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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다른 이름, 주검 더미 위의 출세자



동서고금 관통하는 영웅신화는 폭력·살인도 불사한 일등주의…현대에서는 자본주의 정당화에 이용돼
등록 2010-05-13 22:17 수정 2020-05-03 04:26

영웅은 싸움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는 동서고금 가부장적 사회들의 철칙이다. 가부장적 문화 속 ‘진정한 사나이’의 두 가지 주된 특기는 가족 부양과 다른 남성에 대한 폭력 능력의 보유인데, 전자보다 훨씬 더 극적인 후자는 늘 전설이나 문학의 줄거리를 이루어왔다.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영웅신화’는 늘 내재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이다. 원래 인도유럽어족의 어근 ‘ser’(지켜주다, 보호하다)에서 파생된 히어로(hero), 즉 영웅이라는 단어는 여성 내지 어린이를 지켜주는 남성 보호자를 뜻한다. 영웅의 칼을 찬양하는 서사시는, 결국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월성을 전제로 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주된 텍스트가 된다. 그래서인지 서로 상이한 문화권에서 최초의 영웅서사시는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부적인 부분이 서로 달라도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본질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고대 남성 매혹시킨 ‘칼 숭배’ 이데올로기

1890년 다카하시 유이치 화백이 그린 야마토 다케루. 고대 일본의 영웅 야마토 다케루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의 ‘민족 영웅’으로 재등장했다. 한겨레 자료

1890년 다카하시 유이치 화백이 그린 야마토 다케루. 고대 일본의 영웅 야마토 다케루는 메이지 시대에 일본의 ‘민족 영웅’으로 재등장했다. 한겨레 자료

예컨대 고대 일본의 전형적 영웅이자 다분히 신화적 존재인 야마토 다케루(倭建命)를 보자. 4~5세기에 형성돼 나중에 (712)와 (720) 등 초기 사서에서 윤색된 채 기록된 관련 신화에서 그는 ‘싸움꾼’의 전형으로 등장한다. 역시 전설적 인물이라 여겨지는 그의 아버지 경행(景行) 천황이 불효를 저지른 그의 형을 “잘 가르치라”고 그에게 당부하는 게 스토리의 시작이다. 고대 ‘영웅’이 ‘효도를 가르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야마토 다케루 자신의 말대로 “그가 측간에 들어가자 나도 거기에 들어가 그를 잡아 쳐죽이고 그 팔다리를 다 뽑아 밖에다 버리고, 주검을 자리에 싸서 유기해버렸다”(). 쌍둥이 레무스를 쳐죽이는 전설적인 로마의 창건자 로물루스, 아름다운 동생 발두르를 활로 쏴죽이는 전투의 신 오딘의 아들 호드(Hoðr) 등 고대 지중해 문명의 신화에서도, 바이킹 시대 스칸디나비아 신화에서도 영웅은 간혹 형이나 동생과의 사투에서 그 힘과 담력을 시험받았는데, 고대 일본의 영웅담에서도 “형의 주검을 찢어내는 동생”이 등장하는 것이다. 의 기술대로라면, 형을 죽일 당시에 야마토 다케루는 불과 16살이었다.

