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루가 밝았다. 김명숙(55)씨는 눈을 뜨자마자 침대 뒤로 엿보이는 하늘부터 바라본다. ‘아침이다….’
서른셋… 꽃처럼 아름다운 나이, 그녀는 사람들과 어울려 야유회에 가다가 덤프트럭과 부딪치는 사고를 당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 많은 이들 가운데 다친 것은 그녀뿐이었다. 모든 것을 그저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지독한 우연? 어느 쪽도 믿지 않는다. 다만 그 사고로 자신의 7번 목뼈를 되살릴 수 없게 되었다는 ‘명백한 사실’만을 알 뿐이다.
사고, 이혼, 아들의 죽음…
어느 누가 자신에게 주어진 가혹한 굴레를 쉽게 인정할 수 있을까. 명숙씨는 전국의 병원을 돌아다니는 동안, 그리고 마침내 ‘포기’라는 단어를 받아들이는 동안 스스로 삶을 포기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러나 눈을 떠보면 그곳은 천국이 아니라 언제나 하얀 병실이었다. ‘내겐 이것도 쉽지 않구나.’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생각했다.
그렇게 5년여 동안 ‘다치지 않았던 삶을 완전히 포기’하기 위해, 혹은 ‘주어진 삶을 포기’하기 위해 지옥 같은 고통의 날들을 보냈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이 간과한 사실을 깨달았다. 그토록 맑은 눈을 하고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삶을 인정했고, 동시에 ‘다치지 않았던 삶’을 포기했다.
그것으로 한 고비를 넘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삶의 매서운 바람은 그녀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어찌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미움과 원망과 불신도 이성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남편과 헤어졌다. 위자료나 양육비도 없었다. 상처와 미움은 무좀처럼 자라났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살게 했다. 사고를 낸 게 무보험 차량이라 보험금도 받지 못하고 나라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지만 억척스럽게 아이들을 키웠다. 아니, 아이들이 엄마를 돌본 것인지 모른다. 그렇게 셋은 서로 의지하고 사랑하며 세월을 견뎠다.
더 나빠질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손가락과 팔 일부를 빼고는 목 아래 전신의 모든 감각과 움직임을 상실했고, 남편을 잃었으며, 7년여를 매일같이 다니던 번듯한 직장도 잃었다. 돈도 건강도 일상도 잃은 그녀에게 남은 것은 보석 같은 두 아이뿐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대학에 다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일찌감치 군대에 간 아들이었다. 잘생긴 그의 얼굴을 보면 누워만 있어야 하는 처지도 잊을 수 있었고, 그 부드러운 미소를 보면 세월이 가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아물어지는 기분이었다. 그 아들이 세상을 떠난 것이다.
명숙씨는 무서운 우울증에 빠져들었다. 더 이상 절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의 절망은 없었다. 자신의 몸보다 아들을 잃은 게 더 견딜 수 없었다. 누구를 원망하고 저주한단 말인가. 그렇다 한들 아들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
그녀의 절망은 깊고 차가워 도저히 수면 위로 빠져나올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딸이 자퇴를 했다. 그런 딸을 말릴 수도 돌볼 수도 없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이 명숙씨의 가장 어려운 과제였다. 그러나 총명하고 어여쁜 딸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검정고시를 봐서 대입자격을 땄고 스스로 대학에 가 장학생이 됐다.
커튼 너머로 희미한 햇살이 새어드는 어느 새벽녘, 언제나처럼 불면에 시달리고 있던 명숙씨는 잠든 딸의 미래를 보았다. 그것은 불행한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전진의 미래다. ‘딸은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무얼 하고 있던가, 이상한 생각도 들었다.
손뜨개, 기쁨과 치유의 힘명숙씨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코바늘을 들었다. 새끼손가락에 감각이 없어 불편했지만 그래도 잘 움직여주는 엄지가 있어 다행이었다. 엄지와 새끼손가락 사이에 바늘을 끼고서 그녀는 집 안에 있던 실을 찾아 눈꽃 무늬가 있는 첫 작품을 만들었다. 작품이라고 할 수도 없는 한 조각의 손뜨개에 불과했지만, 그녀는 무기력하던 지난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희한한 창조의 기쁨을 느꼈다.
그때부터 명숙씨는 엎드려서 손을 움직여야 하는 불편한 자세로 손뜨개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도 더듬고 책도 찾아보고 인터넷으로 다양한 실도 사들여 머플러부터 메리야스, 여성용 셔츠, 치마, 투피스, 스리피스…,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아이디어를 동원해 작품에 공을 들였다. 그렇게 만든 작품이 지난 5년간 200여 점. 팔꿈치에 옹이가 배어 오랫동안 견딜 수 없는 처지임에도 어려운 것은 한 달에 한 점, 쉬운 것은 일주일에 한 점 정도를 꾸준히 만들어왔다. 그녀는 그렇게 만든 작품을 아름다운 사람들과 나누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사랑을 잃지 않은 이다.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지만 한편으론 사람들의 그 빛나는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악함도 미움도 모두 그 빛 앞에서는 스러져버릴 나약한 것임을, 그녀는 그들을 통해 알았다. 그들은 자신이 가진 아주 작은 것도 나누려 했고, 기꺼이 ‘아무런 관계도 아닌’ 자신을 도우려 했다. 매일같이 방문해주는 봉사자가 있는가 하면 물질을 나누는 이도 있고, 위로와 마음을 건네는 이도 있다. 그녀는 자신이 바로 그 사랑 때문에 살아올 수 있었음을 이제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선물을 가져가면서도 그냥 가져가지 않는다. 아무리 그냥 가져가라 해도 이렇게 귀한 작품을 그냥 가져갈 수 없다며 실값이라도 줘야 한다고 우겼다. 결국 명숙씨는 그 돈을 받아 또다시 실을 샀다. 그리고 작품을 만들었다. 다시 또 그것을 누군가와 나눈다. 서로가 서로에게 마음을 주고 정성을 받고 사랑을 키운다.
