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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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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9245명 목숨 살릴 수 있었다


응급진료 부실로 한 해에 베트남 전사자 두 배의 목숨 잃어…
권역외상센터 설립 예산 0원, 외상외과 전문의 육성 시스템도 없어
등록 2010-12-28 16:05 수정 2020-05-03 04:26

강중언(34·남·가명)씨는 지난 6월 새벽 3시 높은 곳에서 추락했다. 그는 사고가 일어난 지 13분 만에 준종합병원의 응급실에 도착했다. 정부가 전국 109개 지역응급의료센터 가운데 하나로 지정한 곳이었다.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 그는 수축기 혈압이 70mmHg에 불과했다. 맥박은 분당 120까지 올라가는 빈맥 증상이 나타났다. 매우 위험한 수준이었다. 복강 또는 골반강 안에서 출혈이 의심됐다. 반혼수상태였다. 일단 환자의 기관지에 튜브를 넣어서 호흡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진료의사는 이 조치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안정한 환자에게는 실시하면 안 되는 컴퓨터단층촬영(CT)을 했다. 나중에 살펴보니, 뇌 촬영 결과 머리에는 미미한 손상만 있었다. CT 뒤에도 환자는 지속적인 저혈압 상태였다. 그러나 출혈 부위를 확인하기 위한 초음파 등의 검사는 없었다. 응급수술을 위한 외과 의료진과의 협진도 없었다. 엑스레이 검사 결과를 보면, 환자의 골반에도 골절이 있었다. 골반강 출혈이 의심됐다. 그렇지만 혈관조영술 또는 응급수술을 위한 조치가 전혀 없었다. 환자가 병원에 도착한 지 3시간30분이 지난 뒤 수혈이 이뤄졌을 뿐이다. 환자는 아침 7시를 갓 넘어 사망했다.

» 지난 12월16일 119구급대가 한 환자를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옮기고 있다. 중증외상 치료 과정에서 사고 발생 뒤 1시간은 흔히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이송 시간에 따라 환자의 생사가 갈린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지난 12월16일 119구급대가 한 환자를 경기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옮기고 있다. 중증외상 치료 과정에서 사고 발생 뒤 1시간은 흔히 ‘골든타임’으로 불린다. 이송 시간에 따라 환자의 생사가 갈린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살인에 가까운 진료

강씨가 적절한 치료를 받았다면 그의 운명은 분명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쯤 어디선가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을지 모를 일이다. 의료진은 그를 사실상 방치했다. 가족마저 그의 죽음의 영문을 알 길은 없었다. 응급실 안 세계는 일반인에게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은 ‘금단의 세계’다. 가족들이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응급실에 도착했고, 그가 죽었다는 사실뿐이다. 병원의 무책임과 무능력은 그의 죽음 뒤에 숨어 있었다. 강씨의 의료기록은 서울의 한 의료기관으로부터 받았다. 기관 이름은 물론, 환자의 신원 모두를 공개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따라붙었다. 그의 신원이 알려질 경우 번질 파문을 우려해서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은 ‘살인’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강씨의 사례가 극단적인 경우일까? 그렇지 않다. 2008년 정구영 이화여대 교수(응급의학) 등이 내놓은 ‘응급의료체계 성과지표에 관한 연구’ 논문은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논문은 강씨의 경우처럼 숨겨진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를 가늠했다. 연구진은 2006년 8월부터 2007년 7월 사이 전국 20개 대형 응급실의 외상 사망 환자의 의무기록을 펼쳤다. 551건이었다. 이들의 의무기록을 분석한 결과, 연구진은 551명 가운데 179명은 살릴 수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179명 가운데 살릴 수 있는 확률이 75%가 넘었던 환자는 21명이었고, 25~75%였던 환자는 158명이었다. 두 집단을 합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32.6%였다. 응급실에서 사망한 환자 10명 가운데 3명은 살아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는 뜻이다.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만큼의 환자들을 죽인 것은 엉성한 우리 응급의료 시스템이었다.

