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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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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팝니다 웃음을 삽니다

등록 2012-07-11 17:56 수정 2020-05-03 04:26

7월, 본격적인 휴가철이 다가왔다. 휴가철이 되면 들뜨고 즐거운 사람들이 있는 반면, 한편에서는 휴가는 고사하고 더욱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백화점, 마트, 호텔, 고속도로 휴게소, 휴양지의 편의시설 같은 곳의 서비스노동자가 대표적이다. 특히 호텔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휴가지의 번잡함과 피로감을 해소해주고 편안함을 제공해야 하는 휴식 공간으로서의 역할 때문인지 좀더 많은 친절과 서비스를 강요받는다. 여행과 비즈니스를 위해 처음 찾은 도시나 나라에서 그곳의 문화나 이미지를 처음 대면하게 되는 곳도 바로 숙소다.

도시의 얼굴이 되는 호텔 노동자

얼마 전 독일을 방문했을 때도 처음 묵게 된 호텔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독일을 느낄 수 있었다. 가급적 일회용품을 비치하지 않는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객실과, 몸에 착착 감기는 상냥함은 없지만 조용하면서도 정중하고 한 치의 소홀함이 없는 서비스는 이후에 만나게 될 독일이라는 나라와 참 많이 닮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그곳 노동자들 역시 자부심을 갖고 일한다. 내가 몸담은 도시의 얼굴이라는 생각, 나의 서비스가 누군가에게 감동이 된다는 신념, 그 안에서 느끼는 보람·성취감·존재감은 상당할 것이다.
벌써 10년도 지났지만 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호텔맨들의 애환을 그린다는 것이 애초의 드라마 기획 의도였던 것 같다. 하지만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픽션이고, 현실은 논픽션이다. 일하는 호텔리어들보다는 로맨스에 빠진 호텔리어들의 얘기가 중심이었고, 고급스럽고 화려한 호텔의 겉모습 뒤 호텔리어들의 숨은 노력과 노동의 얘기는 전혀 없었다. 어쨌든, 이 드라마를 보며 호텔리어를 꿈꾸는 젊은이가 많았다.
그러고 보니 나도 아주 잠깐 그 화려함에 현혹돼 호텔리어를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딱 그 생각만큼 호텔리어였던 적이 있다. 대학교를 휴학하고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이 호텔이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주간과 야간을 교대로 하루 8시간씩 일했다. 일반 커피숍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큰 걱정 없이 첫날 근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늘 예상은 멋지게 빗나갔다. 쪽진 머리에 굽 있는 구두를 신으라는 복장 규제도 꽤 까다로웠고, 손님이 없을 때도 호텔 커피숍 입구에서 다리를 11자가 되도록 모으고, 눈과 입에는 늘 상냥한 웃음을 얹은 채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근무 첫날, 채 반나절도 되지 않았는데 몸이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했다. 다리는 붓고 저리고, 허리는 끊어질 듯 아팠다. 억지로 웃는 일도 할 짓이 못 됐다. 어느 시점에선가 입꼬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오전 근무인 터라 새벽부터 일어나 나오느라 잠까지 쏟아졌다.
‘손님도 없는데 어디 구석에 가서 딱 5분만 쉬고 나면 살 것 같겠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뱅글뱅글 돌았다. 하지만 지배인은 신입이 일을 잘하는지 감시라도 하듯 수시로 드나들었고, 차마 잠깐 쉬고 싶다는 말은 뱉어보지 못한 채 점심시간이 됐다.
‘호텔 점심은 어떨까. 밥이라도 먹고 나면 오후 근무는 좀 수월하겠지.’
내심 기대하며 식당으로 갔다. 하지만 밥상이 차려져 있어 식당이지, 마치 창고 같았다. 메뉴나 질도 형편없었다. 그런 점심시간조차 동료들과 교대로 밥을 먹어야 해서 1시간을 채 쓸 수 없었다. 그러니 오후근무가 시작되고서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다.

감정노동은 ‘감정을 쥐어짜는 노동’에 가깝다. 백화점 노동잗르은 변변한 휴게실도 없이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윤운식 한겨레21 기자

감정노동은 ‘감정을 쥐어짜는 노동’에 가깝다. 백화점 노동잗르은 변변한 휴게실도 없이 감정노동에 시달리며 일하는 경우가 많다. 윤운식 한겨레21 기자

육체노동보다 힘들었던 감정노동

고민 끝에 말을 꺼냈다. “매니저님, 화장실 좀….”

