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였다. 복잡한 서울 거리의 숨 막히는 더위가 언제 있었나 싶게 버스 안은 시원했다. 자리에 앉고 나서야 아차, 타고 있는 버스가 가스 버스인가 휘발유 버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이어, 앉아 있는 자리와 버스 바퀴의 위치는 어느 정도 거리에 있나 굼뜬 가늠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짧은 실소가 일었다.
<font color="#00847C">버스 안에서의 자조</font>
다들 비슷한 불안이 있는 모양이었다. 뒷자리에 앉은 이들도 타자마자 그런 얘기를 하고 있었다. 이 버스도 터지는 거 아니냐는 둥 가스 버스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둥 이어지던 화제가 인사청문회로 바뀌고 있었다.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는 이제 고위 공직자들의 기본 스펙이란다. 위장전입은 맹모삼천지교의 2010년 버전이라며 우리나라 상위 지도층끼리는 오히려 그런 경력이 없으면 시쳇말로 쪽팔려 할 것이라고도 했다. ‘비리 종합 백화점’이라거나 ‘청문회 단골 메뉴’라는 식의 익숙한 표현보다야 신선했지만, 젊은이들의 대화라고 하기에는 다분히 자조적으로 들렸다.
법적으로 깔끔하고 도덕적으로 흠결 없는 사람을 기용하고 싶지 않은 수장은 없을 것이다. 민간인 사찰이 문제될 만큼 뒷조사가 엄밀한 현 정부에서 주요직 내정자의 신상에 대해 언론만큼 몰랐을 가능성도 그리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마도 지도층이라고 꼽을 만한 사람들 중에 이미 드러난 정도의 흠결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게 가장 상식적인 답이 된다. 달리 말하면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게 사는 사람이 되려면 자녀를 위해서든 부동산 투기를 위해서든 위장전입 몇 번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위장전입이나 부동산 투기 한 번 없이 살아서는 자녀 교육의 열의가 부족한 못나고 무능한 부모가 되는 것이며, 사회 지도층에 진입할 수 없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부동산 투기는 운 좋은 투자로 합리화되고, 위장전입은 눈물겨운 맹모삼천지교로 공공연하게 탈바꿈하는 것을 보면 법도 도덕적 기준도 서민과는 다른 ‘그들만의 천국’이 따로 없다.
남들 눈이 없는 곳에서 크고 작은 잘못을 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정지 신호를 무시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 길을 가다 잘 조준해 던진 쓰레기가 쓰레기통을 벗어났을 때 등 고의로, 때로 무의식적으로 규율과 법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는 물론이고 누군가가 보고 있다면(특히 많은 사람들이 그런 행위를 주목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되면) 우리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하다못해 비어져 나온 허리춤을 추스르다가도 타인과 눈이 마주치면 얼른 매무새를 고쳐 잡기 마련이다.
<font color="#C21A8D">내정자들의 무서운 눈빛</font>
내정자의 면면이 얘기될 때마다 드러나는 범법의 정도와, 일관되지 못하거나 사나운 언사보다 더욱 놀랍고 두려운 문제는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법을 어기는 것을 ‘범죄’라고 칭한다. 무단횡단을 하던 사람이 신호를 지키고 서 있는 많은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최소한 머리를 긁적이거나 정말 급하다는 듯 종종걸음을 하는 것이 아니라 눈을 똑바로 뜨고 오히려 여유작작한다면, 공공장소에서 허리춤을 추스르는 이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가 서둘러 드러난 허리춤을 다잡는 제스처조차 없이 그대로 계속 빤히 쳐다보고만 있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고 때로 섬뜩하기까지 한 일인가. 도덕적인 문제가 드러나도, 범법 행위가 명백한 범죄를 저질렀어도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은, 그것도 고위 공직자층이 대부분 그렇다는 사실은 노후한 연료통이나 재생 타이어가 터질지 모르는 버스를 타고 가는 불안을 잊을 만큼 무서운 일이다.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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