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은 “무상급식 조례안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말한다. 대신 서울시는 오 시장의 공약 사항인 ‘3무 학교 사업’(사교육·준비물·학교폭력 없는 학교)을 올 3월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2014년까지 3738억원을 투입한다.
오 시장은 시의회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민주당은 ‘복지정당’을 자처하면서 노인 복지정책의 총아인 ‘어르신 행복타운’은 반대하는 사람들”이란 힐난도 던졌다. 지난해 12월 초 한 언론 인터뷰였다. “모든 정책은 결국 예산으로 나타난다. (시민들이) 속속들이 들여다보시고 시 예산이 어떻게 짜여져 있는지도 좀 봐주셨으면 한다”는 당부도 남겼다.
그해 말 서울시가 편성한 예산안을 들여다보니, 저소득 노인 무료급식 예산이 15% 깎여 있었다. 노인 무료급식 사업이 ‘노인 복지정책의 총아’는 아닌 탓이겠다.
맞물리지 못하는 풍경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오 시장의 일관성이라면 ‘무료급식’에 유독 인색하다는 점이다. 그런 서울시가 언론 취재와 사회적 비난을 계기로, 저소득 노인 무료급식 삭감분을 시행 한 달 만인 1월26일 원상복귀시켰다. 60살 이상의 저소득 노인에게 지역 경로식당 점심(2800원·월 26일)을 제공하고, 65살 기초생활수급·차상위층의 거동 불편 홀몸 노인에게 식사(2800원·주 7일)와 밑반찬(3000원·주 2회)을 배달해주는, 이른바 ‘선택적 복지’의 전형이다.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은 노인
임상철(가명·서울 중랑구 면목5동)씨는 자신을 품고 있는 서울시의 복지 논쟁을 알지 못한다. 올겨울 들어서며 일주일가량 꼼짝없이 굶주렸던 까닭만 안다. 관절이 좋지 않던 그가 행인과 부딪혀 넘어진 뒤였다. “겨우 집에 오긴 왔지. 그런데 일어나질 못하겠는 거야. 끙끙대면서,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고… 이러다 죽겠다 싶은 거야. 호빵이라도 하나 사서 갖다달라고 해도, 집주인이 (수고비) 1만원을 달라니까….” 노인의 눈썹이 흠칫했다.
아흔한 살, 긴 삶이 종착해 있는 두 평 단칸방은 서술하기도 끔찍하다. 재건축 예정지에 자리한 집 벽은 노인처럼 헐었다. 2009년 가을부터 도시가스도 끊겼다. 요금을 못 냈다. 수도도, 화장실도 사용할 수 없다. 온기라곤 전기장판이 유일하다. 방의 절반은 때에 찌든 이불, 절반은 그보다 더러운 옷가지와 쓰레기가 계통 없이 채웠다. 때로 방 안에서 용변도 본다.
빈자의 사인은 대개 소소하다. 임씨는 지난해 반년여 병원에 입원했다 10월께 집으로 왔다. 여태 돌보던 주민센터도, 지역 복지관도 그를 ‘놓쳐버린’ 계기다. 거동 삼아 나간 길에 행인과 부딪혔고, 그것이 ‘아사’의 경계까지 내몬 셈이다. 서울시 예산 전액 지원사업으로 복지관에서 배달해주던 음식이 입원 시점부터 끊겼기 때문이다.
노인이 구겨진 바지 속 주머니 꽉 여민 옷핀을 풀자, 통장이 나왔다. 기초생활수급비·노령연금을 합쳐 국가가 노인에게 매달 주는 32만원이 기록돼 있다. 자식의 벌이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비가 적다. 물론 뻔한 사연대로, 자식은 아비의 쌀 한 포대 사주지 못한다. 방값으로 10만원이, 의료비로 15만원이 다달이 나간다. 7만원이 남는다.
주민센터의 요청으로, 지역 복지관은 올 1월18일(화요일)부터 임씨에게 무료 밑반찬을 다시 배달하기 시작했다. 매주 화·금요일 두 차례 이뤄진다. 기자가 주민센터 직원, 복지사와 함께 그를 찾은 1월21일, 마을은 영하 15℃ 안팎이었다. 노인은 “어제? 아침은 안 먹고 점심은 오래된 밥 있잖아, 그걸로 죽을 끓여 먹고, 저녁은 호빵 2개로 때웠다”고 말했다. 그리고 복지사에게 “밑반찬 대신 도시락을 주면 좋겠다”고 간청했다.
