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맨손잡이 축제’라는 게 있었던 모양이다. 설악산 대명리조트(8월19일), 속초 장사항(7월30일~8월7일), 울릉도(8월 초순), 구룡포(8월6~7일) 등지에서 마치 짝패들이 상호 모방이라도 하듯 ‘레저활동’이라는 이름 아래 쫙 퍼진 모양이다. 수영장에, 혹은 펜스를 쳐서 차폐한 해변에 부러 오징어를 잡아넣은 다음 호객의 미끼로 삼는 것인데, 소문이나 번듯한 일간지 기사를 보고 찾아온 전국의 레저·관광객들이 붐벼 제법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게임’ 요령은, 입장료를 낸 사람들이 물속을 헤집고 다니며 겁에 질려 내몰린 오징어들을 깜냥껏 잡아내는 것이다. 잡은 오징어는 현장에서 회를 쳐서 (처)먹고, 득의만만한 웃음 속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하는 것이다. 더러는 다른 어종을 혼입(混入)해서 (결국은 잡아 ‘죽이는’) 그 재미를 더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죽임의 게임’인 셈이다.
냉소, 소비자적 태도‘게임’이 자본에 먹혀 산업으로 둔갑한 지 오래됐다. 놀이와 달리 게임에는 욕망의 과정을 차단하는 절제와 여유의 미학이 없고, (레저)산업에 편입된 게임은 세속적 욕망을 쉼없이 복제·재생산하는 기계적 과정을 통해 자신의 허족(虛足)을 끝없이 부풀린다. 발화자와 청자를 동시에 살리고 그 관계의 분위기를 고양하는 게 유머라면, 자신을 예외적으로 특권화한 채 나머지 전부를 일방적인 시선·폭력 아래 폄시하는 게 냉소인데, 이를테면 놀이가 일종의 유머라고 할 때 이 시대의 게임은 한결같이 (열정적) 냉소의 형식을 취한다.
냉소는 죽임의 근원적 형식이다. 냉소가 유머와 달리 자신만을 예외로 삼는 (‘개입’이 아니라) 엿보기의 양식인 것처럼, 어떤 개입의 틀 속에서 어울리며 서로의 의욕을 활성화하는 놀이와 달리 근년의 게임이란 모짝 엿보기의 일종이다. 엿보기는 그 자본제적 변용인 소비자적 구경과 함께 이른바 ‘동정적 혜안’(Empathy)을 잃어버린 태도를 말한다. 대량학살범이나 연쇄살인범의 공통적인 태도는 단연 ‘감정이입 부재’라고 알려졌지만, 이것이 모든 걸 상품화·물화(物化)하는 소비자적 태도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은 흔히 놓친다.
이미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세속이지만, 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사지 말아야 할 것을 상품의 바깥에 모시고 키우는 배려야말로 종교나 인문학적 감성이 간수해온 지혜의 알짬이다. (물론, 종교와 인문학이 상품화에 견결한 저항의 마지노선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천하가 다 안다.)
좋아하니 죽인다아무튼 사는(買) 것은 결국 죽이는 것이지만, 자본제적 상품권(圈) 속에서는 ‘산다/죽인다’는 것을 ‘좋아한다’라는 말로 연성화해서 고쳐 말하곤 한다. 그래서 닭이나 주꾸미를 좋아한다는 것은 닭이나 주꾸미를 튀겨서 죽인다는 뜻이며, 강산(江山)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곳을 훼손하겠다는 뜻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위해(危害)를 가할 가능성이 가장 많은 이는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루도 남을 죽이지 않곤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고등어와 돼지를 죽이고, 오리와 도롱뇽을 죽이고, 더덕과 양파를 죽인다. 남을 죽여야 우리가 산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죽임의 방식에서나마 인간다움의 노력과 예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생명에의 외경’(슈바이처)이야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라고 여겨도, 생명을 놓고 게임을 벌이는 짓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 ‘사람’들아!
김영민 한신대 교수·철학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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