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권의 묘미를 아는가. 1970~80년대에 초등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안다. 슉슉슉, 그것은 입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온몸이 무기로 단련된 무림고수의 주먹질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였다. 요즘이야 표도르의 무지막지한 얼음 파운딩, 상대방의 허점을 파고드는 바다하리의 송곳 카운터, 비제이 펜의 더티복싱이 최고인 줄 알지만, 그때는 안 그랬다. 마치 군대 ‘도수체조’를 하듯, #초식?#은 딱딱 끊어지는 절도가 있어야 했다. 공격이면 공격, 수비면 수비였지 수비할 듯하다가 공격하면 반칙이었다. 성룡이 염철심을 이길 수 있던 비밀이 바로 여기에 숨어 있었다. 영화 이 만들어낸 최고의 악역 염철심은 고지식했다. 발차기의 절대고수였지만 상대와 맞붙기 전 자기 입으로 항상 “나의 권법은 대부분 발로 한다”며 입방정을 떠는 것이 약점이었다. 주정뱅이 무림고수 소화자에게 무술을 배운 성룡은 달랐다. 만취한 채 비틀거리며 허점을 보여 염철심을 방심하게 만들 줄 알았다. 결과는 당연히 만취자의 승리.
이상의 합참의장이 천안함 침몰 사고가 발생했을 때 만취한 상태였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우리 솔직해지자. 소화자와 성룡이 술을 마셔야 비로소 무림의 절대고수로 거듭났던 것처럼, 술 마실 때 비로소 제정신이 돌아오는 사람, 어디 합참의장뿐인가.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만취한 합참의장’에게 모조리 뒤집어씌워버리려는 ‘천안함 시즌2-군의 독박’ 사태를 바라보며, 어쩌면 우리 군에 남은 마지막 취권의 고수일지 모를 그에게 막연한 연민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합참의장이야 술이라도 마셨지, 술 대신 천안함 북풍에 취한 가짜 ‘주정뱅이’는 뭐가 다른가. 아마도 ‘비정상적 정상인’과 ‘정상적 비정상인’의 차이쯤 될까.
약장수가 약을 팔 때 극성스럽게 따라다니는 아이들을 쫓을 때 하는 말이 있다.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회충약의 효능을 직접 공개하는 장면이 교육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쫓는 것이 아니다. 약장수가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인가. 그것보다 약장수의 단골 멘트가 내포한 속뜻은 상대해봤자 돈이 되지 않는 아이들은 필요 없다는 의미다. 물론 그렇다고 애들이 정말 가는 것은 아니다. 입장료 따로 받는 이벤트도 아닌데, 운 좋으면 차력쇼까지 즐길 수 있는 약장수의 방문을 놓치는 것은 명랑소년의 직무유기다. “요즘 초선들이 정치를 잘못 배운 것 같다.” 큰 집주인의 위엄이 느껴지시는가.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물어 청와대 개편을 요구하고 있는 한나라당 초선 소장파의 기세에 아랑곳하기는커녕 살살 약 올릴 줄 아는 ‘약장수급’ 노련함이 돋보인다. 약도 역시 팔아본 사람이 판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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