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모든 건물에는 유령이 산다.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그들의 존재를 잘 알지 못한다. 함께 일을 하며 섞여 있을 때도 그들을 눈여겨보는 사람은 드물다. 가끔 엘리베이터 안이나 식당에서 그들을 마주칠 때면 사람들은 기겁을 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노골적인 불편함이나 거북함을 드러내고는 한다. 움직이지 않을 때 유령들은 창고나 지하 배관실, 계단 밑 등에서 되도록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지낸다. 그마저 어려운 조건에서는 사람들의 대소변 소리를 들으며 화장실 옆 한편에서 숨죽여 쉬거나 쪽잠을 청하기도 한다. 그런 곳을 그들끼리는 ‘비(밀아지)트’라고 부른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남녀노소 현대인이 움직이는 도심의 어느 곳도 그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다. 매일 지나는 지하철에서, 근무하는 빌딩에서, 학교에서, 퇴근 뒤 들르는 마트에서, 청결에 대해 바짝 신경을 세우고 이용하는 공공 화장실에서, 건물 어디에서고 마주치지만 그들을 의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루 일과의 모든 공간에서 부딪치는 그들의 존재를 신기하리만큼 다들 인식하지 않는다. 평균 나이는 58살이고, 예순 살 이상이 50% 가까이를 차지하며, 열에 일고여덟은 여성인 그들은 청소노동자다. 새벽을 서둘러 누구보다 먼저 일터에서 청소를 시작하고 사람들이 출근해서 활동하는 시간에는 되도록 몸을 숨기는 ‘보이지 않는 노동자’다.
중앙고용정보원의 산업별·직업별 고용구조조사(OES)에 따르면, 2008년 기준 전체 경제활동인구 중에서 임금노동자는 1600만 명을 좀 넘는다. 청소노동자는 그중 2.3%로, 네 번째로 많은 인원을 차지하고 있다. 총 426개 직업 중 네 번째로 종사자가 많은 직종이라는 것은 청소노동이 우리 사회에 그만큼 보편적이고 필수적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노동환경은 우리가 짐작하는 것 이상으로 열악하다. 대부분 비정규직임은 물론이고, 평균임금 79만6천원으로 80% 이상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한다.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들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새벽 첫 버스나 지하철에 꼭 등장하는 인물들이 있다. 묵직한 연장과 작업복이 들었을 가방을 안고 피곤한 기색을 떨치지 못하는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과 중년을 넘긴 청소 용역 아주머니들이다. 깔끔하고 단정한 차림으로 대개 도시락 가방을 들고 있는 아주머니들의 모습에는 새벽 시간을 서둘렀을 바지런함이 고스란히 배어난다. 성실의 모범으로 TV 다큐멘터리에 잠깐 출연하는 쓰임과 달리 세상은 그녀들이 눈에 띄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내외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줌마를 말할 때 남자 화장실에 거침없이 들어와 볼일을 보는 사람들 다리 사이로 마구 대걸레를 밀어넣는 대담한 ‘청소 아줌마’로 희화화되는 것이 세상에서 얘기되는 그녀들의 모습이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위하여
유령처럼 숨어서 쓸고 닦고 사람들에게 필요한 품만을 묵묵히 제공하라고 세상은 그녀들에게 강요한다. 고령이며 여성이고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들이 그 직종에 종사한 햇수는 평균 14년이 넘는다. 6월5일 ‘청소노동자 행진’에서 그녀들은 화장실 한편을 빌리거나 구석지고 어두운 계단 밑 비트에서 서럽게 먹던 찬밥 대신,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했다. 더 이상은 숨지 않고 더 이상은 눈치 보지 않겠다는 그들의 행진 표어에는 따뜻한 색깔의 밥그릇 안에 오롯하게 활짝 핀 장미꽃 한 송이가 예쁘게 그려져 있다. 따뜻한 밥 한 끼의 권리를 찾는 것이 장밋빛 인생을 꿈꾸는 시작이라고, 장미만큼 고운 분홍색 풍선을 하늘로 날리며 유령이 아닌 ‘노동자’라고 외치는 그들의 웃음은 크고 환했다.
신수원 ‘손바닥 문학상’ 수상자
*이 글은 민주노총 공공노조가 기획한 영상물 을 참고해 썼습니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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