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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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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료 더 올려 무상의료 실현하자

인상률 최소화 급급해 낮은 보장성 눈감는 건보정책심의위
보험료 인상 요구해 모든 병원비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
등록 2011-11-24 10:56 수정 2020-05-03 04:26

우리나라에서 가장 지출이 큰 복지제도는 무엇일까? 국민건강보험(이하 건강보험)이다. 올해 36조원으로 압도적 규모를 자랑한다. 우리나라에서 국민 모두에게 적용되는 복지가 있다면 무엇일까? 건강보험이 유일하다. 5천만 국민 모두가 이용하고 있다. 이처럼 대단한 건강보험의 보험료는 누가 정할까? 국회? 보건복지부? 아마 이에 정확히 답하는 독자는 많지 않을 듯싶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를 주목하라
노무현 정부 시절 ‘더 내고 덜 받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논란거리였다. 결국 보험료율은 9% 그대로, 급여율은 60%에서 40%로 내렸다. 대신 노후 생계비 지원 방안으로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됐다. 어찌됐든 국민연금의 보험료와 급여는 국회에서 다루어진다.
지난 7월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4320원에서 4580원으로 올랐다. 월급으로 치면 95만7220원으로 100만원에도 못 미치는 금액이다. 이처럼 ‘비인간적’ 최저임금은 어디서 결정될까? 최저임금심의위원회다. 노동계 9명, 경영계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총 27명이 매년 4월부터 6월까지 교섭한 뒤 표결한다.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사회적 공방이 거세서 최저임금심의위원회의 존재는 상당히 알려져 있는 편이다.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자. 건강보험료는 누가 결정하는가? 최저임금과 비슷하다. 에서 보듯이, 직장과 지역 가입자 대표 8명,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약사회 등 의료공급자 대표 8명, 공익 대표 8명, 그리고 위원장인 보건복지부 차관으로 총 25명이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보정책심의위)가 있다. 건보정책심의위는 건강보험료뿐만 아니라 건강보험 재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의료수가(진료비 가격),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범위 등 건강보험의 모든 것을 심의하는 기구다. 당신이 의사로서 진료비 단가를 높이고 싶은가? 환자로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틀니, 간병 서비스도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싶은가? 가입자로서 건강보험료 인상을 막고 싶은가? 그렇다면 중앙정부 예산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무려 36조원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다루는 건보정책심의위를 주목해야 한다. 이곳에서 당신의 모든 관심사항이 결정되니 말이다.
건강보험료 협상은 매년 10월에 시작돼 11월 중순께 표결로 마무리된다. 마침 지난 11월15일 건보정책심의위는 내년 건강보험료율을 2.8% 인상하기로 확정했다. 현재 건강보험의 재정은 가입자·기업·정부 3자에 의해 조성된다. 이번 인상에 따라 내년 건강보험료율은 월보수액의 5.8%가 된다. 노동자와 사용자가 각각 절반인 2.9%를 내고, 지역가입자도 소득과 자산을 고려해 엇비슷한 수준의 보험료를 납부할 것이다. 내년에 직장가입자는 현재 가구당 월평균 8만4천원에서 8만6천원으로, 지역가입자는 7만5천원에서 7만7천원으로 각각 2천원씩 더 내게 된다. 그리고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의 20%를 정부가 지원한다.
이번 건강보험료 협상에서 정부는 내년 지출 증가분 1조원을 확보하려고 3~4% 인상안을 제시했다. 반면 가입자 대표들은 건강보험공단이 지닌 누적 적립금을 활용하면 인상폭을 낮출 수 있다며 1.6% 인상안을 꺼냈다. 결국 몇 차례 공방을 벌인 끝에 도달한 종착점이 2.8%다. 국민과 기업의 부담을 고려해 보험료율 인상을 최소화했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 지난 11월1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협상이 열리던 서울 종로구 율곡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료를 30% 인상해 무상의료를 실현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제공

