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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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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절한 고난 고결한 생애

선천성 장애 안고 거리에서 자란 구둣방 주인 최수범씨…모두를 원망할 수 있는 삶이었지만 언제나 감사한 인생
등록 2011-07-08 16:55 수정 2020-05-03 04:26
» 지난 6월29일 전북 전주 경원동 ‘장미구두방’ 앞에서 주인 최수범씨가 손님들이 맡겨놓은 구두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 지난 6월29일 전북 전주 경원동 ‘장미구두방’ 앞에서 주인 최수범씨가 손님들이 맡겨놓은 구두를 들고 밝게 웃고 있다. 한겨레21 이종찬

후드득 빗방울이 등을 적셨다. 한 평 반 남짓한 작은 가게 문을 열고 섰을 때다.

“이른 장마가 온다더니….” 최수범(55)씨는 상대적으로 더욱 아늑하게 느껴지는 가게 안에서 쏟아지는 빗줄기를 바라본다. “아침 장사는 글렀구나.” 그래도 찌푸린 얼굴은 아니다. 언제나처럼 즐거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하루 일을 준비할 뿐이다.

선천성 장애 안고 대여섯살부터 거리 나서

전북 전주 경원동 한 귀퉁이에 자리한 자그마한 장미구둣방. 수범씨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도 벌써 30여 년이 되었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 수범씨는 자신의 손으로 매만진 숱한 구두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떠올려본다. 혼자 머물고 혼자 해야 하는 이 일이, 결코 고독하지 않았던 것은 그들 덕분이다. 수범씨는 양철지붕을 때리는 빗소리에 어우러진 오랜 기억들을 더듬는다. 컹컹, 가게에서 키우는 고물고물한 강아지 한 마리가 수범씨의 불편한 한쪽 손을 사랑스럽게 핥았다.

1955년, 태어난 곳은 전북 남원이었다. 전쟁이 지나간 두메산골은 ‘찢어지게 가난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지경으로 처절한 살림이었다. 막내로 태어난(그렇게 추측하는) 수범씨는 오른손 가운뎃손가락이 결손되고 중앙부가 깊이 갈라진 선천성 파열수(破裂手)의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부모는 그를 돌보지 않았다.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던 외로운 고모가 수범씨를 거두었다. 그 뒤 고모는 수범씨의 부모와 발길을 끊었고, 그는 한 번도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그에게는 호적부를 확인하는 비교적 간단한 절차조차 어려웠을 뿐 아니라 지난한 생활고 속에서 출생에 대한 궁금함과 원망은 오히려 사치였다. 그는 살림이 어려운 고모를 도와 대여섯 살 때부터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다. ‘모든’ 일을 해도, 그저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단순한 생활이었다.

열여덟 살, 가난을 견디다 못한 고모가 서울행을 택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느니 사람 많고 먹을 것 많은 서울로 가자 했다. 수범씨는 그녀를 따랐다. 처음으로 시작한 껌팔이는 여느 첫 장사꾼들이 그렇듯 영 신통치 않았다. 발품을 팔던 고모는 작은 식당에 일자리와 잠잘 곳을 구했다. 함께 있을 수 없게 된 수범씨는 본격적으로 광화문으로 나섰다. 신문도 팔고 구두도 닦았다. 잠은 아무 곳에서나 잤다. 신문도 좋고 판자도 좋았다. 등만 누이고 덮을 수 있다면 그곳이 수범씨의 집이었다.

그렇게 서울에서의 여름과 가을이 지났다. 파도처럼 몰려드는 추위가 그를 밤새 뒤척이게 하는 겨울이 온 것이다. 더는 길에서 잘 수 없게 된 그는 어느 호텔의 지하로 숨어들었다. 보일러가 가득한 기계실이었다. 기름내·곰팡내가 지독했지만, 눈발이 들지 않고 바람이 들지 못하는 그곳이 그에게는 천국이었다.

