릇을 하고, ‘형’이라 부르던 사람을 이제는 ‘열사’라 부르며 젊은 노동자들이 유인물을 나눠준다.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만 ‘김주익·곽재규’라는 이름 석 자만으로도 아직 목이 메는 이 가여운 사람들이 벌써 네 번째 상복을 입었다.
이제 이들의 절망을 좀 멈춰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들의 불안을 좀 달래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미 법과 제도로 노동자들의 손과 발을 꽁꽁 묶어놓은 우리나라에서, ‘니들끼리 해결해’ 하는 것은 너무 잔인하지 않습니까.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법과 시민을 무시하는 한진 자본을 심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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