» 지난 11월1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협상이 열리던 서울 종로구 율곡로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주장하는 시민단체들이 건강보험료를 30% 인상해 무상의료를 실현하자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제공

무상의료는 공짜의료가 아니다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을 접한 국민의 반응은 ‘또 올라!’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공공요금이 줄줄이 오르는데 서민 가계에 주름이 더 깊어지게 생겼다. 그리고 이것으로 유야무야될 듯하다. 내년 이맘때 다시 비슷한 수치의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을 들을 때까지 건보정책심의위의 존재는 시야 밖으로 사라질 것이다. 여기가 갈림길이다. 당신이 무상의료를 갈망하는 사람이라면 새롭게 눈을 떠야 한다. 국민의 관심에서 사라지는 건보정책심의위와 함께 무상의료를 실현할 열쇠도 함께 묻히기 때문이다.

무상의료는 공짜의료가 아니다. 무상의료는 병원에서 퇴원할 때 환자가 직접 내는 본인부담금의 해소, 즉 건강보험이 병원비를 모두 지급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건강보험 재정이 대폭 늘어야 한다. 현재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약 62%다. 병원비가 1천만원이면 평균 620만원은 건강보험이 책임지고 나머지 380만원은 환자가 직접 낸다는 말이다. 올해 병의원이 청구한 의료비 총액이 약 58조원으로 추정되는데(비급여 포함), 이 중 62%인 36조원은 건강보험 몫이고 나머지 22조원은 환자 부담이다. 이번 건보정책심의위의 결과로 내년에 보장성은 얼마나 강화될까? 제자리걸음이다. 새로 늘어나는 급여는 75살 이상 노인 틀니의 일부 보험 적용, 임신·출산 진료비 인상(40만원→50만원) 딱 두 항목이다. 이에 따른 추가 지출 약 4천억원은 총 58조원에 이르는 의료비에서 보면 1%에도 못 미치는 보잘것없는 금액이다.

이번만의 문제가 아니다. 매년 건보정책심의위는 다음해 건강보험 지출의 자연 증가분과 미미한 급여 확대분을 보전하는 수준에서 건강보험료를 조정해왔다. 이런 구조에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계속 그 자리에 머문다. 건보정책심의위가 낮은 보장성을 고착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번 건강보험료 협상 과정을 되돌아보자. 처음에 정부는 3~4% 인상안을 제시했다. 보장성의 획기적 확대와는 거리와 먼 현상 유지 방안이다. 항상 정부의 관심은 보장성보다 건강보험의 당기 재정수지 균형에 있었다. 이것이 가입자에게 주는 의미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이 여전히 부족하기에 병원비 불안에 대비해 민간의료보험에 계속 의존해야 한다. 한편 가입자 대표들은 국민의 보험료 부담을 줄여보자는 취지에서 되도록 인상률을 더 낮추려 했다. 그 취지를 충분히 이해하지만 이것이 가입자에게 주는 의미는 앞의 경우와 동일하다. 내년 지출 증가분이 기존 적립금으로 일부 충당되는 것 외에 건강보험의 보장성은 올해와 변함없다.

다른 길은 없었을까? 11월10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 협상이 열리던 보건복지부 청사 앞에서 다소 특이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한국여성민우회, iCOOP생협연합회, 한국신장암환우회, 인천평화의료생협 등 몇몇 시민단체가 든 현수막에 적힌 구호는 “국민, 기업, 정부 모두 30%씩 더 내 무상의료 실현합시다!”였다.

