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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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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쓸모 언론

등록 2011-07-20 15:51 수정 2020-05-03 04:26

언론과 제국(帝國)은 상극이다. 제국은 힘의 집중과 위계적 질서의 결합을 핵심 조직 원리로 삼는다. ‘수직의 세계’다. 민주주의와 불화한다. 반면에 언론은 소통과 공개를 생명으로 한다. ‘사실’을 세상에 알려 비밀의 장막을 걷어낸다. 힘세고 돈 많은 자의 잘못을 견제·비판하는 감시견이자, 약하고 가난한 이의 ‘낮은 목소리’를 전하는 증폭기다. ‘수평의 세계’를 지향한다. 민주주의의 마중물이자 고갱이다. 본질상 제국은 강자의 것이고, 언론은 약자의 편에 가깝다. “언론이 없는 정부와 정부가 없는 언론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면 정부가 없는 언론을 선택하겠다”던 토머스 제퍼슨의 일갈이 아니더라도, 언론이 없는 세상은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공상과학(SF) 영화에 그려진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제국은 일쑤로 등장하는데, 언론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건 우연이 아니다. 디스토피아적 제국의 논리적 귀결이다. 생각해보라. 등 셀 수 없이 많은 디스토피아적 SF 영화의 주인공 가운데 기자가 있었던가를. 여기까지가 언론과 제국의 교과서적 관계다.
현실은 너저분하다. 현실의 세계에서 언론은 제국과 무시로 ‘통정’한다(제국을 권력 또는 자본으로 바꿔도 무방하다). 그런데 일방적이다. 제국의 언론 장악일 뿐, 언론의 제국 견제·정화는 드물다. 때로 언론은 스스로 제국이 되려 한다. 저기, ‘머독 제국’을 보라. 루퍼트 머독이 장악한 언론매체들이 영국 왕실과 총리, 미국 9·11 희생자 가족들의 신상정보를 해킹하고 전화를 도청한 혐의로 영미 사회가 시끄럽다. 머독 제국의 영향력은 통제 불능에 가까울 정도로 막강하다. 머독 제국은 전세계적으로 신문·방송·영화·출판 등 다방면에 걸쳐 있으며, 한 해 매출이 34조9천억원에 이른다. 이미 등 영국 신문시장의 40%를 장악하고 있고,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와 도 그에 속한다. 머독은 스포츠·섹스·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해 자신의 제국을 건설해왔다. 그에게 언론은 소통과 공개가 아닌 조작과 통제의 수단에 가깝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머독은 아들 부시 미국 대통령 시절 기자들에게 매일 아침 “부시 대통령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지 말 것” “경제 이야기만 하고 이라크전쟁 이야기는 하지 말 것” 따위의 ‘보도지침’을 내렸다고 전 기자들이 증언했다.
지금 자유언론의 가장 무서운 적은, 외부의 권력이 아니다. 언론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내부자’다.
여기, 대한민국 최대 언론사이자 ‘국민의 방송’을 자임하는 한국방송이 있다. 방송 수신료 문제를 논의한 민주당의 비공개 회의를 도청해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게 녹취록을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물론 한국방송 쪽은 ‘(민주당 내) 제3자의 도움’을 거론하며 공을 넘겼고, 도청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정치부 장아무개 기자가 ‘휴대전화와 노트북을 잃어버렸다’며 경찰의 제출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자칫하다간 불법도청에 증거은폐 혐의까지 추가될 판인데, 법과 정의의 여신 ‘디케’가 누구 손을 들어줄지 지켜볼 일이다.
기자란 어떤 존재인가? 언론을 구성하는 핵심 주체의 하나다. 기자의 생산품인 기사는 먹을거리도, 냉장고나 TV처럼 요긴한 일상용품도 아니다. 쓸모가 없다. 그러나 중요하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람의 정신과 영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자는 기사를 쓸 때 오직 ‘진실을 구성하리라 판단되는 가장 중요한 사실들의 연관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 고독한 여정의 동반자는 양심과 균형 잡힌 세계인식뿐이다. 자기도 믿지 않는 걸 기사라고 써젖히며 독자한테 믿으라고 하는 이들은 기자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일 뿐이다. 하여 기자는 무엇보다 훌륭한 시민이어야 한다. 훌륭한 시민이 모두 기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훌륭한 시민이 아니고도 좋은 기자가 되는 길은 없다. 그래서 머독 제국과 한국방송의 도청 의혹 사건을 목도하며 자문한다. 나는 훌륭한 시민인가?
한겨레21 편집장 이제훈 noma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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