그길로 화장실에 달려가 변기 뚜껑을 닫고 신발을 벗고 올라가 그 위에서 잠을 잤다. 변기라는 생각, 더러울지 모른다는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첫 근무를 하고 집에 돌아가보니 몸은 녹초가 되고, 하루 종일 굽 있는 구두를 신은 채 서 있었더니 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니 터진 물집이 벗겨져 구두가 닿는 발등 부분에서 발가락까지 성한 살갗마저 함께 벗겨졌다. 처음에는 살갗이 빨갛게 달아올라 신발을 신고 벗을 때마다 아팠지만 빨갛던 살갗이 숯으로 그을린 것처럼 시꺼멓게 변할 때쯤 되니 아픔이 사라졌다. 그렇게 발이 덜 아플 만큼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일에도 요령이 생겼다.

손님이 없을 때는 주방에 들어가 설거지를 도와주고 나면 개수대 아래에서 잠깐 쉴 수 있는 시간을 번다는 것을 알았고, 주말에 결혼식 행사장에 헬퍼로 가면 잠깐이지만 바다가 보이는 발코니에서 바람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대기하며 서 있는 시간에 벽에 살짝 기대면 다리를 조금 놀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렇게 손님이나 지배인 모르게 조금씩 쉴 수 있는 요령을 터득하며 8개월가량 일했다.

호텔에 있는 동안은 몸이 힘든 날보다 마음이 고단한 날이 더 많았고, 그것은 몸이 아픈 것보다 더 견디기 버거웠다. 나도 웃고 싶지 않고 기분이 울적한 날이 분명 있었다. 하지만 그런 날에도 어김없이 웃어야 했고, 한 톤 높은 목소리로 응대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도 사람인지라, 가끔 그런 감정이 숨겨지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런 날은 어김없이 억울하고 서러운 일을 겪는다.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말도 수차례 들어야 했다.

“무슨 호텔 서비스가 이 모양이야.”

“아가씨 그날이야? 왜 이리 퉁~한데?”

그때 나는 고작 23살이었다. 물론 지방의 작은 호텔이라 좀더 열악한 조건이 있었을 테고, 서울이나 관광명소의 특급호텔과 조금 차이가 있었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다. 고급스럽고 화려한 모습 뒤에는 그 화려함과 쾌적함과 안락함을 위해 쓸고, 닦고, 만들고,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숨은 노력과 노동이 있다.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직원 이용 통로’ 내지는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같은 공간을 보면 대체적으로 우리가 이용하는 공간과는 사뭇 다르다. 그곳은 어둡고, 비좁고, 가끔 상자를 쌓아두기도 해 위험해 보였다. 그런 곳에서 화장을 곱게 하고 쪽진 머리를 한 아가씨들이 앉아 쉬거나 간식을 먹는 모습을 가끔 본다.

최근에는 백화점도 너도나도 경쟁이 붙어 정기세일, 브랜드세일, 무슨 시즌, 무슨 행사 하며 연장영업을 한다. 부산의 한 백화점은 밤 10시까지 영업하는 곳도 있다.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그렇게 하루 종일 서서 일하고 웃어야 하고 상냥한 말과 행동을 유지해야 하니 얼마나 힘이 들까. 그들도 ‘감정’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다.

감정노동,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나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살 때면 가끔 내가 지금 돈을 주고 사는 것이 내 손에 들린 상품이 아니라 이 어여쁜 아가씨의 ‘웃음’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래서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다리 아파서 어떡해요” 하고 인사를 건네면, 그들은 “네? 아… 네, 괜찮습니다. 고맙습니다” 하고는 다소 어색해한다. 하지만 이내 좀전까지 매장을 들어서는 고객님께 보내는 웃음이 아닌, 좀더 편안해진 따뜻한 시선과 미소를 받게 되는 행운이 생기기도 한다.

‘감정노동’. 얼마나 잔인하고 정 없는 말인가. 혹시 웃음에도 향기가 있단 말, 경험해본 적 있는가. 그들의 감정을 존중해주는 것, 그들의 노동에 감사해주는 것. 그러면 그들의 가슴에 꽃이 피지 않을까. 가슴에 꽃을 품은 그들의 웃음에는 향기가 난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상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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