이 연구 내용과 우리나라 전국 외상 사망 통계를 함께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한 통계가 나온다. 김윤 서울대 교수(의료관리학)가 이를 계산했다. 은 그가 보건복지부의 용역을 받아 지난 3월 제출한 보고서를 최영희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받았다. 내용을 보면, 2007년 건강보험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61만3392명의 중증 외상환자가 응급실을 찾았고, 그 가운데 사망한 환자는 2만8359명이었다. 여기에 앞서 집계된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곱하면 예방 가능한 사망 건수는 무려 9245건으로 추산됐다. 응급실을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1만 명 가까운 환자들이 주검이 되어 나왔다는 말이 된다.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암담한 통계였다. 회생 가능 비율이 75%가 넘었던 환자들만 골라내도 그 수는 1113명이었다. 미국 쪽 자료를 보면, 한국군이 지난 1964~73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는 동안 전사자 수가 4407명이었다. 2000년대 한국 응급실에서, 베트남 전쟁 10년 동안 사망한 수의 두 배에 가까운 사람들이 해마다 ‘전사’했다.

» 한 해 병원에서 중증외상으로 사망하는 환자

» 한 해 병원에서 중증외상으로 사망하는 환자

장애도 줄일 수 있어

미국은 예방 가능한 사망률이 15%고, 캐나다가 18%, 독일이 20% 수준이다. 확률을 한 자리로 낮춘 경우도 있다. 세계에서 중증외상 응급의료 시스템을 가장 잘 갖췄다는 평을 들은 미국의 메릴랜드주는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5%까지 낮췄다. 우리나라가 독일 응급의료 시스템 수준만 갖춰도 살릴 수 있는 인구는 3500명이 넘는다.

중증외상 응급의료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면 사고로 인한 장애도 줄일 수 있다. 보건복지부의 통계를 보면, 지체장애인 10명당 2명(17%)은 사고로 장애를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2년 사고사로 인한 손실소득액을 1년 17조5110억원으로 추산했다. 사망 인구가 남은 생애 동안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되는 소득을 합산해서 낸 결과였다. 죽음과 장애로 생기는 개인과 가족, 사회의 상처는 계산할 길이 없다.

수익 추구 병원의 외면

그렇다면 어디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는 걸까? 다시 정구영 교수의 논문을 펼쳐보자. 연구진이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문제점을 분석해보니, 모두 386개 유형의 문제점이 발견됐다. 응급실 치료 과정(100개·25.9%)에서 가장 많은 문제가 있었다. 응급실 현장에서 치료 자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의료 인력의 자질을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치료 과정 가운데서도 소생술(64개·16.6%)이 환자를 가장 많이 사망에 이르게 했다. 정확히 강씨에게 해당되는 경우였다. 이렇게 응급실 내부에서 196개(50.8%) 유형의 문제가 발생했고, 그 밖에 환자가 병원에 이르기 전 이송 단계(106개·27.5%), 병원 사이의 이송 단계(33개·8.5%)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구급차가 너무 늦게 도착하거나 환자를 엉뚱한 병원으로 이끌어서 이송 단계의 주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런 문제가 생기는 구조적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절대대수의 병원들이 중증 외상환자 유치에 소극적이다. 병원의 수지타산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는 여럿이다. 우선, 다른 과의 경우 환자들이 의사 앞에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지만, 외상외과는 의료진이 환자들을 기다린다. 수요의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 정해진 병원 일정에 따라 환자를 받고 수술하고 퇴원시킬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그래서 병원들은 외상외과나 응급의료과의 규모를 늘리지 않는다. 또 환자가 밀려드는 3차 의료기관은 병상 가동률보다 회전율을 중하게 여긴다. 그렇지만 중증 외상환자는 오랜 시간에 걸친 치료가 필요하다. 또 신체 여러 곳이 다쳐서 온 환자들은 외상외과뿐 아니라 정형외과, 신경외과, 성형외과 등과 협진이 필요하다. 그만큼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든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건강보험의 의료수가 혜택이 많은 것도 아니다. 가장 고된 업무를 하는 외상외과 의사들은 정작 병원에 수익을 안겨주지 못한다. 병원에서는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의사를 찾아온 다른 환자들과 달리, 병원에 실려온 환자들은 의사에 대한 신뢰도도 높지 않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원에서는 구색을 맞추는 정도로만 응급실을 유지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니 외상외과로 오는 의료인력도 드물다. 몇 안 되는 외상외과 전문의들도 갑상선이나 간암 치료 등 ‘돈이 되는’ 분야로 옮겨탔다. 우리나라에서 그나마 외상 전문 외과의사로 인정받는 이는 이국종 아주대 교수나 조항주 의정부 성모병원 교수 등 다섯손가락에 꼽힌다. 수요가 없으니 공급도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외상외과 세부 전문의를 교육하는 병원이 없다. 이를테면 이국종 교수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병원 외상외과에서 연수를 받았다. 미국에서는 외상외과 전문의들이 12년의 정규 과정을 마치고도 2년간 추가로 전문 소생술 교육을 받는다.

