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은 1초를 ‘세슘-133 원자에서 방출된 특정한 파장의 빛이 9192631770번 진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규정합니다. 지구 어디에서나 같죠. ‘정시법’(定時法)입니다. 하지만 근대 이전에는 시간 기준이 고정돼 있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시대엔 낮에는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재는 해시계를, 해가 없는 밤에는 물시계를 이용했죠. 물시계로는 세종 때 장영실이 개발한 자격루가 유명하죠. 자격루는 ‘부정시법’(不定時法)을 썼습니다. 해가 진 뒤부터 다시 뜨기 전까지 밤을 다섯으로 나눠 초경·이경·삼경·사경·오경으로 불렀는데, 계절에 따라 밤낮의 길이가 달라지므로 5등분한 1경의 길이도 날마다 다릅니다. 해 뜨면 일어나 움직이고, 해 지면 잠자리를 준비하는 농경사회의 생활 패턴과 닮았죠. 근대 이전엔 삶의 속도가 느렸고 시간도 아주 더디게 흘렀을 거예요. 조선시대 초기 건축양식과 후기 건축양식의 차이를 단박에 구별할 수 있는 분은 흔치 않을 겁니다. 어쩌면 나면서 신분 등 모든 게 고정된 그때 사람들에게 ‘변화’란 자기 삶과 무관한 것이었을지 모릅니다. 요즘 삶의 속도, 어떤가요? 빨라서 좋으신가요? 어쨌거나 ‘새것’이 대우받는 세상입니다. 하지만 전통은 낡은 것이 아니라 오래된 것이라고 하지요. 패기와 연륜의 높낮이를 재기 어렵듯이, 새것이 오래된 것보다 낫다고 할 근거도 없고요. 그래도 오래된 것만으로 살 수는 없겠죠.
시간과 변화에 대해 잡설을 늘어놓은 건 이 이 가을을 계기로 몇몇 칼럼 등 지면을 조금 바꾼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잔칫상을 차릴 만큼 큰 변화는 아니지만, 정갈하고 맛깔스런 밥상이면 좋겠네요. 이제 소개하겠습니다.
“만화에서 세상 모든 것을 배웠다”고 주장하는 네 남자가 ‘만화방’을 새로 꾸밉니다. 구본준 책·지성팀장 등 네 명이 돌아가며 매주 연재할 새 칼럼 ‘네 남자의 만화방’입니다. 이들에게 만화는 ‘이종교배의 신’입니다. 만화는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스리슬쩍 가져다 자기 것으로 만들고, 다시 새 문화를 만들어 다른 장르에 건네주는 ‘문화의 저수지’라는 겁니다.
“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 출신 원로 스테판 에셀(93)이 에서 외친 이 문구는, 격주로 연재될 박은선씨의 새 칼럼 ‘즐거운 혁명’의 지향과 궁합이 잘 맞을 것 같아요. 박씨는 ‘리슨투더시티’라는 시각예술단체의 디렉터랍니다. 도시의 욕망과 예술의 관계에 관심이 많다는데, 요즘은 “4대강, 내성천, 명동, 영도를 오가며 정권을 바꾸는 것보다 도시민의 감성을 바꾸는 게 더 중요하다고 느끼며 살고 있다”네요. 놀이+저항+예술=즐거운 혁명, 쯤 될까요?
혼자 사는 이를 대하는 한국 사회의 시선은 아직도 뜨악합니다. 하지만 ‘2010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1인 가구는 403만9천 가구로 전체의 23.3%에 이릅니다. 서울에서는 1인 가구가 4인 가구보다 많죠. 격주로 연재될 새 칼럼 ‘김민서의 나와 같다면’은 싱글의 눈으로 본 세상 이야기입니다. 김민서씨는 등을 펴낸 20대 소설가입니다.
도시는 밤에도 잠들지 않습니다. 깊은 밤, 무엇을 하시나요? 격주로 연재될 새 칼럼 ‘밤이면 밤마다’는 야행성 도시인의 벗을 자처합니다. TV 시트콤 의 작가이자 등의 소설집을 펴낸 정수현씨의 글로 시작합니다.
전통의 칼럼 ‘노 땡큐!’의 새 필자로는 ‘거리의 시인’ 송경동씨(873호 기획 ‘만국의 희망이여 단결하라’ 참조)와 소설가 공선옥씨가 나섭니다. 공 소설가와 송 시인은 때론 숨가쁜 스타카토로, 때론 부드럽고 따스한 숨결로 우리네 사는 모습을 비춰줄 것입니다. ‘맛있는 뉴스’도 포맷을 조금 바꿨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좋은 글로 독자들의 벗이 되어주신 김영민 한신대 교수,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박상준씨 등께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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