그렇게 한코 한코 코바늘을 뜨는 동안 그녀는 아픔을 놓았고, 슬픔을 덮었고, 상처를 치유했다. 인위적인 노력이 아니라 작품을 만드는 동안 자연스레 그렇게 되었다(손뜨개가 얼마나 치열한 두뇌다툼인지 해본 사람은 안다). 그래서 그녀는 지난 5년 동안 손뜨개를 놓지 못했다. 기쁨과 치유의 힘을 어찌 놓아버릴 수 있겠는가. 그러는 사이 기특한 딸아이는 국비장학생이 되어 중국의 대학으로 떠났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뿐이지만 ‘어차피 삶이란 혼자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그녀는, 딸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전화가 있어 행복하고 찾아와주는 친구와 봉사자가 있어 즐겁다.
어김없이 아침 초인종이 울렸다. 침대를 떠날 수 없는 그녀는 리모컨을 들어 문을 연다. 밝은 얼굴로 인사를 건네는 봉사자다. 그분은 밤사이 명숙씨 몸에서 빠져나온 것을 정리해주고, 설거지를 하고, 싱크대가 반짝거리게 닦아준다. 그녀 발밑에 놓인 밥솥에 밥을 안쳐주며, 모든 것이 손에 닿는 거리에 있게끔 위치를 조정해준다. 집 안을 깨끗하게 치우고 반짝반짝하게 바닥을 닦는다. 모든 것을 누워서 봐야만 하는 명숙씨는 그것이 고맙고, 또 미안하다.
“이것 좀 드세요. 드시고 남은 것도 가져가세요.”
전날 찾아온 손님이 두고 간 음료수다.
“아유, 됐어요. 그냥 우리 만날 때나 하나씩 먹어요.”
“아니요, 가져가시라니까요.”
그들의 설왕설래에는 가식이 없다. 그것이 진심이다. 누구에게든 나눔을 받으면 명숙씨는 꼭 필요한 것만 빼고 그것을 또 나눈다. 김치를 너무 많이 받아도 찾아온 손님에게 가져가라 성화고, 반찬을 많이 받아도 좀 싸가라고 성화다. 꼭 필요치 않은 물건이라도 받게 되면 필요한 이가 가지고 갈 때까지 조른다. ‘이곳엔 내게 꼭 필요한 것만 있으면 된다.’ 작지만 물건이 별로 없어 깔끔한 집 안을 둘러보며 명숙씨는 생각한다. ‘가볍게 가볍게….’ 나쁜 일이 생겨도, 삶의 무게도, 짊어질 살림 규모도 모두 가볍게 하고 싶은 그녀의 바람이다.
정오가 지나 자원봉사자가 돌아갔다. 이제 남은 시간, 명숙씨는 혼자다. 침대 바로 밑, 작은 상 위에 놓아둔 간소한 반찬으로 식사를 한 뒤 아픈 팔꿈치를 어루만진다. 아무래도 오늘 오후는 코바늘 대신 책을 집어들어야 할 모양이다. 뜨고 있던 손뜨개를 올려두고 도서관에서 정기적으로 대여해주는(정말 감사하고 있다) 책을 펼쳤다. 1년이면 그렇게 읽는 책이 많으면 100권, 적으면 60권 정도다. 마침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책이었다. 그녀는 한껏 들뜬 마음으로 그것을 읽는다. 최근 소설책이 별로 오지 않아 아쉽던 참이었다.
풀밭을 걷고 바람을 맞는 소설 속 인물의 이야기를 읽으며 그녀는 베란다에 놓인 총총한 화분들 너머 아득한 바깥 풍경을 헤아려본다. 자력으로 외출할 수 없는 그녀는 많아야 1년에 한두 번(병원에 가기 위한 것이다) 밖을 나선다. 그마저도 거리를 활보하는 일은 없기에 창밖으로만 볼 뿐이다. 그런 그녀에게 계절의 풍경이나 그 냄새와 미묘한 질감의 차이는 이제는 아득하게 먼 기억이다.
그래도 그녀는 숨겨둔 꿈을 꺼내본다. 그것은 불면의 밤을 보내며 실제로 꾸는 악몽과는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소설 혹은 수필, 시를 쓰는 꿈. 그것으로 자신이 바라보는 세상을 넓히고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꿈.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는 삶물론 더 좋은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기적도 믿지 않는다. 다만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자세로 엎드린 채 턱을 괸다. 그리고 새로운 손뜨개 작품의 구성과 새롭게 쓸 글의 소재를 헤아린다. 그것이 자신에게 가져올 기쁨과 희망을 가슴에 품으며.
여기 한 여인이 있다. 모든 것이 절망스러웠으나 결코 자신에게 절망하지 않았던. 그것이 그녀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서 승리한 유일한 이유였다. 티 없이 맑고 순수한 그녀의 얼굴에 빙긋이 미소가 떠오른다.
글 김소윤 제2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자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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