형을 ‘영웅적으로’ 없애버린 야마토 다케루는 그 뒤로 승승장구한다. 그의 힘과 담력을 은근히 두려워하던 아버지가 규슈섬 토인인 구마소(熊襲)족의 토벌을 명하자 그는 시녀 차림으로 여장해 구마소족 수장들의 술자리에 들어가 그 최고 수장이 술에 취하자 칼을 뽑아 그를 찔렀다. 죽어가는 수장이 야마토 다케루의 힘과 지략을 흠모해 그에게 일본의 제일 강한 남자, 즉 발음이 같은 야마토 다케루(日本武尊)의 존호를 올리자 야마토 다케루는 감사(?)의 표시로 그를 곧 ‘다 익은 호박’처럼 칼로 토막내고, 그의 모든 추종자를 죽이고, 그 지역의 ‘나쁜 신’까지 다 몰살시켰다( ). 물론 ‘일본’이라는 말이 7세기 후반에 처음 등장했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존호를 올렸다”는 이야기가 후대의 윤색인 것을 알 수 있지만, 이 전설은 4~5세기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잘 전해준다. 수장이 공동체 전체의 생명력을 체현했으며 그 생명력의 상징은 ‘우리’ 공동체를 살리고 ‘남’을 죽이는 칼이었다. 사랑하는 아내 미야쓰히메(美夜受媛)의 집에 그 칼을 놓아두고 간 야마토 다케루가 결국 생기를 잃어 죽게 된다는 스토리의 결말은 의미심장하다. 남자의 생명인 칼을 하위의 존재이자 피보호자인 여성에게 맡긴다는 것은 자포자기, 거의 ‘자살’에 가까운 행위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칼 숭배’ 이데올로기는 과연 초기 국가 수장층의 이념뿐이었을까, 아니면 어떤 전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했을까? 수장층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였음이 틀림없지만 다수의 평민도 이 이데올로기에 포섭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고대 일본과 가까운 관계에 있던 한반도에서만 해도 역사에 그 이름을 남긴 많은 ‘싸움꾼’은 평민 출신이었다. 짐승 사냥에서 남다른 재능을 보여 출세의 가닥을 잡은 뒤 주(周)나라와의 싸움에서 적군 수십 명을 베어죽인 공로로 대형(大兄)에까지 오른 그 유명한 바보 온달, 팔 힘이 좋고 용맹스러워 한 싸움에서 적군 수십 명씩 죽이는 걸로 유명한 ‘신라의 날랜 군인’ 심나(沈那)의 아들로서 말갈과의 싸움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적진으로 돌진한 소나(素那)…. 이들은 ‘칼 숭배’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해 전란기에 ‘칼’을 통해 몸 일으키기를 도모했다. “남자는 싸움터에서 죽어야지, 아내의 손에서 죽으면 되느냐”는 소나의 말은 싸움터라는 남성의 영역과 집안이라는 여성의 영역을 대립시키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의 전형에 가깝다. 이 이데올로기는 귀족 남성과 평민 남성을 하나로 연결해주는 남성우월주의적 사회의 결합 기제였을 것이다.

전쟁 비판과 전쟁소설 탐독의 이중성

물론 병역과 군사에 대한 고대인의 시각은 사뭇 다양했다. 병역은 ‘적군을 죽임으로써 진정한 남자가 되는 길’이면서 ‘부담’으로 인식됐다. 6~7세기 신라를 배경으로 하는 설녀와 가실 설화에서 가실이 설녀의 늙고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행하는 국경수비 병역은 배고픔과 추위의 연속일 뿐이었다(, 권48). 신라보다 유교적 애민(愛民) 인식이 더 강하던 당나라의 시단에서는 전쟁 참사를 극적으로 그려 지나친 무기 사용을 경계하는 시가 한 장르를 이룰 정도였다. 당나라의 시성(詩聖) 두보(杜甫·712~770)는 북방 변방의 군대에 끌려가는 남편과 아들을 보내는 여성들의 비참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수레 소리는 삐걱삐걱, 말은 씩씩댄다/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활과 화살을 허리에 찼도다/ 부모처자가 총총걸음 뒤쫓으며 전송하네 (…)/ 옷을 잡아당기고 발을 구르며 길을 막고 서서 우니/ 통곡하는 소리가 똑바로 올라가 하늘을 찌르는구나.”(‘병거행’)

국가에 사랑하는 이를 빼앗기는 가족의 비애를 서술한 두보는, “변경에서 흘린 피가 바다를 이룬다 해도 변경 지역을 개척하겠다는 황제의 의지는 그대로네”라며 백성을 인간 병기쯤으로 보는 권력자를 비판했다. 전쟁의 필요성을 완전히 부정하지 못했단 의미에서 반전문학이라고까지 하기는 어려워도, 유교적 애민의식 차원에서 영웅적 살인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는 점을 분명히 볼 수 있다.