더욱 기쁜 일은 그를 내쫓으려던 보일러 관리자에게 호소해, 쫓겨나기는커녕 어깨너머로나마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며 신문을 팔고 구두를 닦은 뒤, 안식처인 보일러실로 돌아와 배운 기술을 연습했다. 손가락은 보기에는 불편했으나 움직임이 제법 자유로웠고, 난생처음 배움을 접한 그의 열정은 어느 때보다 빛났다. 그리고 그의 유일하면서도 자랑스러운 장점인 ‘성실함’은 그에게 또 하나의 기회를 만들어준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새벽녘 가장 먼저 일어나 보일러실을 치우고 호텔 주변을 쓸고 쓰레기를 비웠다. 다만 그곳에 머물게 해준 것만으로도, 수범씨에게는 기쁨에 넘친 일이 될 수 있었다. 호텔 지배인은 그를 눈여겨본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그에게 감명해, 급기야 그를 호텔의 비정규직으로 취업시킨 것이다.

» 최수범씨한테 구두 닦는 일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삶의 여정에서 ‘쓰러질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준 가장 고맙고 귀한 일이다. 꿈꾸던 생활, 곧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감사하는 생활을 이루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이종찬

» 최수범씨한테 구두 닦는 일은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삶의 여정에서 ‘쓰러질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준 가장 고맙고 귀한 일이다. 꿈꾸던 생활, 곧 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감사하는 생활을 이루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한겨레21 이종찬

어렵게 얻은 첫 직장서 당한 산재

홀로 지내던 고모는 재혼을 해 남편을 따라 전주로 내려가고, 수범씨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다. 깨끗한 제복을 입고 호텔의 주차장과 보일러 같은 설비를 관리하는 자신의 모습은, 언제 봐도 낯설었다. 그리고 자랑스러웠다. 그때, 언제나 그늘을 이고 있던 수범씨의 하늘은 어느 때보다 밝았다. 수범씨는 드디어 거리의 빈곤에서 벗어나 안온한 가정과 생활을 꾸려가는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온 인생의 첫 번째 기회였다고 수범씨는 생각한다.

“세탁실에 들어가지만 않았더라면….”

그칠 줄 모르는 장맛비는 아침 해를 삼키고 어둑한 조명을 늘어뜨리고 있다. 수범씨는 구두약 냄새가 밴 거친 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한다. 그리고 말을 잇는다.

그저 평범한 날이었다. 수범씨는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하다 누군가의 부름을 받고 세탁실로 향한다. 세탁기가 이상하다는 것이다. 일반 가정에서 쓰는 세탁기보다 몇 배 큰 대형 세탁기였다. 그가 무심히 손을 집어넣는 순간, 멈춰 있던 날개가 돌기 시작했다. 팔을 빼낼 수 없는 강력한 속도였다. 팔은 굽혀지지 말아야 할 방향으로 꺾여서 돌아버렸다.

병원에 실려간 그는 다시 팔을 쓸 수 있게 해달라고 의사에게 매달렸다. 어려운 수술이었다. 수술이 끝난 뒤에도 몇 개월간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얼마 뒤 지배인이 찾아와 미안한 눈빛을 했다. 산재도 안 되고, 퇴직 위로금은 얼마 되지 않았다. 수범씨는 첫 번째 찾아온 자신의 기회가 날아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난히 병원에서의 밤들이 길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한 세계의 문이 닫히면 다른 세계의 한 문이 열린다고 했던가.

그를 절망하지 않게 한 것은, 바로 생애 처음 만난 사랑이었다. 같은 병실에 있던 훗날의 처남은 수범씨의 선함과 순수함을 좋아했다. 그가 자신의 여동생을 소개한다. 강원도에 살던 여동생은 그와 어울리는 맑은 눈을 하고 있었고, 단정하게 묶은 머릿결이 고왔다. 무엇보다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아는 선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녀를 책임질 경제적 능력도, 단 한 칸의 방도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강원도로 그녀를 돌려보낸 뒤, 수범씨는 퇴원을 했고 다시 호텔의 보일러실로 돌아갔다.

그녀가 왔다 간 자리는,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사막처럼 메말랐다. 완치가 됐다고 해도 냉기가 스밀 때는 저려오는 한 팔이 더욱 서러워졌다.

용기는 그녀가 냈다. 보따리 하나만 챙겨 그에게 온 것이다. 입으로는 혼을 내면서도 마음은 한없이 들떴다. 둘은 그렇게 호텔의 작은 보일러실에서 살림을 차린다.

그것이 바로 인생의 두 번째 기회였다. 호텔에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었으나 그보다 더 귀한 아내를 얻은 것이다.