‘100만원 상한제’ 실시해야

이들은 낮은 건강보험료, 낮은 보장성 틀을 고수하는 건보정책심의위 논의 방식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장 건강보험료가 덜 오르는 것이 다행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 건보정책심의위가 가입자에게 더 큰 본인부담금을 전가하는 결정을 되풀이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비급여를 포함해 한 해 환자 1인당 본인부담금이 100만원이 넘지 않는 ‘100만원 상한제’를 곧바로 실현하는 것이다. 이에 필요한 재정 14조원을 마련하기 위해 건강보험료를 과감히 30% 올리자는 제안이다(의료비 본인부담금 총 22조원 중 나머지 8조원은 환자 몫으로 남김). 금액으로는 가입자 1인당 평균 1만1천원, 가구당 평균 2만6천원이다. 건보정책심의위가 가구당 월평균 2천원을 인상했지만, 그 10배가 넘는 2만6천원을 더 내자는 선언이다. 당연히 기업과 정부의 몫도 동일한 비율로 늘어나는 방안이다.

가입자 처지에서 이 주장의 손익을 따져보자. 한국의료패널 자료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 전체 가구의 78%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가구당 평균 보험 수가 3.62개이고, 월평균 보혐료가 18만원이다. 현재 월평균 8만원 안팎인 건강보험료에 비해 2배나 많은 금액이다.

우리가 가구당 월 2만6천원씩 더 내 ‘100만원 상한제’가 실시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상 병원비 걱정에서 벗어나게 돼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할 이유가 없어진다. 민간의료보험이 어떤 상품인지 꼼꼼히 따져본 적 있는가? 가입자가 되돌려받는 급여는 기업 이윤, 보험설계사 수당, 관리운영비 등을 빼야 하기에 보통 많아야 60%대 수준으로 추정된다(암보험은 30%대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100원을 내면 최대 약 60원을 돌려받는 구조다. 건강보험은 어떤가? 건강보험에서는 거꾸로 가입자의 보험료에 기업 기여금과 정부 지원금이 더해지므로 100원을 내면 거의 200원이 조성된다. 또한 민간의료보험과 달리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해 내고 급여는 자신이 낸 보험료와 무관하게 아픈 만큼 받는다. ‘능력대로 내고 필요만큼 받는’ 대한민국에서 흔치 않은 사회연대제도가 바로 건강보험이다. 우리는 이토록 아름다운 제도를 방치하고 대신 계층 차별에 토대를 둔 민간의료보험을 육성하고 있다!

우리 선택에 달렸다. 민간의료보험 대신 ‘모든 병원비를 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하자. 최저임금 인상을 ‘국민임투’로 격상해 최저임금심의위원회를 압박했듯이, 무상의료를 바라는 민심이 건보정책심의위를 에워싸면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가입자 스스로 건강보험료를 더 내겠다는데 누구도 이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건강보험 재정이 확충되면 저소득 계층을 위한 보험료 절감 프로그램을 도입할 수 있다. 의료비 낭비가 심한 비급여 진료를 모두 건강보험 급여로 전환해 엄격히 관리하고, 진료비 지급 방식(수가제도) 개혁에도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건강보험이 직면한 △보장성 확대 △저소득 계층 보험료 지원 △지출 통제의 세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생각하기’를 시작할 때

2000년대 초반부터 대한민국에서 무상의료 논의가 전개됐지만, 실현 가능성이 느껴지지 않는 구호에 머물러 있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복지 민심이 등장한 지금, 국민은 막연한 요구가 아니라 구체적 경로를 지닌 무상의료를 원하고 있다. 길은 있다. 건강보험의 주인인 우리 가입자들이 마음을 굳게 먹고 본격적으로 건보정책심의위에 개입한다면 현행 건강보험제도 내부에서 무상의료 실현 방안을 마련할 수 있다. 단, 우리 스스로의 변화가 먼저다. 이번 건강보험료 인상 소식을 접하며 당신은 어떻게 반응했는가? ‘또 올라’ 하며 열을 내지는 않았는가! 이제부터는 ‘보장성이 또 그대로구나, 본인부담금에 계속 시달려야겠구나, 기업과 정부는 추가 부담에서 빠져나갔구나!’라며 분개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르게 생각하기’를 시작하자.

공공사회연구소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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