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루는 곱게 체에 내리고 버터는 크림처럼 부드럽게 녹인다. 설탕과 신선한 계란을 넣고 반죽을 이리저리 뒤섞는다. 모양을 잡아줄 틀에 부어 예열된 오븐에 넣는다. 온화하고 달콤한 향이 살랑살랑 코끝을 간질인다. 열기를 내며 부지런히 돌아가는 오븐을 뒤로하고 구워진 케이크 위에 올릴 프로스팅을 만든다. 천연 재료로 갖가지 색을 낸 크림들이 케이크 위에 올라간다. 완성된 컵케이크를 맛에 따라, 색에 따라 쇼케이스에 정성스레 정렬한다. 이샘(30)씨는 오늘은 무슨 이야기들로 자신의 작은 컵케이크 가게가 채워질까 궁금하다. 힘들고 지친 이들이 찾아오더라도 케이크처럼 달콤한 힘을 얻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망하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자”
서울 이태원, 서래마을, 신촌에서 ‘이샘 컵케이크’를 운영하는 이씨는 비교적 실패 없는 삶을 살았다. 남들이 좋다 하는 학교를 졸업했고, 광고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회사에 다녔다. 20대에 국내 1호 컵케이크 가게를 열어 3년 만에 3호점을 내는 등 사업 수완을 보였으며, 30대가 되기 전에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을 고스란히 현실로 옮겨 스물아홉이 되던 해 이라는 책을 썼다.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되는 듯한 삶을 사는 이씨를 만인보의 인터뷰이로 초청하기에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일매일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가지만 또 한편으로는 작은 성공들을 얻으며 살고 있지 않은가. 이씨도 그러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7월27일 오후 6시, 서울에는 하늘이 찢어진 듯 비가 내렸다. 이샘 컵케이크 이태원점에서 이씨를 만났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치 다른 세상 같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바깥이 괴수 영화의 한 장면이라면, 가게 안은 뭉툭한 사랑을 담은 소박한 로맨틱 코미디의 세트장 같았다. 낮은 천장 아래로 음악이 조근조근 속삭였다.
이 달콤한 공간의 주인인 이씨는 사실 3년 전까지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광고회사에서 스포츠 관련 기획자로 일했던 그는 좋아하는 일을 택했지만 회사 생활이 몸에 꼭 맞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서는 배우는 점도 많았고 재미있기도 했어요. 그러나 힘든 부분도 있었는데, 이윤 창출을 최우선의 목표로 하는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잘 표현하는 일을 하고 싶은데, 회사라는 거대 조직에 익명으로 있다 보니 내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이씨는 2년6개월여 만에 회사가 주는 안정 대신 사춘기 시절과 같은 불안과 가능성의 시간을 택했다. 하지만 막상 나와보니, 혼자 놓인 세상은 생각 이상으로 막막했다. 이왕 하고 싶은 일을 찾겠다고 회사를 그만뒀으니 당장에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부터 궁리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떠올린 것이 컵케이크 가게다. “고등학교를 영국에서 보내며 처음 맛본 컵케이크에 대해 즐겁고 좋은 기억이 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취미처럼 컴퓨터에 따로 폴더를 만들어 예쁜 컵케이크 사진, 레시피 등을 모아놓곤 했어요. 컵케이크 가게는 말하자면 건너가는 과정 정도라 생각하고 시작했어요. 장사가 안 되더라도 6개월 정도까지는 운영할 수 있게 돈을 모았어요. 망하면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도 했어요.(웃음)”
그렇게, 이태원의 번화한 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골목 입구에 ‘Life is just a cup of cake’라는 이름으로 (현재는 이샘 컵케이크) 문을 열었다. 작은 공간, 국내에는 아직 익숙하지 않은 컵케이크라는 메뉴, 전문적으로 베이킹을 배워본 적이 없는 주인. 세 가지 약점의 조합으로 ‘망하면 어쩌나’라고까지 생각했던 가게는 예상외로 호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머핀같이 생긴 게 왜 이렇게 비싸냐는 반응도 있었지만, 색소 등 인공 재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고 유기농 재료와 지역 재료를 사용하는 등 정성을 보이자 사람들이 건강한 에너지를 받아들이는 듯했다. 예컨대 빨간색이 매혹적인 레드벨벳 컵케이크는 색소가 많이 들어가기로 유명하다. 이씨는 색소를 쓰지 않고 레드벨벳을 구워낼 수 없을까 고민을 거듭하다 홍국쌀을 갈아 붉은색을 내면서도 건강함을 담았다. 이씨의 컵케이크는 여느 컵케이크처럼 튀는 분홍, 형광빛이 도는 푸른빛, 식용색소로 낸 강렬하고 화려한 색의 장식을 포기했다. 대신에 재료 본연에서 얻은 빛깔로 색을 내고 과일이나 견과류 등 천연 재료로 소박한 장식을 한다.
