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요시 콜터이가 감독한 (2005)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의 나치 강제수용소를 무대로 삼은 실화극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소재주의로 기우는 대목을 돔바르게 부추겨 세워, 그 지옥도 속에서도 가능한 인간성의 틈과 여백을 살핀다는 데 있다. 살아남은 소년은,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수용소에서 가장 좋아했던 시간”과 “나를 죽음에서 구해준 사람들”을 떠올리며 “거기에도 행복은 있었다”고 속삭인다.
병역거부, 위험한 희망‘행복’조차 숨어 있던 아우슈비츠였으니 필시 희망도 번득이고 있었을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도 희망의 싹을 볼 수 있었다면, 삼청교육대에서부터 이명박씨의 웃음에 이르기까지, 4·3 사건에서부터 강남 좌파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곳에서든 희망의 틈은 생겼을 것이다. 좀더 넉넉하고 세세하게 준별하며 역지사지의 동정적 혜안을 가다듬는다면 행복의 너울은 곳곳에서 야울거릴 것이고, 희망의 씨앗도 처처에서 맥동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감옥 속의 콘크리트 벽에 붙어 솟음하는 풀 한 포기를 만지고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에 잡힌 희망이 곧 우리의 것이라면!
나는 33개월의 만기 군복무를 마치고 하사로 제대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경험을 내면화한 채 “군대에서도 공부할 수 있고 배울 게 많으니 너 하기 나름이야!”라며, “군복을 입어도 행복은 있어!”라며 입대하는 후학과 학생들에게 조언이랍시고 내뱉곤 했다. 그런데, 근자, 내 학생 중 몇몇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결심하며 감옥살이를 자초하려는 고민을 전해오면서 나는 ‘희망’도 세속적 욕망의 작은 차이들을 넘어 자란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다. 군대라는 제도와 체계를 인정한 채 그 속에서 안전한 행복을 노리는 희망인가, 아니면 군대라는 기존 사실 자체를 넘어서서 그 외부성을 현재화하려는 노력 속의 위험한 희망인가, 하는 문제 말이다.
당연히, 아우슈비츠나 삼청교육대 속에서도 행복은, 그래서 희망은 있었을 것이다. 군대 속에서도 고장난 혼인관계 속에서도 희망은 약동하고, 지구의 종말을 목도한다고 해도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을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게다. 이광수처럼 일제하의 행복을 강변할 수도 있고, 인혁당의 그늘 아래 조국 근대화의 행복을 노래할 수도 있으며, 생태와 환경을 모른 체하며 강변(江邊) 소비자들의 미래적 희망을 기원할 수도 있겠다. ‘희망’촛불을 켜고 불통의 정권을 나무라며 먹을 만한 쇠고기를 먹는 세상을 바라는 것도 희망일 수 있고, 부당한 비정규직을 없애고 노동과 돈이 고르게 교환되는 세상을 위해 ‘희망’버스를 타는 것도 이 시대의 희망일 수 있을 게다.
희망은 늘 근본적일 수밖에
그러나 나로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을 감히 ‘희망’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그렇게 부른 적도 없다. 세속적 체계 속의 갖은 어긋남과 그 상처들이 근본적인 종류의 것이라면,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의욕의 삶, 그 희망의 지평 역시 근본적인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우슈비츠 속의 행복도 아우슈비츠의 것이며, 감옥 속의 법열(法悅)도 감옥의 것이고, 군대 속의 배움도 군대라는 체계가 규정한다. 안심(安心) 쇠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자유도 자본제의 것이며, 사납금을 없애고 완전월급제의 권리를 얻는 것도 필경 영락없는 자본제적 세속의 단면일 뿐이다. 진보는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희망은 늘 근본적이어야 한다. 일상의 근본을 곤두쳐서 얻는 급진성에야 외부성은 찾아오고, ‘희망’이란 바로 그 외부성이 번득이는 지평이기 때문이다.
김영민 철학자·한신대 교수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계엄의 밤, 사라진 이장우 대전시장의 11시간…“집사람과 밤새워”
[단독] 노상원 ‘사조직’이 정보사 장악…부대 책임자 출입도 막아
“강철 같은 빛”…BBC, 계엄군 총 맞선 안귀령 ‘2024 인상적 이미지’ 꼽아
‘28시간 경찰 차벽’ 뚫은 트랙터 시위, 시민 1만명 마중 나왔다
탄핵 경고받은 한덕수 “내란·김건희 특검, 24일까지 결정 어렵다”
공조본, 윤석열 개인폰 통화내역 확보…‘내란의 밤’ 선명해지나
28시간 만에 시민들이 뚫었다...트랙터 시위대, 한남동 관저로 [영상]
롯데리아 내란 모의…세계가 알게 됐다
조진웅 “내란수괴가 판칠 뻔… 진정한 영웅은 국민들”
“역시 석열이 형은 법보다 밥이야”…모두가 행복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