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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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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복지예산 92조원의 ‘꼼수’

복지 분야 예산 역대 최고라며 복지국가 운운하는 MB
주택가격 조사사업 등 엉뚱한 예산을 복지로 셈한 결과
등록 2011-12-15 19:51 수정 2020-05-03 04:26

정부가 제출한 내년 예산안에서 복지 분야는 92조원으로 정부 총지출 대비 28.2%에 해당한다. 수치로만 보면 역대 최고 비중이다. 이미 지난해 12월 이명박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업무계획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올해 복지지출이 재정의 28%를 차지하니 “이제 대한민국이 복지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복지 재정 비중 OECD 꼴찌
요사이 외국 순방이 잦은데 혹 나라 밖에서 대통령이 이 말을 했다면 얼마나 망신이었을까?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여 회원국 중 재정 대비 복지 비중이 20%대인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멕시코도 복지지출 비중이 37%대고, OECD 회원국 대부분은 재정의 절반을 복지에 사용하고 있다. 그나마 어느 외국의 회의장이 아니라 청와대 업무보고장이어서 다행이다.
또 정부는 말한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복지지출을 꾸준히 늘리고 있다고. 내년 복지지출 증가율이 정부 총지출 평균 증가율 5.5%보다 높은 6.4%로 책정돼 있다는 게 핵심 근거다. 이명박 정부가 정말 복지지출에 신경 쓰고 있는 것일까? 이번호에서는 복지지출 92조원의 내부를 들여다보자.
나는 2000년대 초반 빈곤단체들과 함께 복지운동에 참여했다. 매년 정부가 다음해 예산안을 제출하는 10월 즈음에는 기획예산처 앞에 모여 복지예산 확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벌였다. 그때 자주 외쳤던 구호가 “복지예산 10조원이 웬 말이냐!”였다.
몇 해가 지난 2005년 10월, 국회에서 일하던 나는 다음해인 2006년 복지지출안이 54조원이라는 정부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 복지예산이 10조원 안팎이라고 기억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노무현 정부가 복지를 강조한다지만 3~4년 만에 복지예산을 5배나 늘렸단 말인가!’
국정 소신이 남달리 강했던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예산편성에도 국정 전략을 반영하고 싶어했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사업들이 부처별 체계를 넘어 정책 목표가 유사한 ‘분야별’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보건복지부 소관을 넘어 다른 부처에서 복지 관련 사업들이 있다면 이를 모두 모아 복지 분야로 부르자는 것이다. 국방부의 군인연금 지출은 군인의 ‘노후복지’고, 국토해양부가 주관하는 취약계층 주택 개량 사업 역시 ‘주거복지’가 되며,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생 근로장학금 지원사업은 ‘대학생 복지’, 기획재정부의 생업자금 지원사업은 ‘서민복지’로 간주될 수 있다.
결국 비밀은 복지예산이 대폭 늘었다기보다는 복지지출을 계산하는 새로운 방식에 있었다. 이전에 내가 기억하던 10조원은 보건복지부 ‘부처’ 지출이었고, 새로 접한 54조원은 무려 9개 부처가 일반회계·특별회계·기금에서 벌이는 복지 ‘분야’ 사업의 합계였다. 이런 분야별 편성은 2006년 제정된 국가재정법에 명시돼 법적 토대까지 갖추게 되었고, 현재 3천여 개에 달하는 중앙정부 사업들이 16개 국정 분야별로 편성돼 발표되고 있다.

지난 10월5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2012년 복지 분야 예산안 합동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지난 10월5일 임채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울 동작구 상도동 상도종합사회복지관 강당에서 열린 ‘2012년 복지 분야 예산안 합동설명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디브레인(dBrain)의 마술

이전에는 정부 사업이 부처별 주소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복지지출을 이야기하려면 보건복지부 예산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정부의 모든 사업들이 ‘부처별’ 외에 복지, 행정, 통신, 과학기술 등 분야별 주소를 가지고 있다. 기획재정부 담당자가 디지털예산회계시스템(dBrain·디브레인) 앞에 앉아 ‘복지’ 명령어를 입력하면 에서 보듯이, 관련 사업들이 기초생활보장·공적연금·노동·주택 등 8개 부문으로 재분류돼 등장한다. 이 수치를 활용해 기획재정부는 ‘복지지출 재정 대비 역대 최고’라는 보도자료를 내보내고, 대통령은 ‘복지국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감동을 덧붙인다.

정부가 이처럼 부처 사업들을 국정 분야별로 ‘헤쳐 모여’할 수 있는 것은 디브레인 덕택이다. 이는 노무현 정부가 2004~2007년에 무려 600억여원을 들여 개발한 예산 프로그램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근래 디브레인이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한다. 한국 정부는 지난 9~10월 동유럽·중앙아시아 공공재정그룹 회의 및 세계은행 세미나에 이어 11월에는 미주개발은행(IDB) 주최로 열린 ‘통합재정정보시스템 워크숍’에서 디브레인 개발 경험을 발표했고, 실제 필리핀과 에콰도르 등이 디브레인 프로그램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국민도 이 멋진 프로그램에 자부심을 가지기는 어려울 듯하다. 요즘 유행하는 ‘꼼수’가 디브레인에도 숨어 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다루는 주체는 행정부와 국회다. 당연히 행정부의 편성권과 입법부의 심의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디브레인을 활용해 ‘분야별’ 편성을 발표하는 데 반해, 국회는 여전히 구식인 ‘부처별’로만 심의하고 있다. 예산편성과 심의에서 심각한 불균형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지출을 예로 들어보자. 정부는 9개 부처 관련 사업들을 모아 내년 복지지출이 총 92조원이라고 발표했다. 국회는 무엇을 해야 할까? 당연히 복지지출을 구성하는 수백 개의 사업들이 진짜 복지인지를 가리고, 복지 민심을 고려할 때 92조원의 규모가 적정한지를 심의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막상 국회에 제출한 예산안 문서에는 분야별 자료가 없다. 전체 복지지출 92조원을 9개 상임위원회로 쪼개어 제출된 부처별 자료만 존재한다. 이에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다루는 보건복지부 예산 36조원만 복지예산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심의될 뿐, 다른 상임위원회 소속 사업들은 ‘복지 분야’ 주소를 잃고 각 부처의 사업으로만 취급된다. 결국 행정부는 복지지출 92조원이라는 상품을 가지고 곳곳에서 장사를 하지만, 정작 이를 구입하는 국회는 이 상품의 내역이 어떠한지 따지지 못한다. 또한 복지 분야 총액이 안건으로 올라오지 못하니 이에 대한 심의도 진행되지 않는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있지만 이름이 무색하게도 각 상임위원회에서 넘어온 결과를 미시적으로 계수 조정할 뿐이다.