한 아이라도 더 엄마와 헤어지지 않길
회사 생활이 잘 맞지 않아 직장을 관뒀다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기획자였다. 대신에 조직이 시키는 대로가 아닌, 자신의 마음에 귀기울여 새 일을 도모한다. 미혼모 자립 프로그램인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도 진심에서 비롯한 프로젝트였다. 계기는 두 가지다. 하나는 한 꼬마 소녀에서 비롯한 것이고, 또 하나는 한 통의 편지다. 먼저 2009년의 일이다. 어머니가 손님이 오시니 함께 저녁을 먹자고 했다. 경기도 안양의 한 보육시설에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는 어머니는 종종 친해진 아이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아이들은 집에서 놀다가 자고 가기도 하고 식사를 함께 나누기도 했다. 이씨는 그날 그 아이도 여느 꼬마 손님이겠거니 했다. 인사를 하려고 아이와 마주한 이씨는 깜짝 놀랐다. 아이의 얼굴이 본인의 어린 시절과 쏙 빼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아이가 보육시설에 맡겨질 때부터 아무런 기록이 없는 것을 보니 아마도 미혼모 자녀인 것 같다고 말했다. 동생인 양 이씨의 얼굴이 서린 그 아이가 자꾸만 눈에 밟힌 가족들은 아이를 입양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조심스레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나 절차상의 문제로 입양은 성사되지 못했고, 아이는 지금도 종종 왕래를 하며 지내고 있다. 이씨는 그 아이의 얼굴을 보며 미혼모 가정 문제를 밀착해서 느꼈다. 미혼모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그 아이가 홀로 보육원에 맡겨진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짐하길, 언젠가 자신이 그런 인식을 조금이라도 바로잡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난해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3살짜리 딸을 혼자 키우고 있다는 26살의 ‘미스맘’이었다. 컵케이크 만드는 기술을 익혀 살림을 꾸리는 데도 도움을 얻고 아이에게 정서적으로 따뜻한 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길로 연락해 3개월간 자신의 컵케이크 기술을 아이 엄마에게 전했다.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왜 이렇게 버려지는 아이가 많을까, 미혼모가 아이를 키우는 환경은 왜 이렇게 고단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힘을 주고 싶었고, 한 아이라도 더 엄마와 함께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자니 창구가 필요했어요.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서울시 한부모가족지원센터에 연락을 했죠. 그렇게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 수업이 시작됐어요. 지난해에 1기를 진행했고, 올해는 6명의 미혼모와 함께 2기 수업을 했어요. 세상의 불편한 시선을 감수하고 자립해서 아이를 키우겠다고 마음먹으려면 큰 용기가 필요해요. 그래서 수업에 참여한 엄마들은 의지도 많이 보이고 적극적이죠. 그러다 보니 저도 열심히 하게 되고….”
자신감·행복·즐거움을 나누는 수업
모든 수업은 무료로 진행된다. 다음해에는 올해 수업을 함께한 2기 엄마들과 함께 3기를 모집할 계획이다. 1~2기 때는 급여를 제공하고 강사를 초청하거나 재능 기부를 받아 수업을 진행했는데, 3~4기에서는 이전에 수업받았던 엄마들이 자립해 스스로 선생님이 되었으면 한단다. 이씨는 그렇게, 엄마들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료의 상처를 보듬어가며, 여럿에 의해 나눔의 선순환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먹고살 방도를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수업을 통해 더 많은 걸 얻을 수 있었어요. 베이킹이라는 게 따뜻하고, 바로바로 결과물이 나오고, 만들어서 나눌 수 있는 거잖아요. 뭔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 먹으면서 느끼는 행복, 나눔의 즐거움을 엄마들과 공유했어요.”
그는 양육을 선택해 편견에 맞서 살아가겠다고 다짐한 엄마들을 응원한다. 이씨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편견이 담긴 시선이 아니라 ‘당신 잘할 수 있다. 아이와 잘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격려라고 말한다. 그는 미혼모라는 이유로 TV에 나와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며 목소리를 높인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이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고, 미혼모라는 딱지 대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떳떳하게 밝힐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관심을 기울인다. 최근에는 청소년직업체험센터인 하자센터와 손잡고 청년 관련 사업을 진행하기로 협의했다. “18~24살 청년 중에 방황했던 친구들, 대안의 삶을 선택한 친구들, 대학에 가지 않은 친구들은 사회에 나오면 자리를 잡기가 어려워요. 계속 일용직을 전전하게 되는데, 이런 걸 막아보고 싶었어요. 이 친구들과 베이커리를 창업하는 프로젝트예요. 이샘 컵케이크가 될지, 그들만의 브랜드를 만들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모집은 다 끝났고 8월에 과정에 들어갈 예정이에요. 10월 오픈이 목표고요.”
다음 목표가 무엇인지 질문하자 단기적으로는 미스맘 컵케이크 스쿨 2기 엄마들과 함께 앞으로 먹고살 공간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를 일이죠. 멈추지 않고 계속 열심히 재미있게 사는데, 이런 것들이 나중에 어떤 결실을 맺을까, 이게 한 달 두 달 지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이런 기대는 있어요. 선한 가운데 선한 일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웃음)”
나눔을 확장하고 싶다는 바람
이샘 컵케이크의 모토는 ‘지속 가능한 달콤함’이다. 그는 달콤함을 확장하려고 3호점을 열었고, 지금 4호점을 이끌 가족을 찾고 있다. 체인화하다 보면 처음 가졌던 마음가짐이 흔들리지 않겠느냐는 물음에 오히려 되묻는다. “가게는 변함없는 원칙을 지키면서 관리가 가능한 정도까지만 넓혀나갈 거예요.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만든 케이크를 더 많은 사람들이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첫째고, 둘째는 사람들이 제 말에 귀기울일 수 있는 정도가 되면 좋겠어요. 그럼 지금 하는 여러 프로젝트에 좀더 힘을 실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자신이 마련한 공간에서 누군가와 매일매일 조금 더 소통하고 나눔과 희망이 확장되길 꿈꾼다. 그런 바람을 담아 자신의 책에 의 한 부분을 인용했다. “정말로 행복한 나날이란 멋지고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날이 아니라 진주알들이 하나하나 줄로 꿰어지듯이, 소박하고 자잘한 기쁨들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들인 것 같아.” 알알이 꿰어진 그의 소박한 희망들이 앞으로 우리에게 얼마나 멋지고 놀라운 일이 되어 나타날지, 기대해본다.
글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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