밑반찬보다 도시락 비용이 더 크다는 걸 노인은 모른다. 이때까지 서울시가 2011년 무료급식 예산을 줄이기로 하고 있었음을 또한 알지 못한다. 2010년 118억3천만원에서 2011년 100억5천만원으로 줄이겠다는 방침, 그러니까 2400여 명 노인의 밥을 올해부턴 끊겠다는 계획 말이다.
중랑구는 서울시 지침에 따라 무료급식 지원 대상을 2010년 월평균 1155명에서 올해 1061명으로 줄일 참이었다. 당장 1월 삭감안을 따랐던 지역 복지기관 등 11곳은 애면글면 제 주머니를 털었다. 오던 노인을 돌려세우고, 주던 밥을 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항의했다. 동대문구 서울다일밥퍼 담당자는 “2명의 지원분을 줄여야 한다는 동대문구청의 요청에 강하게 항의했지만 받아들여질 것 같지 않았다”고 말했다. 강북구청 담당자는 “예산은 줄었는데, 인원수를 유지하다 보면 결국 식사 질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바탕 ‘난리’를 겪고 서울시의 해당 사업 예산은 2월부터 지난해 수준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답이 되지 않는다. 기왕 터져나온 일선의 우려가 사위지 않는다. 이 정보공개청구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서울시의 기초생활수급권자는 물론 저소득 노인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
당장 중랑구만 보더라도 기초생활수급 노인(65살 이상) 수가 2008년 1월 2411명, 2009년 1월 2427명, 2010년 1월 2561명, 2011년 1월 2657명으로 늘고 있다. 동대문구 또한 기초생활수급 노인 가구 수(매해 12월 말 기준)가 2008년 1986가구에서 2009년 2081가구, 2010년 2110가구로 늘었다. 특히 2010년 12월치는 2011년 1월27일 현재 2455가구로 급증했다. 최근 4년 새 최대 폭의 증가다. 이런 추세라면, 차상위층의 노인 또는 60살 이상 저소득층의 증가세 또한 예상 가능하다. 가늠되지 않을 뿐이다.
서울시 전체 기초생활수급권자는 2008년 20만5059명에서 2009년 21만4130명, 2010년 말 21만4602명으로 늘어왔다. 65살 이상 노인 수 증가 폭은 더 크다. 2010년 89만52명, 2009년 93만5757명, 2010년 96만384명이었다. 서울시는 기초생활수급 노인 수는 따로 분류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산을 줄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가난을 측정하지 않는 자발적 복지1월21일, 중랑구에서 취재를 마치고 오는 길에 박정희(60)씨를 만났다. 6개월 전 일곱 평 남짓의 식당 ‘아버지의 집’을 차렸다. 오전 11시부터 2시간 동안 노인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한다. 가게 간판은 “이후엔 유료”라고 말하고 있다. 백반이 2천원, 묵밥이 5천원이다. 하지만 이후에도 무료다. 매일 30여 명이 주린 배를 채운다. 동네 유명한 무료급식소가 돼간다. 밥 달라는 노인이 빈자인지 부자인지 박씨는 가리지 않는다. 박씨는 “가정형편이 안 돼 아들(30) 결혼도 아직 못 시키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택시 운전사다. 가족 생활비가 몽땅 식당 운영에 들어간다. 그는 “너무 힘들지만 앞으로 청소년 무료급식도 하고 싶다”며 “누군가 임대비·수도세 같은 공과비만 좀 도와주면 바랄 게 없겠다”고 말했다. 매달 35만원가량이 된다고 한다. 식당의 복지는 서울시의 것과 다르다. 박씨는 자신을 절대 미화하지 말아달라고 여러 차례 당부했다.
<font color="#1153A4">임상철씨의 눈썹은 또 흠칫했다. 그때 그는 “죽지 않으려고 2층에서 계단 지지대를 붙잡고 내려와” 골목을 지나는 소녀를 또 붙잡고 도움을 청해, 119 구급차와 택시를 번갈아 타 당도한 면목시장에서, 쇠고깃국 한 그릇을 시켰으나 “너무 오랜만이라 거의 먹지 못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가난은 아직 마감되지 않았다.</font>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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