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는지요. 전 잘 지냅니다. 금세 한 달이 훌쩍 지났군요. 0.94평 독방이 금세 적응되어 우리 안에 갇힌 짐승처럼 어슬렁어슬렁 오가는 내가 낯설기도 합니다. 어떤 땐 한 몇 년 산 공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검찰 송치라도 나간 날은 빨리 들어갔으면 좋겠는 ‘집’처럼 다가오기도 합니다. 하루에 한 번 운동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 교도관이 선심 쓰듯 한 5분 스팀이라도 조금 쬐고 들어가라는데, 그 5분의 자유가 오히려 불편하고 갑갑해 빨리 방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이게 ‘감옥효과’인가 봅니다. 조금만 가둬두면 자연스럽게 자유라는 날개를 스스로 접고 구속을 내화하게 되니 말입니다.
사랑스런 성소와 같은 변기
가끔 이 조그만 방과 내가 혼연히 일체가 되었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는 게 복잡한 것 같아도 실상은 먹는 입과 소화하는 장, 그리고 배설하는 항문이라는 한 줄의 순환계인 것처럼 이 방도 같은 모양새입니다. 입구에 ‘식구통’이라 부르는 배식구가 하나 있고, 반대편 ‘뺑끼통’에 하얀 변기가 하나 놓여 있습니다. 말하자면 이 방에서 나는 내장과 같은 기능을 합니다. 조그만 구멍으로 하루 세 번 음식을 넣어주면 잘 소화시켜 뺑끼통 변기 구멍으로 최종 소화물을 내보내줍니다. 나는 나의 기능을 잘 수행하기 위해 하루 두 번 불가리스를 구매해 먹기도 하고, 식사가 들어온 뒤에는 30분씩 걷기 운동을 해서 순환기 장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줍니다.
이렇게 입구와 출구의 사이가 너무 가까우면 지저분하지 않느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워낙 간명한 거리이고 구조이다 보니 배달사고도 없고, 쌓아둬서 냄새날 것도 없이 깨끗이 관리하게 됩니다. 어떤 명품보다 하얗고 식기보다 더 깨끗하게 변기를 닦습니다. 입구로 들어온 모든 것의 설거지도 여기서 하고, 얼굴도, 이도, 몸도 여기서 닦습니다. 모든 걸 깨끗하게 하는 이 조그만 공간이 뺑끼통이 아니라, 변기가 아니라 무슨 사랑스런 성소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렇습니다. 이런 뺑끼통 변기보다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되돌아보면 나도 그런 영혼의 하수구일 수 있습니다. 지저분한 것들을 매일 먹고 사니 더럽지 않느냐고요. 하지만 세상엔 이 변기보다 더 지저분한 것들을 주워먹고, 내뱉는 입들이 많습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제 한 몸의 필요를 넘어서는 수많은 욕망의 잉여를 쌓아두고 물 내리지 않는 더러운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회의식도, 비판의식도, 반항도, 저항도 없이 잘못된 세상이 싸지르는 대로 받아먹는 무지한 몸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변기보다 더 많고 위험한 반사회적 박테리아 생산의 숙주가, 놀이터가, 근거지가 되는 몸들이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먹고 무엇을 뱉었는지를, 내가 먹어야 할 것과 내뱉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인간 변기들이, 인간 병기들이, 인간 흉기들이 간혹 눈에 뜨입니다. 당신은 어떤 몸인가요? 어떤 입인가요? 어떤 변기인가요? 아니면 어떤 내장인가요?
일한 만큼 가져가는 간명한 세상
희망버스의 힘이기도 한지 모두가 다시 ‘복지’를 이야기하기 시작했는데, 모두 ‘노동’을 전제로 하거나 눈치를 보며 이야기합니다. 분배의 정의가 사라진 곳에서 복지의 꽃은 피어날 수 없습니다. 생산현장에서의 기본적인 분배의 정의를 말하지 않는 복지는 사기입니다. 혼자 먹을 수 없는 사회적 가치나 잉여를 독점한 1% 재벌체제의 혁파를 얘기하지 않는 복지는 질 나쁜 환각물일 뿐입니다. 이 재벌들은 워낙 커서 관장을 할 수도 없습니다. 우선은 이 사회가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잘게 쪼개고 부숴야 합니다. 이 사회의 건강한 내장인 우리가 달려들어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누구나가 일한 만큼 가져가는 세상, 누구나가 자신의 몸과 생활을 영위할 만큼은 먹을 수 있는 세상, 누구나가 내게 꼭 필요한 에너지만큼만 소비하며 사는 간명한 세상을 꿈꿔봅니다.
너무 깨끗이 닦아두었나. 자꾸 뺑끼통의 하얀 변기한테로 눈이 갑니다. 내 영혼의 뒤끝도 저리 깨끗하고 간명했으면 좋겠습니다.
송경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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