순수 복지예산 1천억원 증가에 그쳐

몇 가지 사업들을 따져보자. 국토해양부가 매년 약 600억원의 예산을 들여 실시하는 주택가격 조사사업이 있다. 주택가격 동향과 공시가격을 조사해 공시하는 것인데, 정부·국민은행·한국감정원 등이 이를 수행한다. 이 600억원의 사업은 복지 분야일까 행정 분야일까? 정부는 ‘복지’로 계산한다.

정부는 내년 국토해양부가 관리하는 국민주택기금 사업 19조원을 모두 복지 분야로 간주한다. 이 중 15조원은 주택 건설과 구입, 전세자금 등에 지급되는 융자금이다. 사실 주택 융자금은 나중에 정부가 돌려받는 돈이기에 복지지출로 인정되기 어렵다. 굳이 복지로 계산하려면 시중금리와 비교한 이자 차이 금액이 복지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15조원이 모두 복지지출로 합산된다.

또한 기획재정부의 다문화가족 방문교육사업, 결혼이민자 통번역사업, 여성부의 청소년 글로벌 역량강화사업, 중국청소년 초청사업 문화 등도 복지지출 92조원에 포함돼 있다. 이 사업들의 주소가 정말 복지일까? 만약 외교·교육·문화 분야에 더 가까운 것이라면 복지가 아닌 그 주소로 분류되는 게 옳다(반대로 건강보험 지출은 국제 기준에서 복지 분야로 인정되나, 우리나라 현행 재정 통계 체계의 결함으로 정부지출과 무관한 공공기관 회계로 떨어져 있다).

백번 양보해 정부의 복지지출 분류를 그대로 따른다고 할 경우, 내년 복지지출은 얼마나 늘어나는 것일까? 기획재정부는 내년 복지지출 증가율이 정부 총지출 증가율보다 높다는 점을 강조한다. 금액으로 보면, 내년에 복지지출 92조원은 올해 86.4조원에서 5.6조원 늘어난다. 과연 이 증가분은 어떤 복지사업에서 나왔을까? 정부예산은 의무지출과 재량지출 사업으로 구분된다. 전자는 법령에 의해 이미 예산 규모가 정해진 사업이고, 후자는 행정부의 예산편성 재량권이 적용되는 사업이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지출은 보험료를 냈던 가입자들이 연금제도 급여 산식에 따라 받는 금액으로서, 이명박 정부의 예산편성과 무관한 의무지출이다. 내년도 복지 증가분 5.6조원 중 이런 의무지출 몫이 공적연금 3.2조원을 포함해 4.6조원을 차지한다. 내년 복지지출 중 재량지출 증가 몫은 고작 1조원이다. 게다가 이 1조원에는 대부분이 융자금이어서 복지지출로 보기 어려운 주택 부문 증가분 9천억원이 포함돼 있다. 그렇다면 내년 실제 정부의 예산편성권이 작동하는 재량지출 증가분은? 92조원의 복지지출 중 1천억원에 불과하다.

근래 이명박 정부가 특히 강조하는 논리가 ‘2050년 복지지출 자연증가론’이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에 따른 자연 증가분이 많아 2050년에는 복지지출이 국내총생산(GDP)의 20%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지금 GDP의 9% 수준인 복지지출 비중이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다는 논리다. 지금 복지를 일부러 늘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이에 대한 비판은 조만간 다룰 예정이다).

복지

복지

농락당하는 대한민국 복지재정

그런데 이상하다. 정부 예산안에서 복지증가율 6.4%는 내년 명목GDP 증가율 7.6%보다 아래에 있다. 내년에 복지증가율이 명목GDP 증가율에 미치지 못하므로 GDP 대비 복지 비중이 올해보다 더 작아진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2011∼2015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서도 복지지출 평균증가율이 5.8%로 명목GDP 증가율 7%대보다 역시 낮다. 앞으로 5년 동안 GDP 대비 복지 비중이 더욱 하락한다는 이야기다. 말로는 2050년의 청사진을 제시하지만 실제는 거꾸로 가고 있다.

곧 내년 예산안이 국회에서 결정될 것이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복지 민심과 최근 한나라당의 위기의식이 반영돼 생색내기 수준에서 복지지출이 다소 증액될 듯하다. 그리고 예산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날 정부는 ‘내년 복지지출 역대 최고 돌파’라고 또 홍보할 것이다. 어려운 재정 여건에서도 최선을 다해 복지를 늘렸다고 강조할 것이다. 아, 가엾은 대한민국의 복지재정이여!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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