» '장미 구두방' 주인 최수범씨. 한겨레21 이종찬

» '장미 구두방' 주인 최수범씨. 한겨레21 이종찬

삶을 일으켜준 고마운 일

그런 아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일을 쉬어본 적이 없다. 수범씨의 얼굴이 빗줄기만큼이나 어두워진다. 오전 내 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강아지는 잠이 들었고, 수범씨는 머리를 잡동사니가 그득한 벽장에 기댄다. 이런 날은 손에 몇 장의 지폐도 가져가지 못할 것을 알지만, 자리를 뜰 수는 없다. 그것이 자신의 하루이고 생활이므로. 비는 더욱 거세져 천장을 뚫을 것 같다. 수범씨는 아내와 함께하던 보일러실에 떨어지던 몇 방울의 물을 떠올린다. 그 물방울을 닮아 있던 눈물의 기억도 함께.

어느 날 사장의 조카가 찾아왔다. 보일러실을 비워달라고 했다. 사람이 지내는 곳이 아닌데 너무 오래 방치했다며 막무가내로 나가란다. 수범씨는 참말로 그에게 간청했다. 겨울만, 겨울만 지나게 해달라고.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나간 뒤, 그와 아내는 말없이 울었다.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이 나온 세상이었다. 부모도 없었고, 그 부모의 그늘도 없었다. 이제 와서 뭘 더 원망하겠느냐고 아내를 달랬다. 둘은 도저히 성인 2명이 누울 수 없는 비좁은 판잣집에서 바람에 날아갈 듯한 추위를 견디고 겨울을 났다. 그러는 사이 아이가 태어났다.

아이까지 가난을 대물림하고 고통을 나누어 져야 할지 모른다는 극심한 고통에 시달릴 때, 전주로 내려간 고모와 연락이 닿았다. 고모는 수범씨에게 전주로 올 것을 권했다. 수범씨는 서울 생활을 미련 없이 청산하고 전주로 갔다. 88 서울올림픽이 열리기 몇 해 전이었다. 일거리를 찾던 그는, 한 다방 앞에서 구두를 닦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오래전부터 유행하던 구두닦이가 전주에서는 아직 성행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는 성실함과 지독한 끈기로 자리를 지켰고, 손님들의 요구에 맞는 서비스를 했으며, 미소를 잃지 않았다. 점차 그의 구두닦이는 입소문을 탔고, 손님이 늘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의 인생의 세 번째 기회였다.

그렇게 수만 켤레의 구두를 닦고 고치는 동안, 30여 년이 훌쩍 지났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도 모두 성장해 직장을 다니고, 작은 집도 하나 마련했다. 아직까지 아내도 일을 해야 하는 형편이니 살림살이가 크게 나아진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감사하다. 작으나마 눈비를 피할 수 있는 구둣방이 있고,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며, 그런 자신을 찾아주는 고객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그의 수입은 많이 줄었다. 생활비를 충당한다기보다 용돈을 마련해가는 정도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손에 쥔 구두 닦는 융단 천을 내려놓을 마음이 전혀 없다. 그것은, 이것이 대단한 꿈이나 비전이 있는 직업이기 때문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삶의 여정에서 ‘쓰러질 때마다’ 자신을 일으켜준 가장 고맙고 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이 언젠가 꿈꾸던 생활(아내를 만나고 아이를 낳고 기르며 감사하는)을 이루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소중한 고난, 고귀한 이름

그는 어쩌면 버림받은 아이, 껌팔이, 신문팔이, 구두닦이다. 그러나 그가 택한 것은 한 남자요 어른이요 남편이요 아버지라는 고귀한 이름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유산과도 같은 가난이나 선천적 장애를 멍에로 여기지 않고, 소중한 고난이요 인생이라는 험준한 과정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그는 우주의 다른 이름인 사람으로서 세상을 헤쳐왔다.

딸랑, 드디어 첫 손님이 든다. 우산을 접으며 들어선 중년의 신사는 구두를 내밀었다.

“비도 오는데, 밑창이 벌어져버렸지 뭐예요.”

수범씨가 그를 반갑게 맞으며 수선용 도구를 꺼내들었다. 잠들었던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어댔다. 그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진다.

전주=글 김소윤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이종찬 선임기자 r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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