무기를 흉기라고 부르는 것은 유림의 상투적 수사였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완숙한 동아시아 유교사회에서 유식층의 취미 중 하나가 바로 살기에 충만한 전쟁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대표적 사례는 “군웅(群雄)이 천하의 패권을 다투는” 내용으로 야심찬 귀족들의 패기, 무용, 의리, 배반 그리고 죽음과 죽임을 그린 다. 명나라에서 1522년께 찬술돼 16세기 중반 조선에 유입된 이 소설은 조선 후기든, 일제시대든, 해방 이후든 언제나 인기가 높았다. 양건식(1889~1938)·한용운(1879~1944)·박태원(1910~86)부터 이문열·황석영까지 1920년대 이후로 를 국역한 이들도 대개 문단 스타급이었는데, 그만큼 이 책은 한국인의 집단의식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국뿐인가? 이미 17세기 말, 즉 조선보다 먼저 일본에서 일본어로 완역된 는 도쿠가와 시대 일본 지식인과 도시민의 애독서가 됐으며, 베트남은 물론 타이에까지 19세기 초반에 번역돼 유포됐다. 한자문화권과 그 인접 국가에서는 ‘도원결의’ ‘적벽대전’ ‘읍참마속’ ‘출사표’ ‘삼고초려’ 정도는 하나의 문화적 코드가 된 것이다. 이 코드의 중심은 무엇인가? 끝없는 군웅 각축전에서 한 개인의 생사가 어떤 개별적 의미도 잃는다. 적벽대전에서 병졸 수십만 명이 비명에 죽어도, 에서 이 싸움의 의미는 어디까지나 조조와 손권, 유비, 제갈량 사이의 지략 다툼 정도다. 마속과 같은 장수의 죽음은 제갈량을 슬프게 했겠지만, 이름 없는 농민반란군 ‘황건적’을 성공적으로 학살하는 일 정도는 유비에게 ‘출세의 발단’일 뿐이다. 에서 초첨이 맞춰진 것은 귀족 남성의 ‘영웅성’이다. 무용으로 카리스마를 조성하는 능력, 인재 등용 능력, 부하의 충성을 강화하는 능력 그리고 백성을 적절히 이용하고 수취하는 능력 등이다. 수백만의 ‘하류 인생’이 죽어버리는 혈투를 배경으로 ‘영웅’ 몇 명의 지략을 극적으로 과시한 것이야말로 이 책이 동아시아 유산계급 지식인의 애독서가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수백만 명의 주검 더미 위에 선 몇 명의 출세가, 결국 동아시아 엘리트들이 은연중에 가진 통념적 세계관은 아니었을까.

영화 〈적벽대전〉속 영웅들의 ‘매력적 폭력’은 세계인에게 선혈이 낭자한 역사를 안락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한겨레 자료

영화 〈적벽대전〉속 영웅들의 ‘매력적 폭력’은 세계인에게 선혈이 낭자한 역사를 안락하게 관람할 수 있게 해준다. 한겨레 자료

‘정의로운 폭력’도 마초적 영웅신화 뒷받침

지식인 독자에게야 졸병의 주검이 영웅에게 필요한 ‘고기’일 뿐이지만, 평민이 전유한 는 사뭇 달랐다. 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많은 부분을 변경·첨가한 판소리 를 보면 오히려 졸병들의 고생이 주안점이 된다.

“가련할손 백마대군 (…) 숨 맥히고 기 맥히고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어 죽고 서서 죽고 웃다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어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아 물에다 풍 빠져 죽고 부서져 죽고 찢어져 죽고 가이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무섭게 눈 빠져 혀 빠져 등 터져 (…) 악사(惡死) (…)하여 다리도 작신 뿌러져 죽고 죽어보느라고 죽고 무단히 죽고 함부로 덤부로 죽고 (…) 이놈 제기 욕하며 죽고 꿈꾸다가 죽고 떡 큰 놈 입에다 물고 죽고.”

전통사회 후기 백성의 눈으로 본 귀족들의 천하 다툼은 긍정적 의미가 거의 없는 ‘죽음의 굿판’이었다. 의 병졸들도 눈물 흘리는 아내를 달래면서 ‘대장부의 전장 출세’를 이야기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소망하는 것은 ‘장렬한 전사’라기보다는 주검이나 불구자가 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뿐이다.

