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 연휴 내내, 소말리아 해적에게 납치됐다 구출작전 과정에서 총상을 입은 삼호주얼리호 석해균 선장의 병세가 사람들의 애를 태웠다. 설날 아침 의식을 되찾아 안도감을 안겼던 석 선장은 2월4일 호흡곤란 증세를 보여 다시 인공 호흡관에 의지해야 했다. 그의 차도에 쏠리는 전 국민적 관심의 맥락과 농도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들이 있겠지만, 어찌됐든 한 이웃의 생명에 지극한 정성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품성은 위안이 됐다.
그러면서 한 가지 남다르게 다가오는 사실이 있었다. 아마도 독자, 특히 ‘생명 OTL’ 시리즈를 꼼꼼히 읽어온 독자라면 눈길이 갔을 이름 때문이다. 아주대학병원과 이국종 아주대 의대 교수. 정책의 포커스에서 벗어나 있는 응급 외상환자 실태를 다룬 ‘생명 OTL’ 시리즈에 자주 등장한 병원이고, 척박한 조건에서 사명감으로 일하고 있는 소수의 외상외과 전문 의사 가운데 한 명으로 소개된 교수다. 역시나 심각한 외상을 입은 석 선장이 국내로 이송돼 찾아간 곳이 아주대학병원이었다.
석 선장의 쾌유를 비는 마음 한켠으로 다른 목숨들이 자꾸 떠오른 이유다. 의술도 돈을 좇는 풍토에서 돈이 되지 않는 외상외과는 정부와 의료계의 외면을 받고, 지난 10년간 응급실에서 ‘살 수 있었음에도 죽어간’ 외상환자들이 베트남전 사망자의 두 배에 이른다는 기사(842호 ‘해마다 9245명 목숨 살릴 수 있었다’ 참조)의 한 대목이 떠올랐던 것이다. 심각한 외상을 당해 응급실을 찾는 이들이 주로 고관대작이거나 배부른 사람들이었다면 사정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대다 출퇴근길이나 직장에서 사고를 당해 응급실로 실려오는 이들은, 멀고 험난한 바닷길을 천직으로 여기던 석 선장과 다를 바 없는 우리의 이웃들이다. 마땅히 대한민국이란 공동체의 정성 어린 관심을 나눠받아야 할 이들이지만, 어찌된 일인지 그러지 못할 뿐이다.
요즘 핫이슈로 떠오른 복지 논쟁에서도 우리는 추상의 언어와 건조한 숫자 속에서 위태한 상황에 놓인 수많은 목숨을 감각할 수 있다. 서울시가 빈곤층 노인의 급식 예산을 줄이려는 와중에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말 그대로 ‘먹지 못해’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해야 했던 노인( 지면 30쪽 기사 ‘늙은 도시 빈민의 무정한 밥상’ 참조)은 도드라진 한 사례일 뿐이다. 숱한 자살자들의 사연을 전하는 짧은 기사 속에는 어떤 복지 옹호론자의 달변보다 숨막히게 다가오는 현실들이 웅크리고 있게 마련이다. 그것을 펼쳐 보여주는 매체가 없고 그것을 가슴 아프게 바라보는 눈길이 없을 뿐이다.
거기에 더해 이집트 민주화 시위 과정에서 숨진 이들과 20년 전 광주민중항쟁에서 똑같은 가치를 위해 숨져간 이들에까지 시야를 확장하다보면, 신문 지면을 메운 모든 이야기 속에 사람의 목숨이 매달려 있으며 그 목숨들은 저마다 빛나고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엊그제, 차례상을 물리고 떡국을 나눠먹으며 우리는 조상의 죽음을 기리며 후손의 삶을 축복했다. 명절은 그렇게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집단의례가 아닐까. 석 선장의 쾌유를 빌며, 또한 모든 이들의 생명에 경의를 보낸다.
한겨레21 편집장 박용현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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