» 지난 12월16일 아주대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 환자의 상태를 가족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 지난 12월16일 아주대병원에서 의료진이 수술 환자의 상태를 가족에게 설명하고 있다. <한겨레21> 정용일 기자

피해는 고스란히 중증 외상환자들에게 돌아온다. 이들이 구급차에 실려가도 제대로 된 서비스를 받기는 힘들다. 중증 외상환자들이 “수술방이 없다” “중환자실 자리가 없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 이유다. 혹시 입원할 수 있어도 제대로 된 수술을 받을 확률은 떨어지게 된다.

거대한 공백 메울 대안 시급

중증외상 분야는 국가 보건의료 정책의 선순위에서도 오래 배제됐다. 2008년에 들어서야 정부는 처음으로 전국 24개 종합병원을 중증외상특성화센터로 지정하고 예산 지원을 시작했다. 정부는 2009년 10월에 발표한 ‘응급의료 선진화 추진계획’에서 중증외상 관련 대책을 내놓았다. 계획은 야심찼다. 중증 외상환자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을 2012년까지 25%로, 2015년에는 20%까지 끌어내리겠다는 구상이었다. 가장 주목받는 사업은 권역외상센터 설립안이었다. 모두 6161억원을 들여 6곳에 권역외상센터를 건립하고, 신속한 환자 이송을 위해 센터마다 구급용 헬리콥터를 운용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미국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운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거기까지였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부터 예비타당성 조사 분석을 놓고 옥신각신하다 내년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못했다. 이국종 교수는 “환자 이송에서 재활까지 포함한 선진국 수준의 외상센터를 일단 전국에 1곳이라도 제대로 만들어 시범 운영해서 물꼬를 트길 바란다”고 말했다. 허윤정 민주당 전문위원은 “우리나라 응급의료 관리체계는 민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데 수익성이 낮은 중증외상 분야에서 거대한 공백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다. 결국 이 부분은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과 미국의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
헬리콥터가 사람을 살렸다


일본은 2000년부터 중증외상 전문치료 체제를 구축했다. 가장 시선을 끄는 내용은 ‘닥터헬리’ 사업이었다. 지방 현의 거점 병원에 배치된 헬리콥터에는 의사와 간호사, 파일럿, 정비사가 탑승한다. 헬기 안에서 환자는 의료진의 응급치료도 받았다. 구급차가 환자를 나르는 시간이 평균 54.7분 걸렸지만, 헬기는 28.3분 걸렸다. 수송 시간은 약 26분 단축됐다.
병원에 온 환자는 바로 응급실로 가서 외상외과 전문의의 수술을 받게 됐다. 예를 들어 지바현에서 활동하는 닥터헬리는 2001년 10월부터 2004년 12월 사이에 1688명의 환자를 옮겼다. 그 결과 일본은 2008년 인구 10만 명당 교통사고 사망자가 4.7명으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2007년 통계(14.7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1966년 국립과학아카데미가 ‘사고로 인한 사망과 후유증: 현대사회에서 방치된 질병’이라는 보고서를 내면서 중증외상이 사회적 관심을 끌었다. 환자 이송을 위한 헬리콥터가 등장한 것은 1971년의 일이었다. 2005년 미국 전역에서 350대의 헬리콥터가 2만5천 명의 환자를 실어날랐다. 미국의 예방 가능한 사망률은 주마다 편차가 있어서 집계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5월 한국을 찾은 라울 코임브라 미국 캘리포니아주립 샌디에이고대학 중증외상센터 교수는 “미국의 예방 가능한 외상환자 사망률이 15% 수준”이라고 밝혔다.
참고로 우리나라 소방방재청은 2008년 기준 26대의 구급 헬기를 가지고 있다. 그해 전체 운항 횟수 3296건 가운데 응급환자 이송 건수는 265건에 그쳤다. 홍보 및 교육·훈련에 쓰인 횟수(674건)보다 적었다.

김기태 기자 kk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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