그러면 초기 국가 시대에 형성된 ‘칼의 미학’은 근세 사회의 민중의 눈에 그 정당성을 완전히 잃었던가? 꼭 그렇지는 않았다. 단, 근세 민중에게 참된 영웅으로 비춰지는 싸움군들은 무엇보다 탐관오리나 토호를 혼내주고 응징하는 의적이었다. 의적소설의 백미라면, 허균(1569~1618)에게 강력한 인상을 주어 의 아이디어를 제공해준 일 것이다. 조선의 많은 유학자가 17세기 초반 조선에 유입된 을 “세상의 도리를 어지럽히는 해로운 책”이라고 소리 높여 비난했지만, 특히 몰락 양반이나 중인 등 ‘주변적 지식인’들에게는 애독서가 됐다. 동시대 일본에서도 이 소설을 학자나 관료보다 도시민이 훨씬 좋아했다. 이 와 대조적으로 다른 점은 ‘영웅의 지략’보다 끔찍하다 싶은 ‘영웅적 폭력’을 집중 조명한다는 것이다. 의 ‘건아’들은 ‘정의로운 복수’를 위해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자주 저지른다. 예컨대 영웅 무송(武松)이 자신의 형을 죽게 하는 데 앞장섰던 형수를 양쪽 다리로 밟고 서서 칼로 그 심장을 찔러 심장과 간 등 오장을 꺼내 형의 제사상에 올리는 장면부터 그 사례로 들 수 있다. 오늘날 과 같은 액션영화처럼 의 꼭지마다 머리와 팔다리가 잘리고 누군가가 피를 토하며 죽고 또 누군가가 토막나서 죽는다. 과의 차이, 그리고 야마토 다케루와 같은 고대 영웅전설과의 차이라면, 의 선혈이 낭자한 아비규환의 배경에는 도덕적 대의명분이 깔려 있다는 점이다. 무송과 송강 등은- 조조나 손권, 유비와 또 다르게- 짓밟힌 자의 편에 서서 나름대로 천하를 바로잡으려 한다. 그러기에 ‘정의의 칼’이 날 때마다 전통시대 동아시아 서민 독자가 울고 웃지 않았겠는가. 문제는 ‘정의로운 폭력’이라 해도 결국 무협이라는 장르는 천하를 좌우하는 마초적 영웅의 신화를 뒷받침했다는 데 있다.

우리 대다수는 영웅 아닌 졸병인 것을

전통시대는 이제 다 갔어도, 전통문화에서 조형된 영웅의 이미지는 변모를 거듭해 여전히 동아시아의 대중적 상상과 욕망을 지배한다. 는 기업이라는 양육강식의 정글에서 사원·노동자라는 이름의 백성을 다스리며 라이벌들과 부단히 싸워야 하는 기업 임원 지망생의 애독서가 됐다. 은 그보다는 인기가 덜하지만, 의 주인공을 닮은 ‘영웅’과 같은 모습의 근육질 남자배우들은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 또 공부든 기업 세계든 스포츠든 경쟁에서 적을 억눌러 일등이 될 수 있는 ‘영웅’에게 늘 시선이 늘 집중됐다. 과거에서 물려받은 영웅신화는, 이제 적자생존의 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된다. 그리고 야마토 다케루 전설이나 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영웅’에게 지고 퇴장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대체로 무관심하다. 우리 대다수가 현실적으로는 조조나 손권보다 적벽대전에서 비참하게 죽은 졸병과 그 신세가 더 비슷함에도 말이다.

박노자 오슬로 국립대 교수·한국학

참고 문헌
1. “Герои, творцы и хранители японской старины” А.Мещеряков, М, 1988, С. 5-21
2. , 이재호 옮김, 광신출판사, 1993
3. 구라노 헨지(倉野憲司) 교주, 도쿄, 이와나미문고, 1995, 262∼268쪽
4. ‘삼국지연의와 적벽가’ , 김종철, 8집, 2002, 132∼1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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